반도네온이 쏟아낸 블루 / 정재학
페이지 정보
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60회 작성일 17-01-23 00:01본문
반도네온이 쏟아낸 블루 / 정재학
항구의 여름, 반도네온이 파란 바람을 흘리고 있었다 홍수에 떠내려간 길을 찾는다 길이 있던 곳에는 버드나무 하나 푸른 선율에 흔들리며 서 있었다 버들을 안자 가늘고 어여쁜 가지들이 나를 감싼다 그녀의 이빨들이 출렁이다가 내 두 눈에 녹아 흐른다 내 몸에서 가장 하얗게 빛나는 그곳에 母音들이 쏟아진다 어린 버드나무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깊은 바다였다니……. 나는 그녀의 어디쯤 잠기고 있는 것일까 깊이를 알 수 없이 짙은 코발트 블루, 수많은 글자들이 가득한 바다, 나는 한 번에 모든 子音이 될 순 없었다 부끄러웠다 죽어서도 그녀의 밑바닥에 다다르지 못한 채 유랑할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반도네온의 풍성한 화음처럼 퍼지면서 겹쳐진다 파란 바람이 불었다 파란 냄새가 난다 버드나무 한 그루 내 이마를 쓰다듬고 있었다
鵲巢感想文
신춘문예에 접수한 작품을 심사한 유명 시인도 시 감상평은 어설프기 짝이 없는 것도 많다. 심지어 시와 동떨어진 얘기로 얼버무린 것도 많아 시의 본질을 훼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것은 시를 정확히 읽지 못한 결과다. 필자는 시 감상평을 적기 위해 혹여나 이 시와 관련한 자료가 있나 싶어 찾아보고 읽기도 한다. 하지만, 제대로 감상평을 놓은 것은 찾지 못했다. 시 감상 들어가기 전에 거저 필자의 아둔한 생각을 피력했다.
덧붙인다. 어쩌면, 시 감상이라는 것은 거저 독자의 눈에 들어온 어떤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므로 영 틀리게 말하는 것도 괜찮겠다. 원관념에서 보조관념, 보조관념에서 제3의 관념이 나올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여튼, 뭐 그렇다는 얘기다.
이 시를 읽으면 약간은 이국적인 향이 묻어나 있기도 하고 바다와 항구 그리고 반도네온의 선율까지 아름답기까지 하여 어딘가 휴양 나온 듯 그렇게 느낌이 든다.
이 시는 어떤 한 젊은 시인의 글을 읽고 내 마음이 미처 그 글에 깨닫지 못함을 비유로 쓴 글이다. 글을 읽는 동안 여러 비유의 색채가 다채롭다.
때는 항구의 여름이다. 항구라는 시어도 이 시에서는 어떤 상대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보인다. 곧 떠날 것 같은, 닿을 것 같은 감정이 묻어난다. 반도네온이 파란 바람을 흘리고 있었고 홍수에 떠내려간 길을 찾는다. 이 부문은 시인의 심적 묘사다.
버드나무는 여기서, 시인의 미치는 대상, 객체다. 버드나무 하나 푸른 선율에 흔들리며 서 있었다는 말은 화자가 버드나무의 글을 읽고 흔들리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버드나무는 제유가 된다. 버들을 안자 가늘고 어여쁜 가지들이 나를 감싼다. 그 글을 읽자 어여쁜 맵시가 시인에게 닿았다는 말이다.
화자는 버드나무가 뱉은 말을 모음이라 했다. 어머니의 소리다. 내 글을 쓰기 위한 모태가 된다. 어린 버드나무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깊은 바다였다니……. 그러니까 화자는 그 글에 탄복한다. 나는 그녀의 어디쯤 잠기고 있는 것일까, 이 글을 통해 버드나무는 여성임을 알 수 있다.
짙은 코발트블루, 바다의 가장 깊은 곳은 아마 이 색으로 보일 것이다. 그만큼 글 깊이가 있다는 말이겠다. 글도 내공이 있다. 전혀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모래사장이라면, 가벼운 글을 쓰는 사람은 바다의 연안쯤으로 시인의 글은 그 내공이 깊으니 바다의 중앙, 그 깊이로 얘기한다.
나는 한 번에 모든 子音이 될 순 없었다. 그 여류 시인의 글을 한 번에 읽을 수 없었다는 말이겠다. 어떤 시적 교감을 뜻한다. 결국, 화자는 그 여인의 시에 부끄러움을 느낀 나머지 후유증으로 이 글을 쓰게 됐다. 그녀의 목소리가 반도네온의 풍성한 화음처럼 퍼지면서 겹쳐지고 파란 바람이 불고 파란 냄새가 났으니까! 버드나무 한 그루 내 이마를 쓰다듬는다.
커피 한 잔 / 鵲巢
카페 바 위에 올려놓은
잔을 본다
흐릿한 하늘 달이 뜨고
여러 번 닦았을 그 잔을 본다
까맣게 마신 커피 한 잔
누가 목구멍도 없이
하얗게 쏟는다
================================
각주]
정재학 1974년 서울 출생 1996년 <작가세계> 등단
항구의 여름, 반도네온이 파란 바람을 흘리고 있었다 홍수에 떠내려간 길을 찾는다 길이 있던 곳에는 버드나무 하나 푸른 선율에 흔들리며 서 있었다 버들을 안자 가늘고 어여쁜 가지들이 나를 감싼다 그녀의 이빨들이 출렁이다가 내 두 눈에 녹아 흐른다 내 몸에서 가장 하얗게 빛나는 그곳에 母音들이 쏟아진다 어린 버드나무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깊은 바다였다니……. 나는 그녀의 어디쯤 잠기고 있는 것일까 깊이를 알 수 없이 짙은 코발트 블루, 수많은 글자들이 가득한 바다, 나는 한 번에 모든 子音이 될 순 없었다 부끄러웠다 죽어서도 그녀의 밑바닥에 다다르지 못한 채 유랑할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반도네온의 풍성한 화음처럼 퍼지면서 겹쳐진다 파란 바람이 불었다 파란 냄새가 난다 버드나무 한 그루 내 이마를 쓰다듬고 있었다
鵲巢感想文
신춘문예에 접수한 작품을 심사한 유명 시인도 시 감상평은 어설프기 짝이 없는 것도 많다. 심지어 시와 동떨어진 얘기로 얼버무린 것도 많아 시의 본질을 훼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것은 시를 정확히 읽지 못한 결과다. 필자는 시 감상평을 적기 위해 혹여나 이 시와 관련한 자료가 있나 싶어 찾아보고 읽기도 한다. 하지만, 제대로 감상평을 놓은 것은 찾지 못했다. 시 감상 들어가기 전에 거저 필자의 아둔한 생각을 피력했다.
덧붙인다. 어쩌면, 시 감상이라는 것은 거저 독자의 눈에 들어온 어떤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므로 영 틀리게 말하는 것도 괜찮겠다. 원관념에서 보조관념, 보조관념에서 제3의 관념이 나올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여튼, 뭐 그렇다는 얘기다.
이 시를 읽으면 약간은 이국적인 향이 묻어나 있기도 하고 바다와 항구 그리고 반도네온의 선율까지 아름답기까지 하여 어딘가 휴양 나온 듯 그렇게 느낌이 든다.
이 시는 어떤 한 젊은 시인의 글을 읽고 내 마음이 미처 그 글에 깨닫지 못함을 비유로 쓴 글이다. 글을 읽는 동안 여러 비유의 색채가 다채롭다.
때는 항구의 여름이다. 항구라는 시어도 이 시에서는 어떤 상대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보인다. 곧 떠날 것 같은, 닿을 것 같은 감정이 묻어난다. 반도네온이 파란 바람을 흘리고 있었고 홍수에 떠내려간 길을 찾는다. 이 부문은 시인의 심적 묘사다.
버드나무는 여기서, 시인의 미치는 대상, 객체다. 버드나무 하나 푸른 선율에 흔들리며 서 있었다는 말은 화자가 버드나무의 글을 읽고 흔들리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버드나무는 제유가 된다. 버들을 안자 가늘고 어여쁜 가지들이 나를 감싼다. 그 글을 읽자 어여쁜 맵시가 시인에게 닿았다는 말이다.
화자는 버드나무가 뱉은 말을 모음이라 했다. 어머니의 소리다. 내 글을 쓰기 위한 모태가 된다. 어린 버드나무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깊은 바다였다니……. 그러니까 화자는 그 글에 탄복한다. 나는 그녀의 어디쯤 잠기고 있는 것일까, 이 글을 통해 버드나무는 여성임을 알 수 있다.
짙은 코발트블루, 바다의 가장 깊은 곳은 아마 이 색으로 보일 것이다. 그만큼 글 깊이가 있다는 말이겠다. 글도 내공이 있다. 전혀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모래사장이라면, 가벼운 글을 쓰는 사람은 바다의 연안쯤으로 시인의 글은 그 내공이 깊으니 바다의 중앙, 그 깊이로 얘기한다.
나는 한 번에 모든 子音이 될 순 없었다. 그 여류 시인의 글을 한 번에 읽을 수 없었다는 말이겠다. 어떤 시적 교감을 뜻한다. 결국, 화자는 그 여인의 시에 부끄러움을 느낀 나머지 후유증으로 이 글을 쓰게 됐다. 그녀의 목소리가 반도네온의 풍성한 화음처럼 퍼지면서 겹쳐지고 파란 바람이 불고 파란 냄새가 났으니까! 버드나무 한 그루 내 이마를 쓰다듬는다.
커피 한 잔 / 鵲巢
카페 바 위에 올려놓은
잔을 본다
흐릿한 하늘 달이 뜨고
여러 번 닦았을 그 잔을 본다
까맣게 마신 커피 한 잔
누가 목구멍도 없이
하얗게 쏟는다
================================
각주]
정재학 1974년 서울 출생 1996년 <작가세계> 등단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