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 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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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78회 작성일 17-01-26 00:08본문
종의 기원 / 황인찬
우리 할머니는 자주 하시고, 하시고 난 뒤의 할머니는 기분이 좋다 하시고 난 뒤의 할머니는 등목을 하시고, 머리를 다듬으시고, 인찬아 물 좀 끼얹어라 말씀하신다
어느 날엔가 너무 어린 나는 땅바닥에 물을 쏟아버렸다 할머니는 너무 어린 나에게 이 망할 것아 말씀하셨다 쏟아진 물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아직도 나는 망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쯤 망할까? 그것이 언제나 가장 궁금했다 사람들은 세상이 망하기를 언제나 바라고 누군가 망하기를 언제나 바라지만
개가 태어나고 나무가 자라고 건물은 높아지고 있다 하늘에는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해와 달이 뜨고 지고 운석은 충돌하지 않는다
어느 날엔가 너무 어린 나는 망해버린 세상을 보았다
그것은 꿈이었는데
거기서도 할머니는 하고 계셨다 깨끗이 씻고 계셨다 늙고 늙은 몸을 거대하고 축 늘어진 가슴을 들어올리며
우리 할머니는 아직도 하신다 백 년 동안 움직여온 그 입술로 내게 망할 것이라는 말씀을 자꾸만 하신다
나는 망하지 않는다 살아서
있다
鵲巢感想文
시제가 종의 기원이다. 종의 기원이라 하면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생각게 한다. 찰스 다윈은 멸종한 동물과 현재의 동물과의 어떤 연속성을 파헤치다가 생명체는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를 연구하여 담은 것이 종의 기원이며 다윈의 진화론이다.
근데 이 시는 다윈의 진화론하고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시의 기원이라 보는 것이 맞겠다. 시인의 시어詩語 사용도 그리 어려운 단어는 없다. 할머니와 돈호법인 인찬아! 망하거나 망해버리거나 세상, 백 년 등이다. 할머니는 시의 원조다. 그러니까 제유다.
시 1연에서 자주 하시고, 기분이 좋고, 등목하시고, 다듬으시고는 시 수련을 말하는 묘사다. 물을 끼얹는다는 말은 세상을 똑바로 보란 말이다. 시 2연을 보면 할머니는 망할 것아 말씀하셨다는 말은 시인의 독백이다. 한 줄 글귀 하나 못 쓴 시인이다. 아직도 시인은 망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는 언제쯤 망할까? 즉, 시인은 언제쯤 망할까? 그것이 시인은 가장 궁금하다. 하지만, 꿈같은 일은 벌어졌다. 시가 젊은 날에 이루었으니 말이다. 거기서도 원조의 시는 계셨고 마음을 닦았다. 가슴에 감동하여 가면서 말이다.
현대 시 100년의 입술로 시는 결코 망할 거라며 자꾸 말씀하시는 것은 역설이다. 이는 절대 긍정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망하지 않는다. 살아서 있다. 개가 태어나고 나무가 자라고 건물은 높아지고 하늘은 비행기가 날고 해와 달이 뜨고 지고 운석이 충돌하지 않듯이 시인은 살아서 세상을 볼 것이다.
어릴 때였다. 아마 초등학교 6년이나 중학교 다닐 때 아닌가 싶다. 서울에 사시는 고모할머니께서 내려오셔 한동안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던 기억을 한다. 나는 할아버지 얼굴을 모른다. 아버지 14세 때 돌아가셨다고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하신 적 있었다. 병을 앓았다. 지금은 웬만한 병은 다 치료하며 사니 평균수명은 꽤 늘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사셨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쯤이니 50년대 후반이다. 할아버지 용안이 그리워 고모할머니 용안을 뵈며 할아버지 얼굴을 그려본 적 있다. 다른 집은 많던 할아버지 사진도 우리는 한 장도 없었다. 집이 가난하였지만, 그래도 가난이라고 해도, 사진 한 장이 없었을까!
저녁이면 서쪽 하늘가는 노을이 깔리고 그럴 때면 고모할머니께서는 홍두깨 들고 밀가루 반죽을 밀곤 하였다. 부엌칼로 정갈하게 쓴 칼국수를 바라보며, 뜨거운 물에 삶아내시는 것도 곁에서 지켜본 기억이 난다. 별 반찬이 없어도 양념장 하나면 국수 한 그릇은 배부르게 먹었다. 등마루에 온 식구 모두 둘러앉아 후루룩거리며 먹었던 누른 국수,
나는 지금 그때와 같은 촌에서 살지는 않는다. 촌은 역시 가깝지만 내가 만든 사회는 커피와 사람, 콘크리트 벽과 도로, 마트와 같은 현대문명에서 살고 있다. 황톳길 같은 농로도 논둑에 심은 콩도 그 콩깍지 새카맣게 태우며 까먹었던 콩서리도 개울가에 핀 돌미나리와 돌만 들면 뒷걸음질 치는 가재도 그립다. 무엇보다 할머니가 끓여 주셨던 그 국수는 더는 먹을 수 없으니 이렇게 기억으로나마 한 그릇 먹는다. 아득한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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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황인찬 1988년 안양 출생 2010 <현대문학> 등단
우리 할머니는 자주 하시고, 하시고 난 뒤의 할머니는 기분이 좋다 하시고 난 뒤의 할머니는 등목을 하시고, 머리를 다듬으시고, 인찬아 물 좀 끼얹어라 말씀하신다
어느 날엔가 너무 어린 나는 땅바닥에 물을 쏟아버렸다 할머니는 너무 어린 나에게 이 망할 것아 말씀하셨다 쏟아진 물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아직도 나는 망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쯤 망할까? 그것이 언제나 가장 궁금했다 사람들은 세상이 망하기를 언제나 바라고 누군가 망하기를 언제나 바라지만
개가 태어나고 나무가 자라고 건물은 높아지고 있다 하늘에는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해와 달이 뜨고 지고 운석은 충돌하지 않는다
어느 날엔가 너무 어린 나는 망해버린 세상을 보았다
그것은 꿈이었는데
거기서도 할머니는 하고 계셨다 깨끗이 씻고 계셨다 늙고 늙은 몸을 거대하고 축 늘어진 가슴을 들어올리며
우리 할머니는 아직도 하신다 백 년 동안 움직여온 그 입술로 내게 망할 것이라는 말씀을 자꾸만 하신다
나는 망하지 않는다 살아서
있다
鵲巢感想文
시제가 종의 기원이다. 종의 기원이라 하면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생각게 한다. 찰스 다윈은 멸종한 동물과 현재의 동물과의 어떤 연속성을 파헤치다가 생명체는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를 연구하여 담은 것이 종의 기원이며 다윈의 진화론이다.
근데 이 시는 다윈의 진화론하고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시의 기원이라 보는 것이 맞겠다. 시인의 시어詩語 사용도 그리 어려운 단어는 없다. 할머니와 돈호법인 인찬아! 망하거나 망해버리거나 세상, 백 년 등이다. 할머니는 시의 원조다. 그러니까 제유다.
시 1연에서 자주 하시고, 기분이 좋고, 등목하시고, 다듬으시고는 시 수련을 말하는 묘사다. 물을 끼얹는다는 말은 세상을 똑바로 보란 말이다. 시 2연을 보면 할머니는 망할 것아 말씀하셨다는 말은 시인의 독백이다. 한 줄 글귀 하나 못 쓴 시인이다. 아직도 시인은 망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는 언제쯤 망할까? 즉, 시인은 언제쯤 망할까? 그것이 시인은 가장 궁금하다. 하지만, 꿈같은 일은 벌어졌다. 시가 젊은 날에 이루었으니 말이다. 거기서도 원조의 시는 계셨고 마음을 닦았다. 가슴에 감동하여 가면서 말이다.
현대 시 100년의 입술로 시는 결코 망할 거라며 자꾸 말씀하시는 것은 역설이다. 이는 절대 긍정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망하지 않는다. 살아서 있다. 개가 태어나고 나무가 자라고 건물은 높아지고 하늘은 비행기가 날고 해와 달이 뜨고 지고 운석이 충돌하지 않듯이 시인은 살아서 세상을 볼 것이다.
어릴 때였다. 아마 초등학교 6년이나 중학교 다닐 때 아닌가 싶다. 서울에 사시는 고모할머니께서 내려오셔 한동안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던 기억을 한다. 나는 할아버지 얼굴을 모른다. 아버지 14세 때 돌아가셨다고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하신 적 있었다. 병을 앓았다. 지금은 웬만한 병은 다 치료하며 사니 평균수명은 꽤 늘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사셨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쯤이니 50년대 후반이다. 할아버지 용안이 그리워 고모할머니 용안을 뵈며 할아버지 얼굴을 그려본 적 있다. 다른 집은 많던 할아버지 사진도 우리는 한 장도 없었다. 집이 가난하였지만, 그래도 가난이라고 해도, 사진 한 장이 없었을까!
저녁이면 서쪽 하늘가는 노을이 깔리고 그럴 때면 고모할머니께서는 홍두깨 들고 밀가루 반죽을 밀곤 하였다. 부엌칼로 정갈하게 쓴 칼국수를 바라보며, 뜨거운 물에 삶아내시는 것도 곁에서 지켜본 기억이 난다. 별 반찬이 없어도 양념장 하나면 국수 한 그릇은 배부르게 먹었다. 등마루에 온 식구 모두 둘러앉아 후루룩거리며 먹었던 누른 국수,
나는 지금 그때와 같은 촌에서 살지는 않는다. 촌은 역시 가깝지만 내가 만든 사회는 커피와 사람, 콘크리트 벽과 도로, 마트와 같은 현대문명에서 살고 있다. 황톳길 같은 농로도 논둑에 심은 콩도 그 콩깍지 새카맣게 태우며 까먹었던 콩서리도 개울가에 핀 돌미나리와 돌만 들면 뒷걸음질 치는 가재도 그립다. 무엇보다 할머니가 끓여 주셨던 그 국수는 더는 먹을 수 없으니 이렇게 기억으로나마 한 그릇 먹는다. 아득한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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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황인찬 1988년 안양 출생 2010 <현대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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