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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책 / 김명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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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38회 작성일 17-01-2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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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책 / 김명리




    젖은 책을 열 때면 입속에 물이 괸다 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아도 목마르지 않다 옥호은전 속 카나리아빛 수면 위를 향유고래 한 마리 물비늘 반짝이며 유영하는, 물의 숨구멍들을 가만히 옥죄었다 놓는

    젖은 책의 표지엔 몸통은 없고 날개만 있는 한 무리 새떼들 끝없이 날아가고, 날아오고 있다 비등하는 생의 목록마다 둥근 물웅덩이가 패었다 물거품들 찢긴 낱말들 쉴 새 없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아주 가느다란 속눈썹을 열고 생시까지 따라 나와 계속되는 젖은 꿈도 있다 되돌아서서 함께 울먹이는 것들, 꽃봉오리 같은 주먹을 힘차게 쥐었다 놓는 빗방울 속의 불꽃들, 마음만 먹으면 쉬 따라 잡을 것 같은 황혼의 걸음걸이도 있다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르는 수많은 구멍들, 말줄임표들이 그 책의 잎새이다 갈피갈피 하늘을 비추는 올괴불나무 한 그루씩 꽃피어 있다 만수위(滿水位)의 낮은 물소리로, 사막의 물 담을 가죽부대가 그 책보다 오랜 그 책의 부록이라 전한다



鵲巢感想文
    시제 젖은 책은 제유다. 무엇을 끌어다가 비유한 지는 글을 읽어보아야 알겠다.
    젖은 책을 열 때면 입속에 물이 괸다. 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아도 목마르지 않다. 옥호은전은 젖은 책의 변이다.
    옥호(玉壺)는 옥으로 만든 작은 병을 뜻하며 은전(恩典)은 나라에서 은혜를 베풀어 내리던 혜택이다. 카나리아 빛은 선황색 즉 레몬 빛을 말한다. 물의 숨구멍들을 가만히 옥죄었다 놓는, 그러니까 젖은 책 > 물의 숨구멍 > 옥호은전 속 카나리아 빛으로 보인다. 시적 묘사가 탁월하다. 더 자세히 적는 것은 시인이 그리는 시에 누가 되겠다.
    젖은 책은 어떤 한 인간의 정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어머님’으로 보이는 이유는 뭘까? 몸은 움직일 수 없으니 몸통은 있으나 없는 것 같고, 마음은 날개처럼 끝없이 하늘 날아가고 날아오고 있다. 생의 목록마다 둥근 물웅덩이처럼 말 못 할 사정은 많고 그러니까 물거품과 같은 찢긴 낱말처럼 거저 바람에 나부끼기만 한다.
    아주 가느다란 숨소리와 더불어 지난 일은 꿈같은데 되돌아보면 지울 수 없는 울먹이는 일뿐이다. 삶을 힘차게 피웠다만 아직도 미련은 남아 열정만 가슴에 안았다. 마음만 먹으면 쉬 따라잡을 것 같은 황혼의 걸음걸이다.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르는 수많은 구멍과 같은 침묵만 까맣다. 말줄임표 같다. 오로지 갈피갈피 오른 죽은 깨만 피었다. 다한 삶을 바라보는 시점에 낮은 목소리로, 마지막 가는 길을 전한다.

    세상에 나 한 자리 머물 곳 있는 것도 행복이며 손에 맞는 일로 한평생 사는 것도 행복이다. 인생은 어떻게 되었다 하더라도 사람은 죽어서까지 어디에 갈 것인가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납골당이나 산이나 바다 혹은 강어귀 어딘가 뿌려지는 구름으로 마감하는 이도 많다. 그나마 내가 묻힐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 중에서도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서울에 종친회에서 운영하는 종산이 있다지만 손이 가지가지마다 이어 한 자리 꿰차는 것도 버거운 일이고 서울과 지방은 또 멀어 정이 늘 묻은 곳만 못하다.
    장례문화도 많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언제 아버지와 얘기를 나눴다. 사후에 관한 문제로 말이다. 할아버지는 서울 종산에 거처하였고 할머니는 동네 산에 묘소를 마련하였다. 이렇게 따로 모시게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다. 당시 동네는 스무 가구도 채 되지 않았다. 상조회가 있어 장례문화도 이곳은 늘 지켜왔다. 이 문화를 지키고 받든 것은 아버지가 마지막 세대였다. 우리 인생 한 번 가면 언제 오나~ 어어허 어어이야 어어허으 어어이야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상여를 매며 산으로 오를 때 나는 이십 대였는데 그나마 그 문화를 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동네에서 지정한 산 한 자리에 모셨다. 설이라 아버지와 어머니 모시고 산소에 다녀왔다. 할머니 묘 둘레를 자연석 쌓아 가지런히 다듬어 놓으신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평소에 말씀도 잘하시지 않아, 거저 이러쿵저러쿵하며 식구들끼리 얘기 나누며 산에 올랐지만, 할머니 묘소 앞에 죽 일 열로 서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때야 한 말씀 하셨다. “어머님 저 왔어요. 어머님 좋아하시는 손주도 오고 증손자가 이렇게 컸네요. 보세요 어머니”, 나는 아버지 말씀을 듣고 그만 가슴이 울컥거렸다. 아버지는 여전히 서울 말씨(방언)다. 동향을 바라보며 누워계시는 할머니 뵙고 절을 올렸다.
    그리고 우리는 산을 타며 내려왔다. 부모님께서 예전에 마련하였던 밭을 보았다. 어머니 아버지는 늘 이곳에 묻어 달라고 부탁한다. 예쁜 단지에 담아 큰 묘소도 만들지 말고 그냥 비석만 세우고 잔디만 심어달라고,
    아버지 어머니의 유언이었다.

    시 감상에 어울리는 글은 아니다만, 시를 읽으니 부모님 생각나 적었다. 시인이 쓴 시제 ‘젖은 책’은 부모님을 동경하며 지은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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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김명리 대구 출생 1984 <현대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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