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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말 속에는 / 최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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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65회 작성일 17-02-02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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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말 속에는 / 최서림




    내 아들의 말 속에는 세심해서 상처투성이인 나의 말이 들어있다 거간꾼으로 울퉁불퉁 살아온 내 아버지와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꺼칠꺼칠한 말이 숨 쉬고 있다 조선 후기 유생 최서림(崔瑞琳)의 한시(漢詩)가 들어있다 초등학교 3학년 내 아들의 비뚤비뚤 기어가는 글자 속에는 내 아버지처럼 글자 없이도 잘 살아온 이서국 농부들이 공손하게 볍씨를 뿌리고 있다 눈길을 더듬으며 엎어지며 쫓기듯 넘어온 알타이 산맥의 시린 하늘과 몽골초원의 쓸쓸한 모래먼지 냄새가 박혀있다 바벨탑이 무너진 후 장강(長江)처럼 한반도까지 흘러들어온 광목 같은 말에는 우리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흘린 눈물과 피와 고름만큼의 소금이 쳐져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당(堂)고개에는 비린 말들이 60년대 시골김치처럼 더 짜게 염장되어 있다 가난해서 쭈글쭈글한 말들이 코뚜레같이 이 동네 사람들의 코를 꿰고 몰고 다닌다



鵲巢感想文
    말(言)과 말(馬)로 버무린 시다. 말을 통하여 우리의 얼과 문화를 강조하였다. 그러니까 우리 삶의 역사다. 한평생 사는 것은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이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더 나가 민족을 이룬 우리의 삶을 대변한다.
    내 아들의 말 속에는 세심하고 상처투성이인 나의 말이 들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거간꾼으로 거칠게 사셨던 아버지와 그 윗대 아버지의 까칠까칠한 말까지 모두 숨어 있다. 그것뿐인가? 조선 후기 유생 최서림의 한시가 들어 있기까지 하다.
    초등학교 3학년 내 아들의 비뚤비뚤 기어가는 글자는 내 윗대 조상께서 눈밭에 뿌린 볍씨와 같다. 아버지처럼 글자 없이도 잘 살아온 우리의 조상이었다. 말하자면, 이서국의 그 뿌리로 말이다.
    시인께서 말한 이서국은 신라가 통일하기 이전으로 청도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옛 성읍국가였다.
    필자가 머문 압량 일대를 압독국이라 하고 영천 일대를 골벌국, 의성 일대를 조문국, 강원도 삼척지대의 실직국도 있었다. 모두 삼한시대의 성읍국가다. 이 시를 읽다보면 시인은 청도가 고향인 셈이다.
    시는 점차 그 윗대로 오른다. 삼한시대를 넘어 민족을 형성하게 했던 어족의 근원지인 우랄 알타이 산맥까지 뻗쳐오르며 더 나가 바벨탑이 무너진 후 장강처럼 한반도까지 흘러들어온 광목 같은 언어를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이는 윗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삶과 피와 눈물과 고름만큼 짜다.
    여기서 시인께서 바벨탑을 비유로 든 것은 원래 한 갈래였던 언어가 여러 갈래로 나뉜 것에 대한 강조다. 인간은 문명의 발생과 더불어 웅장한 신전과 궁전을 하늘 높이 세웠다. 특히 신과 더욱 가까이 소통하기 위해 바벨탑을 세웠다만, 신은 인간의 오만한 행동에 실망한 나머지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는 벌을 내렸다. 바벨탑 건설은 혼돈에 빠지고 사람들은 불신과 오해 속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시인이 사는 당(堂)고개에는 60년대 시골김장 김치처럼 폭폭 삭아 짜고 시어 우리의 삶 주변에 흔히 묻힌 말뿐이다. 말이 말을 낳고 말이 말을 묻어버린 이 세상에 마치 코뚜레처럼 우리의 말은 우리를 꿰고 다니는 것이다.

    이 시를 읽다가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쓴 시가 있다. 물론 말(言)을 두고 지은 시다.


    커피 50잔 / 鵲巢


    하마 같은 아이가 문명의 아침에 마주 먹는 한 술 그 뜨는 밥주걱에 밥가락이라 했다 잠깐 아찔하면서도 섬뜩하게 잉카의 아타우알파가 스친다
    에스파냐가 말 타고 종횡무진 칼 휘두르다 한 문장 빛깔 좋은 홍시 하나 착 펴지다 제국은 벙어리였고 강가의 모래였다 라마와 말의 시소 속에 밥가락이 폭주족 지나가듯 한다
    턱턱 막힌 언어가 그 라마 목에 달라붙은 이 하나 잡지 못하고 꾸덕꾸덕 굳는 목뼈 비트는 일은 없어야겠다 언뜻 내지른 하마의 아침,
    그 밥가락으로 뜬 밥 한 그릇 오돌오돌 씹는다 말고삐 잡고 달리는 것도 기지국 소리 잘 읽어야겠다
    아직 공중파 하나 없이 떠도는 알파파가 한 잔 짧게 마시는 에스프레소처럼 비웠다 가는 한 종지 나날 자석이면 착 달라붙는 쇳가루처럼 문자와 서로 맞지 아니한 해바라기의 끝은 무엇인가



    10년도 더 됐다. 가족과 더불어 아침을 먹었다. 둘째아이가 이제 말이 트는 시기였다. 그나마 아버지께 밥 한 그릇 담겠다고 밥주걱 들고 밥솥을 열었는데 아이는 밥가락이라 하여 아침에 온 가족이 함께 웃었다. 아이는 숟가락, 젓가락이라는 말의 착안에 밥가락이라 했을 것이다. 아이만의 언어가 생긴 셈이다.
    아타우알파는 잉카제국의 마지막 황제다. 스페인과의 전투 일화는 유명하다. 이를 다 얘기할 순 없고 이 제국이 멸망했던 원인은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께서 설명한 한 대로 첫째 총기, 둘째 병원균 셋째 문자였다. 문자도 한몫했다는 게 중요하다. 스페인은 자국의 국왕께 알릴 수 있는 문자가 있었다. 하지만, 잉카제국은 신하의 고변으로 황제의 의중을 살피기까지 하니 보고가 잘 될 일 없다. 제국의 멸망은 필연적이었다.
    카페 사업하는 나는 어쩌면 더 나은 길을 걸을 수 있을까 고민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고객께 더 가까이 더 믿음으로 갈 방법은 무엇인가? 조직의 성패는 문자에도 있었음을 깨달았다. 책은 인세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밥 가락은 둘째 아이가 만든 언어였다. 나는 공중파 하나 없이 떠도는 알파파였다. 나만의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일의 그 어떤 것보다 시급한 문제였으며 필연적임을 깨달았다. 나만의 문자가 절실했던 기억을 되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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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최서림 경북 청도 출생 1993년 <현대시> 등단
    필자의 시집 카페조감도 84p. 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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