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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焚書 / 정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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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19회 작성일 17-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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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焚書 / 정원숙




    의심이 점점 늘어간다. 책장을 정리해도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도 나지 않는 줄거리. 감정도 먼 흑백사진 몇 장. 그들은 죽어 여기 없고 오늘의 눈동자는 살아서 그들의 사진을 본다. 창밖으로 매미 껍질이 바스락거리며 떨어진다. 매미도 한 시절을 불살랐을 것이다. 그들의 웃음을, 사진을, 기억도 희미한 페이지를 불사르기로 한다. 의심들을 불사르기로 한다. 불을 당기자. 기억나지 않는 상징 속에서 수런수런 말소리 들려온다. 의심이 점점 늘어간다. 불타오르면서도 의심은 멈추지 않고 재로 쌓인다. 오로지 순간에만 집중하자. 불타오르는 순간만은 완전한다. 하나의 점이 될 때까지. 불타오르는 순간만은 순수하다. 하나의 실재가 될 때까지. 책을 불사른다. 이데아를 불사른다. 죽은 저자들의 사회를 불사른다. 영원히 죽지 않을 작자들의 난무하는 상상력, 죽은 광기가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불타오르는 순간은 완성된다. 하나의 철학이 될 때까지. 불타오르는 순간은 순정하다. 하나의 완성하지 못한 역사들을 불사른다. 의심은 영영 줄어들지 않는다.



鵲巢感想文
    분서焚書는 불사를 번焚에 글 서書다. 그러니까 글을 불사른다는 뜻이다. 시인께서 각주 처리하지 않아 글로 쓴다만, 분서焚書라는 책이 있다. 중국 명대 양명학 좌파 이탁오의 사상서다. 또 분서(焚書)는 언론통제를 목적으로 지배자의 의향에 맞지 않는 서적을 불태운다는 뜻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진시황제의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있다. 전국시대에서부터 학자가 자유로이 정치를 비판하는 습관을 싫어해서 진의 기록과 의학, 약학, 농업 이외의 모든 서적을 불태우고 비판적인 언론을 하는 학자를 생매장한 사건이다.
    여기서 분서焚書는 단지 글을 불사른다는 뜻에 불과하다. 더 나가, 시는 마음을 담은 것이니 시인의 글에 대한 애착과 공부, 이 결과로 맺은 문장의 욕구다.
    시인이 쓴 비유를 보자. 창밖으로 매미 껍질이 바스락거리며 떨어진다. 실체는 없고 잔재만 남은 이상을 말한다. 매미의 한철은 극히 짧다. 인생을 매미에 비유하겠는가마는 시간의 절대성 앞에 실은 매미와 비유하지 못할 것도 없다. 시인이 쓴 분서는 글을 불사르는 것이 아니라 글을 불사를 정도로 열정을 다하여 탐독한다는 비유다. 책은 읽을수록 의심만 늘어간다. 물론 책은 시나 시집이겠다.
    불타오르면서도 의심은 멈추지 않고 재로 쌓인다. 열정을 다하여 책을 탐독하면 할수록 그 잔재는 남는다. 시는 거저 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은 마치 화산폭발 하듯이 순간의 몰입을 필요로 하며 온전한 실재가 될 때까지 책과 사상을 분서한다.
    영원히 죽지 않을 작자들의 난무하는 상상력, 죽은 광기가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불타오르는 순간은 완성된다. 이는 이미 분서의 단계를 넘어선 자다. 죽은 광기는 시의 고체화다. 시인은 시인이 쓴 문장을 보고 감탄하며 자신도 이에 못지않게 문장을 불사르며 완성단계에 이른다.
    다음 문장은 결론에 해당한다. 굳이 써보자면,
    하나의 철학이 될 때까지. 불타오르는 순간은 순정하다. 하나의 정치가 될 때까지. 아직도 할 말이 많은 입술들을 불사른다. 아직도 완성하지 못한 역사들을 불사른다. 의심은 영영 줄어들지 않는다.
    시인으로서 온전한 철학을 세운다는 것은 명예다. 정치가 된다는 말은 옳고 그름을 논하는 자리가 된다는 말이다. 정치가 될 정도라면 시는 이미 명성을 얻은 셈이다. 필자는 비록 정치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을 하니, 문학적으로 크게 가치를 부여하는 길은 아니다만, 시인의 분서焚書는 2016년 올해의 좋은 시에 올랐으니 명예를 얻은 셈이다.
    의심은 영영 줄어들지 않는, 詩

    이 시를 읽으니,
    공자의 앎에 관한 유명한 격언이 생각난다. 공자는 자신감에 넘치는 제자 자로子路에게 앎의 도리를 깨우치기 위함이었다. 말하자면,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요 부지위부지不知爲不知이 시지야是知也니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앎이라고 했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知, 不知, 上, 不知, 知, 病” 도덕경 71장에 나오는 말이다.* 알아도 알지 못하는 것이 최상이며 알지 못한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라고 했다.
    책과 글을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독서는 좋아했다만, 글은 그 가치를 몰랐다. 어느 경영강좌를 듣고서 글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일기를 썼다. 더욱 이 일기를 남에게 보이기까지 했다. 글을 더 잘 알기 위함이었다. 우리나라 글이지만, 그때부터 어렵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 부끄러움은 말해서 뭐하겠는가! 발전은 저 스스로 모르고 있음을 깨우칠 때 오는 것임을 그때 알았다.
    지금도 무엇을 많이 알아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글은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 목적이고 글을 씀으로써 배우는 길이다. 하나의 놀이고 평생 즐겨도 후회스러움은 없다만 공자의 철학을 넘어 노자의 철학에 이르기까지는 길은 아직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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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정원숙 충남 금산 출생 2004년 <현대시> 등단
    필자의 책 ‘카페 간 노자’ 청어, 352p 참조,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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