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표정 / 홍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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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03회 작성일 17-02-14 00:09본문
저녁의 표정 / 홍일표
아직 끝나지 않은 어제의 노래
둥글게 뭉친 눈덩이를 허공의 감정이라고 말할 때
돌멩이 같은 내일이 아이스크림처럼 녹는다
깊게 파인 공중에서 밤이 태어나고
눈덩이의 부피만큼 훌쭉해진 허공은 너무 질겨서 삼킨 사람이 없다
바삭거리던 나뭇잎이 공중에 몸을 밀어 넣을 때
저기 새가 날아가네
서쪽으로 기운 나무는
그것을 천 개의 손가락을 가진 바람의 연민이라고 말한다
바람이 남긴 죽은 새들과 함께
수런수런 모여드는 저녁
남은 허공을 쥐어짜면 새들의 울음이 주르르 흘러내리기도 하는
여기는 바닥에 노래가 새겨지지 않은 곳
표정 없이 자전거 바큇살에 감겨 헛도는 하늘처럼
鵲巢感想文
저녁의 표정은 시의 표정이다. 시의 표정은 화자의 표정이겠다. 우리는 시를 읽고 독해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은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 시인이 쓴 시어에 단순 포괄적인 것 같아도 어쩌면 그 시어에 내포하는 의미는 또 방대해서 많은 것을 끌어다가 우리의 머리에 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학은 바다에 허우적거리다가도 어떤 외딴 섬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혹여 그 섬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날은 기분이 좋은 것이다. 삶의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 희망은 시인이 먼저 발견하였고 믿음을 우리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시 1연, 시인은 아직 끝나지 않은 어제의 노래를 읽고 있다. 둥글게 뭉친 눈덩이를 허공의 감정이라고 말할 때, 여기서 허공은 시인을 제유한 시어다. 허공 같은 마음의 공허함을 표현한다. 돌멩이 같은 내일이 아이스크림처럼 녹는다. 내일은 돌멩이와 같은 시가 생길 것이므로 지금은 아이스크림처럼 달고 맛있는 저녁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깊게 파인 공중에서 밤이 태어나고, 공중은 허공에서 진일보한 형태다. 깊게 파였다는 말은 그만큼 시 접근성으로 더욱 밀접한 관계를 묘사한다.
시 2연, 눈덩이 부피만큼 훌쭉해진 허공은 너무 질겨서 삼킨 사람이 없다. 허공에서 공중으로 변이한 화자를 우리는 보았다. 그러므로 훌쭉해진 허공이다. 눈덩이 부피만큼은 공부의 대가로 얻은 자아를 묘사하며 너무 질겼다는 말은 시의 융통성을 말한다. 그만큼 풀며 살아야 하지만, 고정관념이 강한 것이다.
시 3연, 자연과 공중으로 극을 이룬다. 바삭거리던 나뭇잎이 공중에 몸을 밀어 넣을 때, 실은 공중이 나뭇잎을 인식하였으므로 바삭거리므로 묘사한 셈이다. 새가 날아간다는 것은 시 의미 이전이다. 서쪽으로 기운 나무는 화자의 시 이해다. 그것을 천 개의 손가락을 가진 바람의 연민이라고 말한다. 시를 읽는 독자는 이를 희망을 품은 연민이라고 표현한다. 천 개의 손가락은 천 명쯤 되는 시 독자를 제유한다.
시 4연, 바람은 허공에서 공중으로 변이한 일족이나 다름없다. 죽은 새는 시 문장을 제유하며 새들의 울음은 허공의 또 다른 바람이다. 시를 읽었으므로 시 탄생의 전조다. 아직은 바닥에 노래를 새길 때는 아닌가 보다.
시 5연, 표정 없이 자전거 바큇살에 감겨 헛도는 하늘처럼, 시인은 시를 읽었다만, 멍한 공허에 빠진 상황을 묘사한다. 자전거 바큇살에 감겨 헛도는 하늘이란 문장도 재밌게 쓴 표현이다. 하늘은 시인을 제유한 시어다. 자전거는 어떤 진행하는 도구쯤으로 생각하자면 무언가 써야 한다. 하지만, 공허한 마음을 헛도는 바큇살로 표현한 것이다.
이 시는 하늘같은 마음을 얹었다. 우리는 어제의 저녁이 자전거에 타며 진행하는 그 표정을 보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돌멩이 같은 아이스크림을 쪽쪽 거리며 빨고 있으니까 말이다.
영과이진盈科而進이라는 말이 있다. 과科는 과목이나 과정 혹은 법의 뜻도 있지만, 구덩이라는 뜻도 있다. 구덩이를 가득 채우고 나서야 흘러간다는 말이다. 시는 마음이다. 마음은 꽉꽉 차야, 시는 나오는 법이다. 그 채우는 방법은 마음을 읽고 마음을 다지며 정립하는 것이 먼저다.
맹자는 물을 보는데 방법이 있다 하여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나아가지 못한다고 했다. (觀水有術 …… 流水之爲物也 不盈科 不行) 근원이 있는 물은 용솟음치며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웅덩이를 채우고 나서야 나아가 사해로 흐른다고 했다. (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그러니 쉬지 않고 공부에 매진하면 언젠가는 큰 바다와 같은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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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홍일표 충남 입장 출생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맹자
아직 끝나지 않은 어제의 노래
둥글게 뭉친 눈덩이를 허공의 감정이라고 말할 때
돌멩이 같은 내일이 아이스크림처럼 녹는다
깊게 파인 공중에서 밤이 태어나고
눈덩이의 부피만큼 훌쭉해진 허공은 너무 질겨서 삼킨 사람이 없다
바삭거리던 나뭇잎이 공중에 몸을 밀어 넣을 때
저기 새가 날아가네
서쪽으로 기운 나무는
그것을 천 개의 손가락을 가진 바람의 연민이라고 말한다
바람이 남긴 죽은 새들과 함께
수런수런 모여드는 저녁
남은 허공을 쥐어짜면 새들의 울음이 주르르 흘러내리기도 하는
여기는 바닥에 노래가 새겨지지 않은 곳
표정 없이 자전거 바큇살에 감겨 헛도는 하늘처럼
鵲巢感想文
저녁의 표정은 시의 표정이다. 시의 표정은 화자의 표정이겠다. 우리는 시를 읽고 독해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은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 시인이 쓴 시어에 단순 포괄적인 것 같아도 어쩌면 그 시어에 내포하는 의미는 또 방대해서 많은 것을 끌어다가 우리의 머리에 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학은 바다에 허우적거리다가도 어떤 외딴 섬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혹여 그 섬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날은 기분이 좋은 것이다. 삶의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 희망은 시인이 먼저 발견하였고 믿음을 우리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시 1연, 시인은 아직 끝나지 않은 어제의 노래를 읽고 있다. 둥글게 뭉친 눈덩이를 허공의 감정이라고 말할 때, 여기서 허공은 시인을 제유한 시어다. 허공 같은 마음의 공허함을 표현한다. 돌멩이 같은 내일이 아이스크림처럼 녹는다. 내일은 돌멩이와 같은 시가 생길 것이므로 지금은 아이스크림처럼 달고 맛있는 저녁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깊게 파인 공중에서 밤이 태어나고, 공중은 허공에서 진일보한 형태다. 깊게 파였다는 말은 그만큼 시 접근성으로 더욱 밀접한 관계를 묘사한다.
시 2연, 눈덩이 부피만큼 훌쭉해진 허공은 너무 질겨서 삼킨 사람이 없다. 허공에서 공중으로 변이한 화자를 우리는 보았다. 그러므로 훌쭉해진 허공이다. 눈덩이 부피만큼은 공부의 대가로 얻은 자아를 묘사하며 너무 질겼다는 말은 시의 융통성을 말한다. 그만큼 풀며 살아야 하지만, 고정관념이 강한 것이다.
시 3연, 자연과 공중으로 극을 이룬다. 바삭거리던 나뭇잎이 공중에 몸을 밀어 넣을 때, 실은 공중이 나뭇잎을 인식하였으므로 바삭거리므로 묘사한 셈이다. 새가 날아간다는 것은 시 의미 이전이다. 서쪽으로 기운 나무는 화자의 시 이해다. 그것을 천 개의 손가락을 가진 바람의 연민이라고 말한다. 시를 읽는 독자는 이를 희망을 품은 연민이라고 표현한다. 천 개의 손가락은 천 명쯤 되는 시 독자를 제유한다.
시 4연, 바람은 허공에서 공중으로 변이한 일족이나 다름없다. 죽은 새는 시 문장을 제유하며 새들의 울음은 허공의 또 다른 바람이다. 시를 읽었으므로 시 탄생의 전조다. 아직은 바닥에 노래를 새길 때는 아닌가 보다.
시 5연, 표정 없이 자전거 바큇살에 감겨 헛도는 하늘처럼, 시인은 시를 읽었다만, 멍한 공허에 빠진 상황을 묘사한다. 자전거 바큇살에 감겨 헛도는 하늘이란 문장도 재밌게 쓴 표현이다. 하늘은 시인을 제유한 시어다. 자전거는 어떤 진행하는 도구쯤으로 생각하자면 무언가 써야 한다. 하지만, 공허한 마음을 헛도는 바큇살로 표현한 것이다.
이 시는 하늘같은 마음을 얹었다. 우리는 어제의 저녁이 자전거에 타며 진행하는 그 표정을 보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돌멩이 같은 아이스크림을 쪽쪽 거리며 빨고 있으니까 말이다.
영과이진盈科而進이라는 말이 있다. 과科는 과목이나 과정 혹은 법의 뜻도 있지만, 구덩이라는 뜻도 있다. 구덩이를 가득 채우고 나서야 흘러간다는 말이다. 시는 마음이다. 마음은 꽉꽉 차야, 시는 나오는 법이다. 그 채우는 방법은 마음을 읽고 마음을 다지며 정립하는 것이 먼저다.
맹자는 물을 보는데 방법이 있다 하여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나아가지 못한다고 했다. (觀水有術 …… 流水之爲物也 不盈科 不行) 근원이 있는 물은 용솟음치며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웅덩이를 채우고 나서야 나아가 사해로 흐른다고 했다. (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그러니 쉬지 않고 공부에 매진하면 언젠가는 큰 바다와 같은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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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홍일표 충남 입장 출생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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