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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별주부전 / 강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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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06회 작성일 17-02-16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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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별주부전 / 강희안




    세상 사 다 ‘간’이란 ‘통’에서 나왔다는 이가 있다 그는 ‘책 읽는 바보’, 간서치라 불렀다 즉 시전에 함부로 간을 내놓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가 오건을 쓰고 ‘해어도’ 평문의 서두를 꺼낸 어느 가을날 저녁, 명민한 토끼 한 마리가 쫑긋 그림 속에서 튀어 나왔다 거기 용궁에는 싱싱한 간을 찾는 힘센 자라가 있는데, 그런 간은 여기에 있다며 꾀어 왔단다 그때 쪽창이 화안하더니 노을이 빠지며 깊숙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는 정갈한 자리끼 사발에 푸른 소금을 뿌려 훠이훠이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작은 자라가 코를 킁킁 들이밀더니 물그릇 한가운데로 들어앉았다 머리가 마치 남근같이 발기하였으므로, 재빨리 다른 문맥에 덧붙여 적었다 또 한편에서는 전복이 앙큼당큼 기어와서는 주억대는 자라의 목을 넙죽 사타구니에 받아 넣으니 더욱 기이하였다 토끼가 놀라 도망갈까봐 급히 행간에 잡아놓고 말하였다 “일을 다 끝냈다. 토끼의 간정에 놀아났는데, 자라와 전복의 서사가 통했구나!” 그는 ‘간통’이란 말이 예서 나왔다는 문장을 완성하고는 쟁그렁 붓을 던졌다



鵲巢感想文
    별주부전은 조선 후기의 판소리계 소설로 토끼의 간을 먹어야 병이 낫는 용왕을 위해 육지로 나간 별주부 곧 자라가 토끼를 용궁에 데려오는 데는 성공하지만, 토끼가 간을 빼놓고 다닌다는 말로 잔꾀를 부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 도망친다는 내용이다.
    시인은 별주부전으로 시의 묘사를 그렸다. 시인이 사용한 ‘간’, ‘통’은 어찌 보면 간통으로 보이기도 하나, 틈이나 사이를 뜻하는 ‘간’, 통한다는 뜻의 ‘통’이다.
    시에서 간서치看書癡는 지나치게 책을 읽는 데만 열중하거나 책만 읽어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자아를 제유한 것으로 보인다. 간서치는 오건을 쓰고 ‘해어도’ 평문의 서두를 꺼낸 어느 가을날 저녁, 문장을 읽고 틈, 즉 생각에 이르는데 이 번득이는 사색이 토끼다. 해어도海語圖는 시인의 세계관이며 오건烏巾은 머리에 쓰는 쓰개다. 한자가 묘하게도 시적이다.
    토끼라는 시어도 참 재밌는데 성적인 용어로 쓰면 마치 조루증처럼 퍼뜩 일만 보고 나가는 남자를 빗대어 말한다. 여기서는 번득이는 사색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이에 반해 용궁과 자라와 전복은 토끼와 극을 이룬다.
    용궁은 해어도와는 별도의 세계다. 시인이 그리는 지적세계다. 싱싱한 간은 싱싱한 문장을 말하며 쪽창이 화안하다는 말은 해어도와 토끼에 그 틈이 생겨 사색의 변화를 묘사한다. 노을이 빠지며 깊숙한 그림자를 드리웠다는 말이 나온다. 시인의 시집도 시인광장에서 낸 책도 기우슥한으로 표기했는데 아무래도 이건 오타지 싶다. 문맥으로 보아 ‘깊숙한’이 맞다. 교정한다.
    자리끼는 밤에 자다가 마시기 위하여 잠자리 머리맡에 준비하여 두는 물을 말하지만, 마치 자리+끼로 읽히기도 한다. 아무래도 시라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므로 용어의 다변화를 볼 수 있다.
    결구에 가까워 “일을 다 끝냈다. 토끼의 간정에 놀아났는데, 자라와 전복의 서사가 통했구나!”라는 말은 드디어 시가 완성됐음을 말한다. 시인 즉 간서치는 간통이라는 말이 예서 나왔다는 문장을 완성하고는 쟁그렁 붓을 던진 셈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모든 시는 간통이란 말이다. 서로 통하지 않으면 시의 분화와 발전, 진화는 없겠다.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이 시는 오타가 너무 많다. 시인의 의도로 보기에는 맞지 않는 것이 많아 원문을 최대로 살려 필사했지만, 토끼의 간정도 토끼의 감정이 맞을 것 같고 쪽창이 화안하다는 말도 쪽창이 환하다는 말이 맞다. 쟁그렁은 쨍그랑이 오히려 의성어로 적합하겠다. 출판과 더불어 활자 배열이 잘못되었으리라 보인다.

    필자는 시인의 시집 ‘물고기 강의실’을 읽은 적 있다. 이 중 인상 깊었던 시 한 편을 더 소개한다.


    투명한 극지 / 강희안

    남극의 로스빙상으로부터 들려오는 늑대의 소리를 들어 봐요
    눈사태로 흘러내린 거대한 암흑의 시간을 지나
    시푸른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빙붕의 소리를 들어 봐요
    사람들이 지상의 설원에서 난파한 얼음에 떠밀렸는지
    크레바스의 행간을 따라 탁상형 빙산으로 운집하고 있어요
    소름끼치도록 푸른 기척으로 남은 황량한 눈밭에서
    노랗게 비틀린 나바호족의 신화가 첫 장을 펼치고 있어요
    차디찬 빙하의 사막을 가르며 날아오른 파리의 소리
    사람들의 어깨 위에 앉아 위독한 사생활을 타전하고 있어요
    귓가에서 파랑파랑 파르릉 무너져 내리는 빙산의 고독과
    나침반이 가리키는 바람의 일대기를 탁본하고 있어요
    사막이 모래의 기억에 바스라져 회오의 일갈에 든다면
    극지는 눈발의 문장으로 남아 투명한 지느러미 키우고 있어요
    쩍쩍 빙진의 파장이 잦아들 때쯤 사람들은 주문에 걸려요
    나바호들은 그 파리를 ‘작은 파도’라 믿고 섬기며
    남극의 로스빙상으로부터 들려오는 혼미한 소리 받아 적어요
    그들의 영혼이 처음으로 발을 디딘 극지, 루스빙하
    가장 성스러운 얼음의 행간을 오독하며 책을 덮어요
    여기에는 도무지 따뜻한 생명의 기척이라곤 없어요
    누군가 멀리 스키를 타고 험한 빙산을 미끄러져 내려갈 때
    크레바스 지대를 뒤덮은 설원 위에 찍힌 발자국 하나
    그 발자국은 매킨리 산에서 내려와 얼음 절벽을 거쳐
    멀고 먼 북극점을 향해 뻗친 난독의 길을 가요
    바위와 얼음으로 뒤덮인 밤마다 홀로 꺼내 읽는 무기질의 책
    늑대의 발자국을 따라 혼돈의 시간 저편으로 사라진
    남극의 로스빙상으로부터 들려오는 아득한 소리를 읽어 봐요


    鵲巢感想文
    투명한 극지는 투명하고 명백한 모태, 맨 끝의 땅 즉 시의 성전이다. 시 1행에서 시 26행까지 시의 묘사다. 화자와 화자가 본 세계가 대립한다. 그 세계관은 남극의 로스빙상과 그것과 어우러진 생물의 묘사 즉 늑대의 소리, 암흑의 시간, 빙붕의 소리, 난파한 얼음, 크레바스 행간, 나바호족 신화, 빙산의 고독, 바람의 일대기, 눈발의 문장, 모래의 기억, 설원 위에 찍힌 발자국, 얼음 절벽, 난독의 길, 아득한 소리는 모두 문장을 비유한다.
    각운으로 쓴 들어 봐요, 있어요, 적어요, 걸려요, 덮어요, 길을 가요, 읽어 봐요는 읽는 맛이 다분한데 마치 한 여성이 옆에서 다소곳한 목소리로 읽는 듯 시적 교감을 불러일으킨다.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라는 말이 있다. 봄이 오면 대문짝에 크게 붙이는 글귀 중 하나다. 땅을 쓰니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여니 만복이 온다는 말이다. 소掃자는 비로 쓸다, 라는 뜻이다. 어느 농부가 마당을 열심히 쓸었더니 파랗게 밝아 오는 새벽빛에 놀라 그 바닥을 확인하니 황금이었다. 요즘 경기가 매우 좋지가 않다. 서민은 돈 걱정하다가 하루가 간다. 어쩌면 이런 기회에 복권이라도 사서 작은 희망을 품기도 한다. 하지만, 황금은 일반적으로 운으로 닿지는 않는다. 인생은 어차피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이것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학문과 덕을 쌓는 이는 반드시 황금 같은 빛을 보게 될 거로 믿는다.
    시인의 시, ‘다시 쓰는 별주부전’과 ‘투명한 극지’를 보았다. 어쩌면 시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도 로스빙상과 크레바스와 같은 험난한 길이며 그러므로 이 길을 각오하고 걷는 자, 매일 비를 들고 마당을 쓸 듯 마음을 닦고 내 마음을 활짝 열어놓는다면 어찌 세상과 간하고 통하지 않을까 말이다.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다. 내가 아침을 맞았다면 마음의 마당을 먼저 쓸 것이며 이로써 마음이 열렸다면 복은 들어올 것이다.


===================================
각주]
    강희안 대전 출생 1990년 ‘문학사상’ 등단
    강희안 詩集[물고기 강의실 78p-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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