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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 투구 꽃을 생각함 / 문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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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90회 작성일 17-02-1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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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 투구 꽃을 생각함 / 문성해




    시 한 줄 쓰려고 저녁을 일찍 먹고 설거지를 하고 설치는 아이들을 닦달하여 잠자리로 보내고 시 한 줄 쓰려고 아파트 베란다에 붙어 우는 늦여름 매미와 찌르레기 소리를 멀리 쫓아내 버리고 시 한 줄 쓰려고 먼 남녘의 고향집 전화도 대충 끊고 그 곳 일가붙이의 참담한 소식도 떨궈 내고 시 한 줄 쓰려고 바닥을 치는 통장 잔고와 세금독촉장들도 머리에서 짐짓 물리치고 시 한 줄 쓰려고 오늘 아침 문득 생각난 각시 투구 꽃의 모양이 새초롬하고 정갈한 각시 같다는 것과 맹독성인 이 꽃을 진통제로 사용했다는 보고서를 떠올리고 시 한 줄 쓰려고 난데없이 우리 집 창으로 뛰쳐 들어온 섬서구 메뚜기 한 마리가 어쩌면 시가 될 순 없을까 구차한 생각을 하다가 그 틈을 타고 쳐들어온 윗집의 뽕작 노래를 저주하다가 또 뛰쳐 올라간 나를 그 집 노부부가 있는 대로 저주할 것이란 생각을 하다가 어느 먼 산 중턱에서 홀로 흔들리고 있을 각시투구 꽃의 밤을 생각한다
    그 수많은 곡절과 무서움과 고요함을 차곡차곡 재우고 또 재워 기어코 한 방울의 맹독을 완성하고 있을



鵲巢感想文
    시어로 사용한 ‘가시 투구꽃’이, 이 시를 읽는데 요점이다. 각시 투구꽃은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25cm 정도며, 잎은 어긋나고 잎자루가 길다. 뿌리는 굵고 줄기는 섬세하며 곧다. 7~8월에 짙은 자주색 꽃이 줄기 끝에 1~3개 핀다. 독이 있는 식물로 높은 산의 계곡에서 자라며, 한국의 함경, 중국의 만주 등지에 분포한다. 물론 사전적 의미다. 필자는 촌에서 크고 자랐지만, 이 의미를 알고 눈여겨본 꽃이 아니라 실은 꽃을 모른다. 하지만, 이 꽃의 가장 큰 의미는 독이 있는 식물이라는 것이다.
    이 시는 ‘시 한 줄 쓰려고’라는 시구가 반복적으로 읽혀 어떤 운을 띄우는 역할을 한다. 이 시의 가장 큰 요점인 각시 투구꽃은 시 중간쯤에 그 모습이 더러 나는데 마치 영화 ‘관상’을 보는 격하다. 주인공 수양은 무뢰배로 그 무리와 더불어 배경음악까지 심상치 않게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적인데 영화에 비하면 어떤 카리스마적인 모양은 좀 덜할지 모르지만, 이 시 또한 만만치는 않아 보인다. 시 한 줄 쓰려는데 죽 진행하다가 시 중간쯤 각시와 각시 투구꽃 그리고 진통제로 사용했다는 맹독을 그린다. 결구에 나아가 각시 투구꽃의 자태는 시의 맹독을 결국, 품게 했다.
    시인은 시 한 줄 쓰려고 사소한 일상의 어떤 존재는 망각하고 또 뿌리쳐버리지만 결국 시 한 수 쓰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시인의 이러한 몸짓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각시 투구꽃은 그 수많은 곡절과 무서움과 고요함을 차곡차곡 재우고 또 재워, 기어코 한 방울의 맹독을 완성한다. 물론 각시 투구꽃이라는 자연의 소재로 그 비유를 놓은 셈이지만, 그 어떤 것도 시가 되지 않을 소재가 있겠는가마는 각시 투구꽃이 품는 맹독은 세상을 보는 각시 투구꽃만의 생존과 환경을 지키려는 의지가 몹시 강하다고 보아야겠다.

    화자는 시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을 이 시를 통해 표현했다. 대학에 지어지선至於至善라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지극히 선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가 되려면 무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지어지선至於至善은 최선을 다하는 자세 완전무결한 태도를 뜻한다.
    시의 창업과 수성은 일의 창업과 수성이다. 당 태종은 어느 길이 가장 어려운 것이냐고 신하를 불러 모아 물어보기도 했지만, 어느 길이든 극치의 길이다. 일의 시작에 그 어려움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마는 창업과 더불어 이것을 지켜나는 것은 그 평행선을 유지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그 어려움을 무엇으로 표현한다고 해도 부족할 듯싶다.
    시 한 줄 쓰려고 저녁을 일찍 먹고 설거지를 하고 설치는 아이들을 닦달하여 잠자리로 보내고 시 한 줄 쓰려고 마음을 가다듬고 자리에 앉아 보지만, 세상은 여러 군소리로 점철되어 있음이다. 이 소란한 정국에 나를 지키는 것은 오로지 고요함을 바탕으로 심성을 다듬는 것이며 한 방울 맹독 같은 철학과 불굴의 의지만이 나를 지켜줄 수 있음을 이 시는 내심 강조한다.


    근래에 시인은 ‘밥이나 한 번 먹자고 할 때’ 시집을 발표했다. 책거리 삼아 이 중 한 편을 감상에 붙인다.


    배꼽 / 문성해

    오래전의 누가 내 아랫배에다 꿰매놓았다 꾸들꾸들하고 말랑한 단추 하나를

    그 속에는 돌돌 말린 때가 있고 나는 이따금씩 오십 년이나 묵은 그 때를 후비며 나를 이 땅에 쏟아낸 이의 아랫배 깊숙이 숨어 있는 내 것보다 더 우묵하고 오래된 그것을 생각한다 그 속에 깃든 수많은 협곡과 어둠도 생각한다

    당신과 내가 연결되어 있었던 한때 우리를 이어주던 뜨겁고 붉은 실이여

    하여 내 단추와 당신의 단추는 굳이 대보지 않아도 우리의 제비초리처럼 참 많이도 닮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鵲巢感想文
    어쩌면 필자의 시 감상문은 배꼽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태는 역시 시인의 글이다. 이렇게 한 줄 꿰매놓는 것은 돌돌 말린 때다. 공부는 모태가 되는 경전 같은 글이 없다면 어렵다. 읽고 필사하며 왜 그래야만 했는지 곰곰 생각하며 자아의 철학을 다지며 심어나간다.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이 있다. 공자와 그의 제자 자하와의 대화에서 나온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에 먼저 있고 나서 색칠을 한다는 것으로 공자의 숨은 뜻은 인이 있고 나서야 예가 있다는 말씀이었다.
    어떤 일이든 바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바탕과 기초가 없는데 어찌 건물이 오르며 인간관계가 바로 서겠는가? 반듯한 시집을 원한다면 우선 반듯한 삶이 있어야하며 모태 같은 시집을 읽으며 배꼽 같은 돌돌 말린 철학을 남겨야겠다.

    학문은 널리 배워서(博學) 꼬치꼬치 물으며(審問) 신중하게 생각한(愼思) 다음 명확한 판단이(明辯) 따라야 한다. 그 다음은 거침없는 행동(篤行)으로 그 가치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그 가치가 바로 섰다면 활자화 하는 데 있어 머뭇거리지 마라!
    떳떳하라.


===================================
각주]
    문성해 경북 문경 출생 1998 <매일신문> 신춘문예 2003 <경향신문> 당선
    문성해 시집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문학동네, 68p
    시인의 시 두 편 모두 행 가름이 되어 있었으나 지면 관계상 붙였다. 시인께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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