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관측 2 / 천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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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03회 작성일 17-02-20 00:09본문
행성관측 2 / 천서봉
-원룸
B102호, B103호……. 혹성의 이름 같은, 홀씨들이 벽마다 실금 긋는 방이다. 생의 캄캄한 산문散文을 위하여 아침은 햇살을 끌어다 담장너머로 던져주는 집배원의 말간 손가락 같다. 밤새 누군가 유리창에 쓰고 간 선명한 무늬들, 남루겠지. 서로 기대지 못한 것들은 모두가 궤도였네.
깊고 천박하여 내 잠은 알지 못했네. 밤이 어디로부터 와서 열병 앓는지. 서늘한 아궁이 속, 하얀 운석의 사리들을 긁어 대문 밖에 내다놓는다. 푸른 쓰레기차를 보낸다. 저 빛을 따라가고 싶어, 벽마다 뿌리가 자라는 방이라면 금 너머 어딘가 숲이 있었다는 뜻일까. 메아리 깊은 방, 하나를 말하면 하나가 벌거벗고 돌아오는 방.
카타콤 같은, 기억은 쉽게 땅 위로 떠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문門은 하나이니까…….중얼거리는 방. 두 개인 것 없는 방. 미라처럼 햇살이 쓸쓸함을 깊이 감아 도는 방. 아무도 깨워주지 않는 방. <잠만 잘 분> 그렇게 구한 방. 자고 일어나 또다시 잠만 자는, 홀로 자전하는 방.
鵲巢感想文
시인의 시집 “서봉氏의 가방”을 2년 전에 사 본 적 있다. 시마을에 시 감상문을 적어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웹진 시인광장에서 선정한 작품집에서도 시인의 시집을 만나볼 수 있었어, 반가웠다.
이 시를 읽고 느낀 점은 시인의 원룸 생활에 어떤 고독 같은 것이 보인다. 글 읽는 내내 차분하고 가라앉은 듯 읽힌다. 시인이 생활하는 방(원룸)을 행성에다 비유를 놓았으니 절묘한 시 한 수 얻은 셈이다. 그러니까 원룸 건물에 원룸 하나는 모두 혹성의 이름을 갖는다. 그 이름은 B102호, B103호…….
이러한 혹성의 하나는 모두 시다. 시가 모여 사는 곳이 시집이다. 원룸건물이다. 홀씨 같은 생각의 파편들이 가늘게 오가며 어쩌면 집배원의 소식만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햇살 보며 멍하니 서 있는 곳 남루한 유리창엔 흐릿한 망상만 떠오르는 그런 행성의 궤도와 같은 곳이 원룸이다. 시 1연은 시의 전개다.
시도 그렇고 사는 것도 그렇고 모두 깊고 천박하기만 하다. 하지만 밤은 열병처럼 한 편의 시 쓰기 위해 매진하며 이렇게 하여 생산한 잡다한 사리와 같은 쓰레기는 대문 밖에 내다 놓는다. 그러면 푸른 쓰레기차는 싣고 간다. 어쩌면 저 쓰레기차가 시일지도 몰라! 저 빛처럼 행성을 가로지르며 나가니까! 내가 머무는 방, 벽마다 온통 생각의 뿌리로 자란 나무의 숲으로 우거져 있다. 하나를 말하면 하나가 푸르고 하나가 푸르면 하나가 죽는 혹성 같다. 시 2연은 시의 발전이다.
카타콤(지하묘지) 같다. 기억은 갇혔어 지면 위에 서지는 못하고 그러나 길을 잃지 않겠다고 다부지게 말하는 시인이다. 왜? 어차피 門은 하나니까! 이미 들어왔으니까 시를 생산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앞의 말은 시의 고체화다. 고체화된 자아를 발견한 것이 된다.
그러니까 이미 들어 온 방, 중얼거리는 방, 두 개일 수 없는 방, 미라처럼 햇살이 쓸쓸하게 깊이 감아 도는 방, 아무도 깨워주지 않는 방, 자고 일어나 또다시 잠만 자는 방, 홀로 자전하는 방, 이외에도 여러 방으로 묘사할 수 있겠으나 시인은 여기서 그쳤다. 이 모두는 시인의 심적 묘사이자 詩의 묘사다.
시를 읽으면, 시작법이 보인다.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말이다. 마음을 그리돼 역지사지와 시안을 가져야 한다. 이 시안은 독자의 가슴에 뭔가 뚫을 수 있는 홀씨 같은 것을 제공한다. 시를 읽을 때면 대체로 가을에 접한다. 가을에 핀 꽃을 보며 씨앗 같은 열매를 맺고 싶은 것이 독자다.
여기서 공자와 자공의 대화를 옮겨본다.
자공이 말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괜찮다. 그러나 아직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다." 자공이 말했다. "『시경』에 '자른 것 같고 간 것 같고 쫀 것 같고 닦은 것 같다'라고 한 것은 아마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겠군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는 이제 함께 『시경』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게 지나간 일을 일러주었더니 앞으로 닥쳐올 일을 아는구나."
어느 때든 삶이 지옥 같은 시절은 누구나 있었다. 보잘것없는 원룸에 살았던 적도 있었다. 끼니도 잘 챙겨 먹지 못했던 젊은 시절,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생활을 찾을 수 있을까 하며 고민했던, 내가 어떤 위치인가를 깨달을 때 삶은 조금씩 나아졌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렵고 힘든 시절이 있었다. 어렵고 힘든 시절을 가장 현명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책이다. 책만큼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삶을 깨우칠 수 있는 길도 없을 것이다.
책은 가난한 내가 즐거움을 찾는 방법이며 혹여나 부와 더불어 사회를 이루었을 때도 책만큼 예를 갖추는 것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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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천서봉 1971년 서울 출생 2005년 <작가세계> 등단
자공왈子貢曰: "빈이무첨貧而無諂, 부이무교富而無驕, 하여何如?" 자왈子曰: "가야可也. 미약빈이락未若貧而樂, 부이호례자야富而好禮者也." 자공왈子貢曰: "『시詩』운云: '여절여차如切如磋, 여탁여마如琢如磨,' 기사지위여其斯之謂與!" 자왈子曰: "사야시가여언賜也始可與言『시詩』이의已矣, 고제왕이지래자告諸往而知來者."
-원룸
B102호, B103호……. 혹성의 이름 같은, 홀씨들이 벽마다 실금 긋는 방이다. 생의 캄캄한 산문散文을 위하여 아침은 햇살을 끌어다 담장너머로 던져주는 집배원의 말간 손가락 같다. 밤새 누군가 유리창에 쓰고 간 선명한 무늬들, 남루겠지. 서로 기대지 못한 것들은 모두가 궤도였네.
깊고 천박하여 내 잠은 알지 못했네. 밤이 어디로부터 와서 열병 앓는지. 서늘한 아궁이 속, 하얀 운석의 사리들을 긁어 대문 밖에 내다놓는다. 푸른 쓰레기차를 보낸다. 저 빛을 따라가고 싶어, 벽마다 뿌리가 자라는 방이라면 금 너머 어딘가 숲이 있었다는 뜻일까. 메아리 깊은 방, 하나를 말하면 하나가 벌거벗고 돌아오는 방.
카타콤 같은, 기억은 쉽게 땅 위로 떠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문門은 하나이니까…….중얼거리는 방. 두 개인 것 없는 방. 미라처럼 햇살이 쓸쓸함을 깊이 감아 도는 방. 아무도 깨워주지 않는 방. <잠만 잘 분> 그렇게 구한 방. 자고 일어나 또다시 잠만 자는, 홀로 자전하는 방.
鵲巢感想文
시인의 시집 “서봉氏의 가방”을 2년 전에 사 본 적 있다. 시마을에 시 감상문을 적어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웹진 시인광장에서 선정한 작품집에서도 시인의 시집을 만나볼 수 있었어, 반가웠다.
이 시를 읽고 느낀 점은 시인의 원룸 생활에 어떤 고독 같은 것이 보인다. 글 읽는 내내 차분하고 가라앉은 듯 읽힌다. 시인이 생활하는 방(원룸)을 행성에다 비유를 놓았으니 절묘한 시 한 수 얻은 셈이다. 그러니까 원룸 건물에 원룸 하나는 모두 혹성의 이름을 갖는다. 그 이름은 B102호, B103호…….
이러한 혹성의 하나는 모두 시다. 시가 모여 사는 곳이 시집이다. 원룸건물이다. 홀씨 같은 생각의 파편들이 가늘게 오가며 어쩌면 집배원의 소식만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햇살 보며 멍하니 서 있는 곳 남루한 유리창엔 흐릿한 망상만 떠오르는 그런 행성의 궤도와 같은 곳이 원룸이다. 시 1연은 시의 전개다.
시도 그렇고 사는 것도 그렇고 모두 깊고 천박하기만 하다. 하지만 밤은 열병처럼 한 편의 시 쓰기 위해 매진하며 이렇게 하여 생산한 잡다한 사리와 같은 쓰레기는 대문 밖에 내다 놓는다. 그러면 푸른 쓰레기차는 싣고 간다. 어쩌면 저 쓰레기차가 시일지도 몰라! 저 빛처럼 행성을 가로지르며 나가니까! 내가 머무는 방, 벽마다 온통 생각의 뿌리로 자란 나무의 숲으로 우거져 있다. 하나를 말하면 하나가 푸르고 하나가 푸르면 하나가 죽는 혹성 같다. 시 2연은 시의 발전이다.
카타콤(지하묘지) 같다. 기억은 갇혔어 지면 위에 서지는 못하고 그러나 길을 잃지 않겠다고 다부지게 말하는 시인이다. 왜? 어차피 門은 하나니까! 이미 들어왔으니까 시를 생산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앞의 말은 시의 고체화다. 고체화된 자아를 발견한 것이 된다.
그러니까 이미 들어 온 방, 중얼거리는 방, 두 개일 수 없는 방, 미라처럼 햇살이 쓸쓸하게 깊이 감아 도는 방, 아무도 깨워주지 않는 방, 자고 일어나 또다시 잠만 자는 방, 홀로 자전하는 방, 이외에도 여러 방으로 묘사할 수 있겠으나 시인은 여기서 그쳤다. 이 모두는 시인의 심적 묘사이자 詩의 묘사다.
시를 읽으면, 시작법이 보인다.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말이다. 마음을 그리돼 역지사지와 시안을 가져야 한다. 이 시안은 독자의 가슴에 뭔가 뚫을 수 있는 홀씨 같은 것을 제공한다. 시를 읽을 때면 대체로 가을에 접한다. 가을에 핀 꽃을 보며 씨앗 같은 열매를 맺고 싶은 것이 독자다.
여기서 공자와 자공의 대화를 옮겨본다.
자공이 말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괜찮다. 그러나 아직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다." 자공이 말했다. "『시경』에 '자른 것 같고 간 것 같고 쫀 것 같고 닦은 것 같다'라고 한 것은 아마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겠군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는 이제 함께 『시경』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게 지나간 일을 일러주었더니 앞으로 닥쳐올 일을 아는구나."
어느 때든 삶이 지옥 같은 시절은 누구나 있었다. 보잘것없는 원룸에 살았던 적도 있었다. 끼니도 잘 챙겨 먹지 못했던 젊은 시절,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생활을 찾을 수 있을까 하며 고민했던, 내가 어떤 위치인가를 깨달을 때 삶은 조금씩 나아졌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렵고 힘든 시절이 있었다. 어렵고 힘든 시절을 가장 현명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책이다. 책만큼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삶을 깨우칠 수 있는 길도 없을 것이다.
책은 가난한 내가 즐거움을 찾는 방법이며 혹여나 부와 더불어 사회를 이루었을 때도 책만큼 예를 갖추는 것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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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천서봉 1971년 서울 출생 2005년 <작가세계> 등단
자공왈子貢曰: "빈이무첨貧而無諂, 부이무교富而無驕, 하여何如?" 자왈子曰: "가야可也. 미약빈이락未若貧而樂, 부이호례자야富而好禮者也." 자공왈子貢曰: "『시詩』운云: '여절여차如切如磋, 여탁여마如琢如磨,' 기사지위여其斯之謂與!" 자왈子曰: "사야시가여언賜也始可與言『시詩』이의已矣, 고제왕이지래자告諸往而知來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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