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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늙은 여자가 좋다 / 강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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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826회 작성일 17-02-25 18:59

본문

나는 늙은 여자가 좋다 / 강은진




    나는 늙은 여자가 좋다

    어떤 손놀림에도 일어서지 않을 / 평온한 유방을 가졌기 때문에 / 바람에게 여러 갈래 길을 터주는 / 성근 머리칼을 가졌기 때문에 / 빈 등을 쓸어줄 때 바스락 소리를 내는 / 비닐 같은 손가죽을 가졌기 때문에 / 늙은 여자가 좋다

    구름을 닮아 가는 실루엣을 / 기교 없는 음성을 / 눈가의 주름을 / 좋아한다

    치욕을 먼저 잊는 망각의 기술로 여자를 잊고 / 달처럼 흐르고 흙처럼 젖으며 몸으로 치르는 계절 / 시간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그 파동 속에 있어서 / 나는 늙은 여자가 좋다

    태어날 때 그랬듯 잇몸으로 울고 웃고 / 물 말아 밥을 먹다가 문득 / 제사상에 바나나와 커피를 올려 달라 유언하는 소리 / 가까운 험담은 못 듣고 / 먼 산 꽃 지는 건 가장 먼저 알아챌 때 / 어느 새벽 고요히 머리 빗는 소리

    그래서 나는 늙은 여자가 좋다 / 좋아서 억새처럼 누웠다가 / 여자처럼 늙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늙은 여자가, 좋다



鵲巢感想文
    집에 어머님을 생각하게끔 시 한 편이다. 따뜻하게 읽었다. 시인이 말한 늙은 여자는 이상이다. 시는 비유이기 때문에 실지, 늙은 여자로 되어 가겠지만, 여기서 말한 늙은 여자는 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안식을 말한다. 그러므로 나는 늙은 여자가 좋다.
    어떤 손놀림에도 일어서지 않을 평온한 유방을 가졌고 바람에게 여러 갈래 길을 터주는 성근 머리칼을 가졌기 때문에 빈 등을 쓸어줄 때 바스락 소리를 내는 비닐 같은 손가죽을 가졌기 때문은 모두 시의 묘사다. 문장의 도치로 어떤 강조점을 앞에 내세웠다.
    그러니까 어떤 손놀림에도 일어서지 않는다든가 여러 갈래 길을 터준다든가 빈 등을 쓸어줄 때 바스락 그리는 소리는 모두 늙은 여자가 가지는 특성이자 시가 갖는 특징이다.
    구름을 닮아 가는 실루엣 같은 글은 늙은 여자처럼 우리가 바라는 상이다. 기교 없는 음성을 담은 것 같아도 눈가의 주름을 잡아도 한 편의 시가 편안하게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시 한 편에 치욕 같은 것은 먼저 잊었으면 싶고 달처럼 흐르고 흙처럼 젖으며 몸으로 치르는 계절이었으면 바란다. 시는 태어날 때 그랬듯 잇몸으로 울고 웃고 물 말아 밥을 먹다가 문득 제사상에 바나나와 커피를 올려 달라는 유언하는 소리처럼 닿기도 한다. 바나나와 커피의 색감에 주목하자. 시는 가까운 험담은 못 듣고 먼 산 꽃 지는 건 가장 먼저 알아챌 때 어느 새벽 고요히 머리 빗는 소리와 같다. 그러니까 시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다. 어느 새벽에 고요히 머리 빗는 소리와 같다는 말은 내 삶을 성찰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책을 본다거나 기도를 한다거나 또 다른 여러 수련법이 있겠다.
    그래서 나는 늙은 여자가 좋다. 좋아서 억새처럼 누웠다가 여자처럼 늙을 것이다. 억새의 색감도 억새가 사는 환경도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억새는 하얗고 주위가 훤한 산마루 같은 곳에 사니 화자의 심정까지 얼추 헤아려볼 만하다 싶다.
    나는 그렇게 늙은 여자가, 좋다.

    시인의 詩가 차분하고 읽는 맛까지 더하니 언뜻 생각나는 시가 있다. 시인 송찬호 선생의 시 ‘얼음의 문장 12’이다. 선생의 시 ‘얼음의 문장’은 탐미적인 데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의도적이지는 않다.


얼음의 문장 12 / 송찬호

    그는 나뭇가지 속에 매장되었다 나뭇가지들이 그의 몸 안에서 길을 찾기 위해 서로 격투를 벌였다 그들의 오랜 무기였던 횃불을 밝혀 든 채,
    탁, 탁 불꽃은 격렬한 소리를 내며 탄다 불꽃이 그를 높이 치켜올린다 다른 해안, 다른 새벽으로 그를 밀어보내기 위하여
    마침내 그들은 노 젓기를 멈춘다 새들의 얼어 떨어지는 높은 곳에서 그의 늙은 손, 그 노를 가슴에 얹어놓은 채
    이제 오랫동안 뱃사람들은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의 혼을 외쳐 부르던, 그의 몸에 달라붙은 조개 구멍들이 그 치명적인 항구를 보여줄 것이다


    선생의 시집 ‘10년 동안의 빈 의자’에 수록한 시 한 편이다. 위 시 ‘나는 늙은 여자가 좋다’와 차분히 읽다가도 시 종연에 이르면 조개 구멍들이 그 치명적인 항구를 보여준다는 것에 그만 웃음이 일었다. 왜냐하면, 조개껍데기가 나올법한데 조개 구멍이었다. 거기다가 노 젓는 것과 나뭇가지는 해학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나뭇가지는 자아를 제유한 시어며 이를 갑이라 하면 그는 을이다. 나뭇가지는 횃불과 불꽃으로 변이하다가 노와 늙은 손으로 이동한다. 을인 그는 그들에 한 부분이며 그들은 새들의 얼어 떨어지는 높은 곳에 있으며 우리가 모르는 조개 구멍까지 붙어 있다. 치명적인 항구를 보여준다는 말은 결국, 문장을 보겠다는 말이다.
    詩는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이리저리 바꾸어 생각하다 보면 시가 참 재밌게 닿을 때가 있다. 그리 어렵지 않고 재미까지 얹어놓고 어떤 교훈까지 심었다면 시가 독자들께 외면당하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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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강은진 서울 출생 201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등단
    송찬호 시집 ‘10년 동안의 빈 의자’ 58p 얼음의 문장 12 詩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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