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뢰침 /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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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84회 작성일 17-03-05 00:09본문
피뢰침 / 김승일
하나의 번개가 흔들지 못한 / 나의 가느다란 기립은 무엇인가
피뢰침은 솜털 피뢰침은 지붕 위의 짐승
다만 아프다 / 아프게 활공하는 붉은 구름을 두 쪽으로 가르는 것들이
아프게 활공하는 붉은 구름이 저 멀리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 / 아프다
조용히 흘러나오는 울음처럼 기립한 자가 기립한 자들 속에서 걸어 나와 칼날이 되어간다 / 땅속에 묻혀 있던 작고 반짝이는 쇳조각에 발이 베인 기분은 어떤가
사람들의 신발은 조금씩 깎여 나갈 것이다 더러운 고양이가 / 혀를 대보곤 깜짝 놀라 사람의 표정 같은 골목을 바라본다
鵲巢感想文
시제 피뢰침避雷針은 번개를 피하고자 땅에 세운 바늘 같은 금속제 봉이다. 여기서는 시적 교감을 표현하는 지표다. 번개는 시 인식이며 솜털 피뢰침은 어떤 감각적 표현으로 보면 좋겠다. 마치 코털처럼 감지하는 능력 말이다. 지붕은 자아를 제유하며 짐승은 어떤 특정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개체다.
다만 아프다. 아프게 활공하는 붉은 구름을 두 쪽으로 가르는 것들이,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정신적으로 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여야 하므로 육체적 닿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심동신피心動神疲라 했다. 마음이 움직이면 정신이 피로하다는 말이다.
詩는 붉은 구름이다. 이 붉은 구름을 두 쪽 가르는 것도 다시 하나로 뭉치는 것도 아픈 일이다. ‘조용히 흘러나오는 울음처럼 기립한 자’는 자아며 ‘기립한 자들’은 이미 굳은 세계, 詩다. 시 인식의 결과로 시 탄생을 보고 있다. 이는 칼날처럼 정교하며 한 치 흩트림이 없는 詩로 변모한다.
땅속에 묻혀 있던 작고 반짝이는 쇳조각은 기립한 자들이다. 발이 베인 것은 시 인식과 혹여나 피를 쏟는 표현이라도 있으면 시는 더 완성미를 갖출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화자는 이를 의문형으로 독자의 몫으로 돌렸다. 쇳조각에 발이 베인 기분은 어떤가?
사람들의 신발은 조금씩 깎여 나갈 것이다. 이 한 문장만 보아도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활동적인 측면에서 줄어든 영역이거나 사람의 믿음信發 혹은 사람의 신발新發, 어느 것도 피뢰침에 조금씩 깎여 나가겠다. 깎이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추증이다. 詩는 능동적이야 하므로 추증은 피해야 하지만, 화자는 분명 이유가 있겠다.
더러운 고양이는 시 인식 이전 단계의 심적 묘사다. 혀를 대보곤 깜짝 놀라 사람의 표정 같은 골목을 바라보는 것은 시 인식과 이를 통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진입이겠다. 그러므로 아까, 사람들의 신발은 조금씩 깎여 나갈 것이라는 단증을 달았지만 이는 골목을 바라보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골목은 시를 제유한다. 골목 같은 현실을 깨닫고 헤쳐 나오고 싶은 시인의 욕망을 그려볼 수도 있겠다.
카카오뮤직이라는 네트워크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사서 내 방에 심어 놓고 가끔 듣기도 하며 또 내 방에 찾아오는 손님이 취향이 맞으면 클릭하여 듣기도 한다. 듣고 마음에 들면 의사표시까지 할 수 있다. 피뢰침 같은 교류의 장이다.
요즘 사람, 시를 그리 많이 읽지 않는다고 하지만, 카스에 오른 자작시는 꽤 많다. 시만 매일 같이 올리는 동호인도 있다. 이렇게 바쁜 시간에 시의 맹신이며 절대복종한다. 어쩌면 시는 피뢰침이 맞다. 세상과 교류하는 철봉이다.
피뢰침 같은 글을 우리는 매일 쓴다. 세상에 던지는 암묵적 존재의 화두다. 언어의 바다에 물을 희석하며 물타기 한다. 물타기는 자신의 존재 부각이다. 마음을 씻고 마음을 닦고 마음을 비우고 마음은 하얗게 변한다. 소금처럼 하얗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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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김승일 1981년 서울 출생 2007년 <서정시학> 등단
하나의 번개가 흔들지 못한 / 나의 가느다란 기립은 무엇인가
피뢰침은 솜털 피뢰침은 지붕 위의 짐승
다만 아프다 / 아프게 활공하는 붉은 구름을 두 쪽으로 가르는 것들이
아프게 활공하는 붉은 구름이 저 멀리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 / 아프다
조용히 흘러나오는 울음처럼 기립한 자가 기립한 자들 속에서 걸어 나와 칼날이 되어간다 / 땅속에 묻혀 있던 작고 반짝이는 쇳조각에 발이 베인 기분은 어떤가
사람들의 신발은 조금씩 깎여 나갈 것이다 더러운 고양이가 / 혀를 대보곤 깜짝 놀라 사람의 표정 같은 골목을 바라본다
鵲巢感想文
시제 피뢰침避雷針은 번개를 피하고자 땅에 세운 바늘 같은 금속제 봉이다. 여기서는 시적 교감을 표현하는 지표다. 번개는 시 인식이며 솜털 피뢰침은 어떤 감각적 표현으로 보면 좋겠다. 마치 코털처럼 감지하는 능력 말이다. 지붕은 자아를 제유하며 짐승은 어떤 특정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개체다.
다만 아프다. 아프게 활공하는 붉은 구름을 두 쪽으로 가르는 것들이,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정신적으로 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여야 하므로 육체적 닿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심동신피心動神疲라 했다. 마음이 움직이면 정신이 피로하다는 말이다.
詩는 붉은 구름이다. 이 붉은 구름을 두 쪽 가르는 것도 다시 하나로 뭉치는 것도 아픈 일이다. ‘조용히 흘러나오는 울음처럼 기립한 자’는 자아며 ‘기립한 자들’은 이미 굳은 세계, 詩다. 시 인식의 결과로 시 탄생을 보고 있다. 이는 칼날처럼 정교하며 한 치 흩트림이 없는 詩로 변모한다.
땅속에 묻혀 있던 작고 반짝이는 쇳조각은 기립한 자들이다. 발이 베인 것은 시 인식과 혹여나 피를 쏟는 표현이라도 있으면 시는 더 완성미를 갖출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화자는 이를 의문형으로 독자의 몫으로 돌렸다. 쇳조각에 발이 베인 기분은 어떤가?
사람들의 신발은 조금씩 깎여 나갈 것이다. 이 한 문장만 보아도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활동적인 측면에서 줄어든 영역이거나 사람의 믿음信發 혹은 사람의 신발新發, 어느 것도 피뢰침에 조금씩 깎여 나가겠다. 깎이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추증이다. 詩는 능동적이야 하므로 추증은 피해야 하지만, 화자는 분명 이유가 있겠다.
더러운 고양이는 시 인식 이전 단계의 심적 묘사다. 혀를 대보곤 깜짝 놀라 사람의 표정 같은 골목을 바라보는 것은 시 인식과 이를 통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진입이겠다. 그러므로 아까, 사람들의 신발은 조금씩 깎여 나갈 것이라는 단증을 달았지만 이는 골목을 바라보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골목은 시를 제유한다. 골목 같은 현실을 깨닫고 헤쳐 나오고 싶은 시인의 욕망을 그려볼 수도 있겠다.
카카오뮤직이라는 네트워크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사서 내 방에 심어 놓고 가끔 듣기도 하며 또 내 방에 찾아오는 손님이 취향이 맞으면 클릭하여 듣기도 한다. 듣고 마음에 들면 의사표시까지 할 수 있다. 피뢰침 같은 교류의 장이다.
요즘 사람, 시를 그리 많이 읽지 않는다고 하지만, 카스에 오른 자작시는 꽤 많다. 시만 매일 같이 올리는 동호인도 있다. 이렇게 바쁜 시간에 시의 맹신이며 절대복종한다. 어쩌면 시는 피뢰침이 맞다. 세상과 교류하는 철봉이다.
피뢰침 같은 글을 우리는 매일 쓴다. 세상에 던지는 암묵적 존재의 화두다. 언어의 바다에 물을 희석하며 물타기 한다. 물타기는 자신의 존재 부각이다. 마음을 씻고 마음을 닦고 마음을 비우고 마음은 하얗게 변한다. 소금처럼 하얗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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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김승일 1981년 서울 출생 2007년 <서정시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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