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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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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25회 작성일 17-03-06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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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 김경미




    도장을 어디다 두었는지 계약서를 어디다 두었는지

    구름을 어디다 띄웠는지 유리창을 어디다 달았는지

    적어놓지 않으면 다 잊어버린다

    손바닥에 적어 놓기를 잊어버려 바다도 그냥 지나쳤다
    발뒤꿈치에라도 적었어야 했는데 새 구두에 절룩대며
    약국도 그냥 지나쳤다
    시계도 적는 걸 잊자 한 달이 어디선가 썩어 버리거나
    토끼 똥같이 작고 새까매졌다

    어디 단단히 적어 두지 않으니
    살아 있다는 것도 깜박 잊어 살지 않곤 한다

    다만 슬픔만이
    어디 따로 적어 두지 않아도
    기어이 눈물 자국을 남긴다



鵲巢感想文
    필자는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일기를 쓴다. 간혹 이 일기도 나를 먹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때는 집착이었다. 우스운 일이다. 하루 마감하며 되돌아보는 시간이 그 하루를 먹고 있으니 말이다. 수첩 같은 인생이다.
    나이 들수록 형편은 좀 더 나아질 거로 생각했지만, 시간은 오히려 더 젊고 발 빠르고 민첩함을 필요로 한다. 생활비는 점점 더 들고 소득은 예전에 비하면 크게 나아진 게 없다. 그러니 더 열심히 뛰어다녀야 현상유지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몸은 늙었다.
    16년 말에서 17년 초, 우리는 대통령 탄핵을 맞아 국정 공백 상태로 연말·연초를 보냈다. 중국은 사드 문제로 부지를 이양한 롯데그룹에 제재를 본격화하였으며 소녀상과 더불어 일본과의 외교 문제와 미 트럼프체제의 신자국보호주의 정책 기조는 우리 경제를 더 암울하게 한다.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놓아야 하지만, 목 없는 몸뚱어리는 몸부림만 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국내 물가는 하루가 다르고 서민은 조세와 준조세에 부담은 더 가중되었고 가처분 소득은 더 줄어들었다. 그러니 삶의 수준은 예전보다 더 떨어졌다. 국민 소비 증가는 쉬워도 소비 감축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한 달 평균 200만 원 쓰는 집이 170만 원이나 그 이하로 줄일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허리띠 더 졸라매며 일을 하지만, 그렇다고 영업이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라 가슴만 답답하다. 여유는 더 없어졌고 매사 일은 뒤죽박죽이다.
    잊자, 잊자, 이겨나가자. 나비는 거저 하늘 나는 것이 아니었다. 작은 알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한 점의 공간을 우주로 삼고 소중히 생명을 간직하며 고독과 적막의 밤을 이겼다. 징그러운 번데기의 옷을 입고도 한시도 자신의 성장을 멈추지 않았던 각고의 시절을 이겼다. 이제 꽃잎처럼 나래를 열어 찬란히 솟아오른 나비, 우람한 승리의 화신으로 가볍게 하늘 나는 나비를 보라.

    이제 봄이다. 세상 만물은 새 세상 그리며 튀어 오르고 있다. 그래서 봄이다. 수첩처럼 인생을 적는 것이 아니라 도장은 도장이 있는 곳에 있고 계약서는 계약서가 있는데 있으며 구름은 늘 하얗게 떠다녀도 구름이며 유리창 보며 밝은 태양을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는 나를 확인하며 살자.
    나타샤는 봄을 사랑하고 벚꽃 팍팍 터뜨리는 어느 막창집 식탁에 앉아 다만 슬픔이 아닌 희망 품은 내일을 생각하며 가볍게 소주 한 잔 마시는 것도 좋다. 풀이 눕고 바람이 불고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직근과 만근의 뿌리를 다지며 바람보다 먼저 웃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 날은 흐려도 절대 쓰러지지 않는 민초의 삶을 엮어나가자. 태양은 구름에 가려도 올곧게 떠 있으니 당당하게 서서 하루 이겨나가자.


===================================
각주]
    김경미 1959년 서울 출생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신영복의 언약 ‘처음처름’ 나비역사 1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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