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수요일 / 최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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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29회 작성일 17-03-23 19:14본문
두 개의 수요일 / 최호일
수요일엔 행복해지고
수요일엔 불행하다
수요일 속에 수요일이 쑤셔 박혀 있다
나는 매일 내 마음을 혼자 사용하는 걸 허락하고 있다
저녁을 생각하면 눈에 들어온 이물질처럼 저녁이 오고
그래서 나무와 풀, 모르는 꽃들의 이름을 외우고 잊지
풀빛의 왼쪽 젖가슴은 어떤 색 피가 흐르고 있을까
두 개의 긴 팔과
투명한 팔이 하나 더 달린 복싱선수처럼
비가 오는데
저녁이 한 가슴을 여러 사람이 더듬는 것처럼 야비해진다
어두워지기 때문이지
수요일이 될 때까지
일주일에 한번 수요일을 살자
이런 방법을 기뻐하지 않지만
아주 어두워지자
저녁과 저녁 사이의 모든
죄 없는 바퀴벌레와 쥐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미안해질 때까지
수요일의 스파링 상대처럼
수많은 얼굴을 너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鵲巢感想文
카페 확성기 1에서 시인 정원숙님의 시 ‘월요일’이라는 시를 읽고 감상에 붙인 적 있다. 이번 시는 시제가 ‘두 개의 수요일’이다. 여기서 수요일은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한다. 물론 표면적인 뜻인 수요일에 이 시를 썼을 것이며 수요일은 시를 제유하며 자아를 포함한다.
감상하자면,
시에 행복해지고 시에 불행하다. 시 속에 시(自我)가 쑤셔 박혀 있다.
나는 매일 내 마음을 혼자 사용하는 걸 허락하고 있다. 저녁을 생각하면 눈에 들어온 이물질처럼 저녁이 오고 그래서 나무와 풀, 모르는 꽃들의 이름을 외우고 잊지
풀빛의 왼쪽 젖가슴은 어떤 색 피가 흐르고 있을까
두 개의 긴 팔과 투명한 팔이 하나 더 달린 복싱선수처럼 비가 오는데
저녁이 한 가슴을 여러 사람이 더듬는 것처럼 야비해진다 어두워지기 때문이지
시가 될 때까지 일주일에 한 번 시(自我)를 위해 살자
이런 방법을 기뻐하지 않지만 아주 어두워지자
저녁과 저녁 사이의 모든 죄 없는 바퀴벌레와 쥐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미안해질 때까지
시의 스파링 상대처럼 수많은 얼굴을 너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행 가름하지는 않았다. 연 구분하여 행으로 정리했다. 시인 사용한 저녁은 현실의 고뇌를 타파하기 위한 유일한 시간이자 이물질처럼 껄끄러운 시간이다. 자아의 어두운 세계를 표명한다. 풀빛의 왼쪽 젖가슴은 자아를 제유한 시구이며 시의 세계다. 어떤 색 피가 흐르고 있을까 하며 자문하지만, 역시 검은 피가 흐르는 것은 사실이다. 두 개의 긴 팔과 투명한 팔 하나, 너와 나 서로가 이해하지 못한 팔은 두 개며 역시나 통하면 이것만큼 투명한 것도 없으니 팔은 하나다.
저녁과 저녁 사이의 모든 죄 없는 바퀴벌레와 쥐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미안해질 때까지, 시 몰입에 따른 자연의 부재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인의 시 스파링처럼 내면과의 역투를 우리는 볼 수 있다.
인일기백人一己百이라는 말이 있다. 남이 한 번에 성공하면 나는 백 번을 한다는 말이다. 인간은 모두 신 앞에 평등하다. 재능도 마찬가지다. 누가 좀 더 낫고 누가 좀 떨어지는 것은 모두 연습량이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방법은 단순하다. 무엇이든 쓰는 것이겠다. 무엇을 쓰려고 하면 무엇을 읽지 않으면 되지 않는 일, 하루에 활자로 된 그 무엇은 어떤 것이든 관계없이 읽어야 한다.
삶에 행복해지고 삶에 불행한 것은 삶 속에 삶이 쑤셔 박혀 있기 때문이다. 저녁을 생각하면 눈에 들어온 이물질처럼 저녁이 피곤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나무와 풀, 모르는 꽃들의 이름을 외우고 또 잊을 것이다. 두 개의 긴 팔, 나는 너(책)에게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멀고 책 또한 나를 잡아당기기에 너무 먼 위치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읽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이것만큼 투명한 팔도 없을 것이다.
저녁과 저녁 사이 모든 사람에게 미안해도 괜찮다. 나와 또 다른 나와의 스파링은 내면과의 역투다. 아와 비아의 투쟁 속에 아는 내 모르는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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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최호일 충남 서천 출생 2009년 <현대시학>등단
수요일엔 행복해지고
수요일엔 불행하다
수요일 속에 수요일이 쑤셔 박혀 있다
나는 매일 내 마음을 혼자 사용하는 걸 허락하고 있다
저녁을 생각하면 눈에 들어온 이물질처럼 저녁이 오고
그래서 나무와 풀, 모르는 꽃들의 이름을 외우고 잊지
풀빛의 왼쪽 젖가슴은 어떤 색 피가 흐르고 있을까
두 개의 긴 팔과
투명한 팔이 하나 더 달린 복싱선수처럼
비가 오는데
저녁이 한 가슴을 여러 사람이 더듬는 것처럼 야비해진다
어두워지기 때문이지
수요일이 될 때까지
일주일에 한번 수요일을 살자
이런 방법을 기뻐하지 않지만
아주 어두워지자
저녁과 저녁 사이의 모든
죄 없는 바퀴벌레와 쥐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미안해질 때까지
수요일의 스파링 상대처럼
수많은 얼굴을 너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鵲巢感想文
카페 확성기 1에서 시인 정원숙님의 시 ‘월요일’이라는 시를 읽고 감상에 붙인 적 있다. 이번 시는 시제가 ‘두 개의 수요일’이다. 여기서 수요일은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한다. 물론 표면적인 뜻인 수요일에 이 시를 썼을 것이며 수요일은 시를 제유하며 자아를 포함한다.
감상하자면,
시에 행복해지고 시에 불행하다. 시 속에 시(自我)가 쑤셔 박혀 있다.
나는 매일 내 마음을 혼자 사용하는 걸 허락하고 있다. 저녁을 생각하면 눈에 들어온 이물질처럼 저녁이 오고 그래서 나무와 풀, 모르는 꽃들의 이름을 외우고 잊지
풀빛의 왼쪽 젖가슴은 어떤 색 피가 흐르고 있을까
두 개의 긴 팔과 투명한 팔이 하나 더 달린 복싱선수처럼 비가 오는데
저녁이 한 가슴을 여러 사람이 더듬는 것처럼 야비해진다 어두워지기 때문이지
시가 될 때까지 일주일에 한 번 시(自我)를 위해 살자
이런 방법을 기뻐하지 않지만 아주 어두워지자
저녁과 저녁 사이의 모든 죄 없는 바퀴벌레와 쥐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미안해질 때까지
시의 스파링 상대처럼 수많은 얼굴을 너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행 가름하지는 않았다. 연 구분하여 행으로 정리했다. 시인 사용한 저녁은 현실의 고뇌를 타파하기 위한 유일한 시간이자 이물질처럼 껄끄러운 시간이다. 자아의 어두운 세계를 표명한다. 풀빛의 왼쪽 젖가슴은 자아를 제유한 시구이며 시의 세계다. 어떤 색 피가 흐르고 있을까 하며 자문하지만, 역시 검은 피가 흐르는 것은 사실이다. 두 개의 긴 팔과 투명한 팔 하나, 너와 나 서로가 이해하지 못한 팔은 두 개며 역시나 통하면 이것만큼 투명한 것도 없으니 팔은 하나다.
저녁과 저녁 사이의 모든 죄 없는 바퀴벌레와 쥐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미안해질 때까지, 시 몰입에 따른 자연의 부재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인의 시 스파링처럼 내면과의 역투를 우리는 볼 수 있다.
인일기백人一己百이라는 말이 있다. 남이 한 번에 성공하면 나는 백 번을 한다는 말이다. 인간은 모두 신 앞에 평등하다. 재능도 마찬가지다. 누가 좀 더 낫고 누가 좀 떨어지는 것은 모두 연습량이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방법은 단순하다. 무엇이든 쓰는 것이겠다. 무엇을 쓰려고 하면 무엇을 읽지 않으면 되지 않는 일, 하루에 활자로 된 그 무엇은 어떤 것이든 관계없이 읽어야 한다.
삶에 행복해지고 삶에 불행한 것은 삶 속에 삶이 쑤셔 박혀 있기 때문이다. 저녁을 생각하면 눈에 들어온 이물질처럼 저녁이 피곤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나무와 풀, 모르는 꽃들의 이름을 외우고 또 잊을 것이다. 두 개의 긴 팔, 나는 너(책)에게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멀고 책 또한 나를 잡아당기기에 너무 먼 위치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읽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이것만큼 투명한 팔도 없을 것이다.
저녁과 저녁 사이 모든 사람에게 미안해도 괜찮다. 나와 또 다른 나와의 스파링은 내면과의 역투다. 아와 비아의 투쟁 속에 아는 내 모르는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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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최호일 충남 서천 출생 2009년 <현대시학>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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