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동물원 / 김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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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92회 작성일 17-05-05 16:50본문
한여름 동물원 / 김개미
안녕, 기억에 사로잡힌 앵무새야
안녕, 검은 바위에 꽃핀 이구아나야
안녕, 편도선이 부은 플라밍고야
안녕, 환청에 들뜬 원숭이야
안녕, 돌을 집어먹은 코끼리야
안녕, 눈동자에 시계를 가둔 고양이야
안녕, 버저를 눌러대는 풀매미야
안녕, 안녕, 안녕, 오늘의 태양을 기억해두렴
죽기도 살기도 좋은 날씨란다
鵲巢感想文
이 시를 쓴 시점은 한여름이다. 동물원은 실지 동물원에 간 것이 아니라 시인의 시에 대한 세계관이다. 시를 대하는 것은 나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는 길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시인의 시집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의 첫 시 즉 서시다.
안녕, 기억에 사로잡힌 앵무새라는 말은 실천은 없고 말 뿐이라는 것을 비유한다. 어쩌면 시는 앵무새다. 다음은 검은 바위에 꽃핀 이구아나라고 했다. 검은 바위는 시를 제유한 시구다. 검은 바위에 꽃이 핀 이구아나라 했으니 이구아나는 자아를 뜻한다. 이구아나는 파충류 강에 뱀 목에 속한다. 변화무쌍한 마음을 묘사한다. 다음은 편도선이 부은 플라밍고다. 플라밍고는 목과 다리가 길다. 시 표현력에 대한 갈구하는 마음을 묘사한다. 환청에 들뜬 원숭이다. 어떤 기술이 능해도 실수할 수 있는 대상에 우리는 원숭이에다가 비유한다. 실지로 나지도 않는 소리 즉 환청에 들뜬 원숭이니 시는 사실무근인 것 같아도 또 아닌 것이 시며 또 그런 것이 마음이다. 시는 돌을 집어먹은 코끼리다. 코끼리는 보잘것없는 작은 것을 비유할 때 쓴다. 돌은 시를 제유한다. 문장에 코끼리가 들어가 있으니 돌은 하찮은 어떤 존재가 된다. 시는 눈동자에 시계를 가둔 고양이다. 고양이는 애완동물이다. 눈동자에 시계를 가둔 것과 고양이 눈과 어떤 중첩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마냥 시에 집착하는 시인을 볼 수 있다. 시는 버저를 눌러대는 풀매미다. 버저는 어떤 신호음이나 잡음 정도로 보면 좋겠다. 풀매미는 매밋과의 곤충으로 약 2cm 정도 되는 아주 작은 매미다.
안녕, 안녕, 안녕, 오늘의 태양을 기억해두렴, 명색이 시인이라면 하루를 잘 보아야겠다. 시는 그 하루에 있었던 일로 어떤 성찰을 기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시인이겠다. 시는 곧 태양이다. 시인에게는 말이다.
맨드라미 꽃잎에 목련에 아니면 백사장에 흰 당나귀도 좋고 젖을 물리듯 가슴에 묻고 사라져 갈 것 같은 마음을 그리는 것은 시다. 그러므로 죽기도 살기도 딱 좋은 날씨다. 오늘은,
좌전左傳에 ‘사이불후死而不朽’라는 말이 있다. 죽어서도 영원히 썩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는 어쩌면 사이불후다. 하지만, 사이불후에 버금가는 가치는 있어야겠다. 뒷사람이 따를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작품(遂作後人程)을 쓴다는 것은 문자옥을 자처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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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 문학동네시인선 091, 김개미
김개미 2005년 ‘시와 반시’에 시를, 2010년 ‘창비어린이’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안녕, 기억에 사로잡힌 앵무새야
안녕, 검은 바위에 꽃핀 이구아나야
안녕, 편도선이 부은 플라밍고야
안녕, 환청에 들뜬 원숭이야
안녕, 돌을 집어먹은 코끼리야
안녕, 눈동자에 시계를 가둔 고양이야
안녕, 버저를 눌러대는 풀매미야
안녕, 안녕, 안녕, 오늘의 태양을 기억해두렴
죽기도 살기도 좋은 날씨란다
鵲巢感想文
이 시를 쓴 시점은 한여름이다. 동물원은 실지 동물원에 간 것이 아니라 시인의 시에 대한 세계관이다. 시를 대하는 것은 나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는 길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시인의 시집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의 첫 시 즉 서시다.
안녕, 기억에 사로잡힌 앵무새라는 말은 실천은 없고 말 뿐이라는 것을 비유한다. 어쩌면 시는 앵무새다. 다음은 검은 바위에 꽃핀 이구아나라고 했다. 검은 바위는 시를 제유한 시구다. 검은 바위에 꽃이 핀 이구아나라 했으니 이구아나는 자아를 뜻한다. 이구아나는 파충류 강에 뱀 목에 속한다. 변화무쌍한 마음을 묘사한다. 다음은 편도선이 부은 플라밍고다. 플라밍고는 목과 다리가 길다. 시 표현력에 대한 갈구하는 마음을 묘사한다. 환청에 들뜬 원숭이다. 어떤 기술이 능해도 실수할 수 있는 대상에 우리는 원숭이에다가 비유한다. 실지로 나지도 않는 소리 즉 환청에 들뜬 원숭이니 시는 사실무근인 것 같아도 또 아닌 것이 시며 또 그런 것이 마음이다. 시는 돌을 집어먹은 코끼리다. 코끼리는 보잘것없는 작은 것을 비유할 때 쓴다. 돌은 시를 제유한다. 문장에 코끼리가 들어가 있으니 돌은 하찮은 어떤 존재가 된다. 시는 눈동자에 시계를 가둔 고양이다. 고양이는 애완동물이다. 눈동자에 시계를 가둔 것과 고양이 눈과 어떤 중첩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마냥 시에 집착하는 시인을 볼 수 있다. 시는 버저를 눌러대는 풀매미다. 버저는 어떤 신호음이나 잡음 정도로 보면 좋겠다. 풀매미는 매밋과의 곤충으로 약 2cm 정도 되는 아주 작은 매미다.
안녕, 안녕, 안녕, 오늘의 태양을 기억해두렴, 명색이 시인이라면 하루를 잘 보아야겠다. 시는 그 하루에 있었던 일로 어떤 성찰을 기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시인이겠다. 시는 곧 태양이다. 시인에게는 말이다.
맨드라미 꽃잎에 목련에 아니면 백사장에 흰 당나귀도 좋고 젖을 물리듯 가슴에 묻고 사라져 갈 것 같은 마음을 그리는 것은 시다. 그러므로 죽기도 살기도 딱 좋은 날씨다. 오늘은,
좌전左傳에 ‘사이불후死而不朽’라는 말이 있다. 죽어서도 영원히 썩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는 어쩌면 사이불후다. 하지만, 사이불후에 버금가는 가치는 있어야겠다. 뒷사람이 따를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작품(遂作後人程)을 쓴다는 것은 문자옥을 자처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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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 문학동네시인선 091, 김개미
김개미 2005년 ‘시와 반시’에 시를, 2010년 ‘창비어린이’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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