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선여정(不宣餘情) / 정끝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078회 작성일 17-05-07 00:22본문
불선여정(不宣餘情) / 정끝별
쓸 말은 많으나 다 쓰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편지 말미에 덧붙이는 다 오르지 못한 계단이라 하였습니다
꿈에 돋는 소름 같고 입에 돋는 혓바늘 같고 물낯에 돋는 눈빛같이 미쳐 다스리지 못한 파문이라 하였습니다
나비의 두 날개를 하나로 접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마음이 마음을 안아 겹이라든가 그늘을 새기고 아침마다 다른 빛깔을 펼쳐내던 두 날개, 다 펄럭였다면 눈멀고 숨 멎어 돌이 되었을 거라 하였습니다
샛길 들목에서 점방(店房)처럼 저무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봉인된 후에도 노을을 노을이게 하고 어둠을 어둠이게 하는 하염총총, 수북한 바람을 때 늦은 바람에게 하는 지평선의 목메임이라 하였습니다
때가 깊고 숨이 깊고 정이 깊습니다 밤새 낙엽이 받아낸 아침 서리가 소금처럼 피었습니다 갈바람도 주저앉아
불선여정 불선여정 하였습니다
鵲巢感想文
우선 시제부터 보아야겠다. 시제가 불선여정(不宣餘情)이다. 아니 불(不), 베풀 선(宣), 남을 여(餘), 뜻 정(情)으로 이룬 한자어다. 굳이 해석하자면 남은 정을 베풀지 못한 어떤 심정이다. 시제가 하나의 시다. 시를 굳이 묘사하자면 여백까지 적을 순 없으나 그 여백은 읽을 수 있고 뜻을 드러낸 부분은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자는 표현하는 이의 마음을 온전히 전달할 수는 없어 시제가 불선여정이 된다. 시제를 이해하고 나면 굳이 밑에 시를 읽지 않아도 대충 어떤 뜻인지 이해가 간다.
시를 전체적으로 읽으면 마치 조선시대 사대부집 여인으로 예의 법도에 한 치 어긋남이 없어 보인다. 아녀자로서 남편께 고하는 말 같다. 詩는 詩에 대한 묘사로 이룬다.
시는 쓸 말은 많으나 다 쓰지 못하고 편지 말미에 덧붙이는 다 오르지 못한 계단이다. 꿈에 돋는 소름 같고 입에 돋는 혓바늘 같은 것이 시다. 물낯에 돋는 눈빛같이 미처 다스리지 못한 파문처럼 닿는 것이 詩다.
詩 3연을 보면 나비의 두 날개라 했다. 책의 양면을 두 날개로 묘사한 것이다. 펼치면 뜻이 날아가는 것이고 빛을 보는 것이다. 두 날개를 하나로 접는 것은 마음을 이해한 것이 되며 이는 겹이 된다. 겹은 두 마음이 하나로 합친 것이다. 마음이 맞으면 결국 돌로 승화할 수 있다. 즉 시를 이해하였으니 시가 나오는 결과를 부른다.
샛길 들목이라 했다. 들목은 들어가는 길목이다. 점방처럼 저무는 일이란 급한 것은 어느 정도 구할 수 있는 그런 가게쯤으로 시를 묘사한 것이다. 그러니까 시집은 어느 정도는 경전처럼 시인에게는 가방 같은 것이다. 봉인이란 밀봉한 자리에 도장을 찍은 것을 말하니, 시를 다 쓰고도 혹은 읽어도 그 뒤에 남는 노을이 있고 어둠이 있으면 지평선 목 메임이라 해도 좋겠다.
여기서 지평선이라는 시어를 잠시 보자. 편지지를 지평선이라 해도 좋고 실지 지평선을 바라보는 시인을 생각해도 좋다. 하늘과 땅이 닿지는 않으나 닿은 것 같은 하지만 경계를 이루는 것이 지평선이다. 가까운 것 같아도 가깝지가 않고, 먼 것 같아도 절대 멀지 않은 남녀의 묘한 정을 이룬다. 부부가 이와 같다면 평생 해로 하지 않을까!
낙엽이 받아낸 아침 서리가 소금처럼 피었다는 시구를 보자. 시를 쓰는데 이것만큼 경제적인 시구도 없지 싶다. 편지 한 장 쓰는 일도 낙엽 같고 낙엽처럼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아니지만, 소금처럼 애써 표현하는 것이므로 피었다는 말을 하는 게다. 소금처럼 애 써는 일도 그렇지만, 소금의 색상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하얗게 뜻을 피운 일이야말로 시다.
이렇게 표현한 詩 한 편은 불선여정, 한 번 더 강조하여 불선여정이라 했다. 시는 남은 뜻을 끝내 다 베풀 수 없는 일이다.
불기자심(不欺者心)이라는 말이 있다. 성철(性徹, 1912∼1993) 대종사께서 해인사 백련암에서 삼천 배를 수행한 불자들에게 좌우명으로 직접 써준 글이다. 이 뜻은 자기가 부처인 줄 모르고 자기를 속이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는 성철 스님께서 불자에게 하신 말씀이시지만, 모든 중생에게도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시는 마음이다. 굳이 마음을 여러 비유를 들어 설명함에 속일 이유는 없으리라 본다. 마음을 온전히 적었다고 하지만 그 표현은 불선여정이라 그 여백까지 읽을 수 있다면 진정 시인이라 해도 되겠다.
===================================
정끝별 1988년 ‘문학사상’에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해오고 있다.
시집 ‘은는이가’ 13p
쓸 말은 많으나 다 쓰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편지 말미에 덧붙이는 다 오르지 못한 계단이라 하였습니다
꿈에 돋는 소름 같고 입에 돋는 혓바늘 같고 물낯에 돋는 눈빛같이 미쳐 다스리지 못한 파문이라 하였습니다
나비의 두 날개를 하나로 접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마음이 마음을 안아 겹이라든가 그늘을 새기고 아침마다 다른 빛깔을 펼쳐내던 두 날개, 다 펄럭였다면 눈멀고 숨 멎어 돌이 되었을 거라 하였습니다
샛길 들목에서 점방(店房)처럼 저무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봉인된 후에도 노을을 노을이게 하고 어둠을 어둠이게 하는 하염총총, 수북한 바람을 때 늦은 바람에게 하는 지평선의 목메임이라 하였습니다
때가 깊고 숨이 깊고 정이 깊습니다 밤새 낙엽이 받아낸 아침 서리가 소금처럼 피었습니다 갈바람도 주저앉아
불선여정 불선여정 하였습니다
鵲巢感想文
우선 시제부터 보아야겠다. 시제가 불선여정(不宣餘情)이다. 아니 불(不), 베풀 선(宣), 남을 여(餘), 뜻 정(情)으로 이룬 한자어다. 굳이 해석하자면 남은 정을 베풀지 못한 어떤 심정이다. 시제가 하나의 시다. 시를 굳이 묘사하자면 여백까지 적을 순 없으나 그 여백은 읽을 수 있고 뜻을 드러낸 부분은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자는 표현하는 이의 마음을 온전히 전달할 수는 없어 시제가 불선여정이 된다. 시제를 이해하고 나면 굳이 밑에 시를 읽지 않아도 대충 어떤 뜻인지 이해가 간다.
시를 전체적으로 읽으면 마치 조선시대 사대부집 여인으로 예의 법도에 한 치 어긋남이 없어 보인다. 아녀자로서 남편께 고하는 말 같다. 詩는 詩에 대한 묘사로 이룬다.
시는 쓸 말은 많으나 다 쓰지 못하고 편지 말미에 덧붙이는 다 오르지 못한 계단이다. 꿈에 돋는 소름 같고 입에 돋는 혓바늘 같은 것이 시다. 물낯에 돋는 눈빛같이 미처 다스리지 못한 파문처럼 닿는 것이 詩다.
詩 3연을 보면 나비의 두 날개라 했다. 책의 양면을 두 날개로 묘사한 것이다. 펼치면 뜻이 날아가는 것이고 빛을 보는 것이다. 두 날개를 하나로 접는 것은 마음을 이해한 것이 되며 이는 겹이 된다. 겹은 두 마음이 하나로 합친 것이다. 마음이 맞으면 결국 돌로 승화할 수 있다. 즉 시를 이해하였으니 시가 나오는 결과를 부른다.
샛길 들목이라 했다. 들목은 들어가는 길목이다. 점방처럼 저무는 일이란 급한 것은 어느 정도 구할 수 있는 그런 가게쯤으로 시를 묘사한 것이다. 그러니까 시집은 어느 정도는 경전처럼 시인에게는 가방 같은 것이다. 봉인이란 밀봉한 자리에 도장을 찍은 것을 말하니, 시를 다 쓰고도 혹은 읽어도 그 뒤에 남는 노을이 있고 어둠이 있으면 지평선 목 메임이라 해도 좋겠다.
여기서 지평선이라는 시어를 잠시 보자. 편지지를 지평선이라 해도 좋고 실지 지평선을 바라보는 시인을 생각해도 좋다. 하늘과 땅이 닿지는 않으나 닿은 것 같은 하지만 경계를 이루는 것이 지평선이다. 가까운 것 같아도 가깝지가 않고, 먼 것 같아도 절대 멀지 않은 남녀의 묘한 정을 이룬다. 부부가 이와 같다면 평생 해로 하지 않을까!
낙엽이 받아낸 아침 서리가 소금처럼 피었다는 시구를 보자. 시를 쓰는데 이것만큼 경제적인 시구도 없지 싶다. 편지 한 장 쓰는 일도 낙엽 같고 낙엽처럼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아니지만, 소금처럼 애써 표현하는 것이므로 피었다는 말을 하는 게다. 소금처럼 애 써는 일도 그렇지만, 소금의 색상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하얗게 뜻을 피운 일이야말로 시다.
이렇게 표현한 詩 한 편은 불선여정, 한 번 더 강조하여 불선여정이라 했다. 시는 남은 뜻을 끝내 다 베풀 수 없는 일이다.
불기자심(不欺者心)이라는 말이 있다. 성철(性徹, 1912∼1993) 대종사께서 해인사 백련암에서 삼천 배를 수행한 불자들에게 좌우명으로 직접 써준 글이다. 이 뜻은 자기가 부처인 줄 모르고 자기를 속이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는 성철 스님께서 불자에게 하신 말씀이시지만, 모든 중생에게도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시는 마음이다. 굳이 마음을 여러 비유를 들어 설명함에 속일 이유는 없으리라 본다. 마음을 온전히 적었다고 하지만 그 표현은 불선여정이라 그 여백까지 읽을 수 있다면 진정 시인이라 해도 되겠다.
===================================
정끝별 1988년 ‘문학사상’에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해오고 있다.
시집 ‘은는이가’ 13p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