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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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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3 / 허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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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68회 작성일 17-05-07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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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깐 설웁다 / 허은실


    밥그릇에 캔 한 통을 따 담아주었다. 흰 고양이는 게 눈 감추듯 밥그릇 채 훌닦아 먹고는 무르팍에 쪼그리고 앉아 눈알 부라리며 귀는 쫑긋하게 열어놓고 울부짖고 있었다. 뭐 좀 더 없느냐는 듯, 눈은 아주 살기가 뚜렷했다. 저 눈동자만 보아도 꽤 웃음이 일었지만,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소화는 돼야 하지 않은가! 좀 더 울도록 내버려 두었다. 근데 자리를 떠나지 않고 쪼그린 자세로 눈 치켜뜨고 계속 보고 있지 않은가! 어쩌나 캔 떨어진지 오래라, 퇴계 몇 장 모시고 나간다.
    펫 카페가 집 앞이다. 여간해서 이 집에 들르지는 않는다. 연휴가 길어 주문한 상품이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참치 흰 살과 치킨 살 조각을 담은 팩 두 개 샀다. 오늘과 내일까지 먹겠나 싶어도 그사이 주문한 상품이 내려왔으면 싶다.
    나에게 배달되어야 할 상품은 참치 흰 살과 치킨 살 조각만은 아니다. 며칠 전에 주문한 책도 있지만, 아직 받지는 못했다. 휴일이 참 오래간다. 어제 받은 시집을 펼친다. ‘나는 잠깐 설웁다’ 우선 시집을 읽기 전, 시원한 밀키스 캔 하나를 땄다. 목이 말랐다. 




    소수 3 / 허은실

    남자가 김치를 찢는다 가운데에다 젓가락을 폭 찔러넣는다 여자가 콩자반을 하나 집어먹는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남자가 젓가락을 최대한 벌린다 다 찢어지지 않는다 여자가 콩자반을 두 개 집어먹는다 왼팔을 식탁 위에 얹고 고개를 꼬고 있다
    남자가 줄기 쪽에 다시 젓가락을 찔러넣는다 젓가락을 콤파스처럼 벌린다 김치 양념이 여자의 밥그릇에 튄다 여자가 쳐다보지 않는다 콩자반을 세 개 집어먹는다 남자가 김치를 들어올린다 떨어지지 않은 쪽이 딸려 올라온다 여자가 콩자반을 네 개 집어먹지 않는다 딸려 올라가는 김치를 잡는다 남자와 여자가 밥 먹는 것을 중단하고 말없이 김치를 찢는다
    김치를 전부 찢어놓은 남자와 여자가 밥을 먹는다 말없이 계속 먹는다 여자는 찢어놓은 김치를 먹지 않는다 깻잎 장아찌를 집는다 두 장이 한꺼번에 집힌다 남자가 한 장을 뗀다 깻잎 자루에서 남자의 젓가락 끝과 여자의 젓가락 끝이 부딪친다 찢어주느라 찢어지지 못한 늦은 아침
    늙은 냉장고가 으음 하고 돌아간다



鵲巢感想文
    시제 소수素數는 1과 그 수 자신 이외의 자연수로는 나눌 수 없는 자연수로 2, 3, 5, 7, 11 따위다. 시에서는 함께 나눌 수 없는 어떤 심정으로 읽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시 ‘소수 3’은 부부가 아침을 먹는 모습을 그렸다. 하지만, 뭔가 좀 불편하게만 보인다. 남자는 김치를 찢고 있고 찢은 김치를 여자 그러니까 아내겠다. 아내에게 먹이려고 하지만, 아내는 내심 받아먹는 풍경은 아니다. 꺼림칙하다. 하지만, 이 껄끄러운 상황을 얼른 지우고 싶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남자는 찢어주고 있지만, 여자는 찢어지지 못한 상황이다. 낡은 냉장고만 계속 돈다.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는 관능적 비유를 많이 쓴 시집이다. 시제 ‘뱀의 눈’을 잠깐 보자.




    뱀의 눈 / 허은실

    장화에 담긴 발이 질벅질벅 마당을 지난다. 양파망이 꿈틀거린다. 마당귀 붉은 고무통 속에는 밀뱀, 늘메기, 칠점사, 능구렁이, 살모사, 낯익은 놈도 한 마리. 뱀은 자꾸 잡아다 뭐하시게요? 너 뱀탕 끓여주려고 그런다. 벌어진 앞니와 빠진 송곳니 자리 휑한 웃음. 와륵와륵 낯을 씻고 검불 머리 손빗으로 훑고 아버지 또 철벅이며 어디 가나.

    집을 보러 온 여자가 비명을 지른다. 남자가 작대기를 든다. 그냥 두세요. 낯익은 뱀의 눈이 나를 바라보더니 돌 틈 사이로 천천히 사라져갔다. 주인 없는 무허가 주택 마당에 금낭화가 혼자서 흔들리고



鵲巢感想文
    시 첫 문장을 보면 장화에 담긴 발이 질벅질벅 마당을 지난다고 했다. 시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어떤 주택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성적인 묘사 같다. 하지만, 이는 시 쓰는 행위를 묘사한다. 뒤에 나오는 각종 뱀을 생각하면 남성적 상징을 그리는 것 같고 주인 없는 무허가 주택 마당과 이에 속한 금낭화는 이 시의 극치를 보였다. 시어 금낭화도 유심히 볼 일이다. 마치 분홍빛 하트 같고 톡 튀어나온 꽃 수술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절정을 표현한다. 뭐 그렇다고 이 시가 관능적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다. 꽃(금낭화)은 거저 흔들렸으니까.

    이외 그녀의 시 ‘커다란 입술’에서는 ‘터지기 직전의 씨방이 음순처럼 부푼다’는 문장과 ‘아물지 않은 여린 잠지들을 / 보드랍게 핥아주는 입술’이라는 표현은 아주 원색적이다. 시의 원색적 표현에 시인 김언희 선생을 빠뜨릴 순 없겠다. 선생의 시 ‘검은 택시’는 그나마 원색적이지는 않지만, 시가 무엇인가 하는 의미를 확실히 묘사하기에 몇 줄 필사해본다. ‘어느 날 문득 어금니가 빠지고 어느 날 문득 한입 문 면발이 끊어지지 않는다 중략 어느 날 문득 방바닥이 온통 껌으로 도배되고 어느 날 문득 발신 번호 없는 메시지를 받는다 개잡년 각오해라 어느 날 문득 자물쇠는 부러진 열쇠를 삼킨 채 영영 입을 다물고 이하 생략’ 그러니까 시의 묘사다.
    뭐 시집 한 권을 읽고 잊히지 않는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면, 또 이러한 효과를 충분히 발휘해 볼 수 있으나 너무 표 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흰 고양이는 주어진 밥그릇에 덤으로 담아준 밥을 남겼다. 이제는 포만이 온 건가! 내 눈을 한 번 마주치고는 가볍게 자리를 이동한다. 고양이 밥을 주듯이 마음의 흰 밥그릇도 채웠다가 비웠다. 시집 한 권을 읽은 하루다.
    마지막으로 시는 냄비 뚜껑 여는 냄비 받침대다. 개인적이고 독백 같은 시는 물린 시대가 되었다. 사회를 받아들이는 처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그 느낌을 표현하되 추구하는 대상은 시라는 것에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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