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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파 4 / 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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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33회 작성일 17-05-09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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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파 4 / 강정




    오래 불 켜 둔 어느 가을밤,
    문 밖의 그림자가 돌연 방문해 날 겁간한 적 있다
    여자였으나, 내가 여자라 여긴 모든 형상과도 다른 여자였다
    명백한 타인이었으나 만질수록 커져 가는 그 몸이
    사후의 나란 걸 알고 희열에 차 울었었다
    하룻밤의 망념이 천지를 끌어안은 날이었다
    항문이며 입이며,
    제 몸속 온갖 구멍들 속에 큰 덩치를 욱여넣으려 애쓰던 그녀,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 버린 내 얼굴이 허공에 어른거려
    어느 먼 데의 굴뚝을 한참 바라봤었다
    누가 쓰다 버린 연필 촉 같았다
    말로는 다 설명 못할 그림을 허공 창천에 연기 피워 그려 대고 있었다



鵲巢感想文
    봄비가 내린다. 그간 쌓인 황사와 송홧가루가 어느 정도는 씻겨 내려갔으면 싶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거리를 걷는 사람은 모두 우산을 쓰며 무언가 말을 하면서 지나간다. 곁에서 듣는 처지가 아니니 무언가 독백처럼 보이기도 한다. 몇몇이 지나가면 거리는 또 한산해서 자동차만 입 꾹 다물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곧장 맞고 있는 풍경이다. 비가 내리니 하늘도 꽤 흐려 낮이라도 온통 초저녁 같은 분위기다.
    시인 강정 시집 ‘백치의 산수’를 읽었다. 강정의 시는 시집 낼 때마다 찾아 읽었지만, 솔직히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거저 시인의 시를 읽으며 시에서 사용한 시어를 중심으로 생각해보다가 문장의 어떤 반향을 느껴보는 것뿐이다.
    위 시는 시집 ‘백치의 산수’ 중 가을 산파라는 연작시 중 한 편이다. 이 시를 읽고 필자가 느낀 것은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작품화하려는 어떤 고통 같은 것을 심은 것으로 보인다.
    때는 어느 가을밤이다. 여기서 문은 하나의 심적 경계다. 작품은 시인의 명예이기도 해서 나만의 색깔이 배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글은 시인이 읽어도 딴 사람 같아서 부끄러움이 앞서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아를 중심으로 하나의 변종이다. 그 변종에 대한 망념으로 고통받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시인은 ‘제 몸속 온갖 구멍들 속에 큰 덩치를 욱여넣으려 애쓰던 그녀’, 라 했다. 여기서 그녀는 문밖의 그림자며 내가 낳은 여자다. 이 여자는 내가 생각한 그런 여자가 아니다. 겁간했다는 말은 그 여자가 나를 겁간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시인의 사생아다.
    시인은 한 줄 희망을 굴뚝에다가 비유했다. 굴뚝은 장작이나 어떤 땔감에다가 불을 지펴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하는 인공물이다. 그러니까 노력의 결과로 피어나는 사색의 진로다. 허공은 하나의 노트라면 연기는 실지 습작에 비유할 만하겠다. 이러한 습작을 거쳐 수정을 지나 퇴고까지 완벽하다면 산고의 고통은 마무리한 셈이다.
    시제가 ‘가을 산파’다. 산파라는 뜻은 아이를 낳을 때 아이를 받고 산모를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산파라는 뜻에서 다른 어떤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을 덧붙여 놓는다. 거저 시는 읽는 이와 시인과 독자와의 배려다. 장을 더 펼치는 것은 예의가 아닌 줄 안다.

    18세기 때다. 조선에 태어나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한 화가의 초상이 있다. 탕건을 쓰고 가슴까지 내려온 덥수룩한 수염에 꼭 다문 입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왼쪽 눈과 눈꺼풀이 내려앉은 오른쪽 애꾸눈이 보인다. 그는 ‘최북’이다. ‘최북’을 그린 화가는 이한철이라고 한다.
    한쪽 눈을 잃게 된 사연은 중인 출신 화가 조희룡의 글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느 날 지체 높은 사람이 최북에게 그림을 구하였으나 마음처럼 안되자 협박을 하니, ‘남이 나를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눈이 나를 저버리는구나!’라며 자신의 한쪽 눈을 찔러 멀게 했다는 것이다.
    최북이 자신의 눈을 찌르면서까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지키고 싶었던 마지막 자존심, 곧 ‘참된 나’였다.
    한 작품을 쓰더라도 참된 나와 그것을 거울에 보인 반향이라면 참된 글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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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2년 ‘현대시세계’로 등단
    편견에 맞선 조선의 예인 최북, 2017년 04월 20일, 세계일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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