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 송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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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009회 작성일 17-05-10 19:44본문
공중 / 송재학
허공이라 생각했다 색이 없다고 믿었다 빈 곳에서 온 곤줄박이 한 마리 창가에 와서 앉았다 할딱거리고 있다 비 젖어 바들바들 떨고 있다 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허공이란 가끔 연약하구나 회색 깃털과 더불어 목덜미와 배는 갈색이다 검은 부리와 흰 뺨의 영혼이다 공중에서 묻혀 온, 공중이 묻혀준 색깔이라 생각했다 깃털의 문양이 보호색이니까 그건 허공의 입김이라 생각했다 박샛과 곤줄박이는 갈필을 따라 날아다니다가 내 창가에서 허공의 날숨을 내고 있다 허공의 색을 찾아보려면 새의 숫자를 셈하면 되겠다 허공은 아마도 추상파의 쥐수염 붓을 가졌을 것이다 일몰 무렵 평사낙안의 발묵이 번진다 짐작하자면 공중의 소리 일가(一家)들은 모든 새의 울음에 나누어 서식하고 있을 것이다 공중이 텅 비어 보이는 것도 색 일가들이 모든 새의 깃털로 바빴기 때문이다 희고 바래긴 했지만 낮달도 선염법(渲染法)을 가다리고 있지 않은가 공중이 비워지면서 허공을 실천 중이라면, 허공에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다 바람결 따라 허공 한 줌 움켜쥐자 내 손바닥을 칠갑하는 색깔들, 오늘 공중의 안감을 보고 만졌다 공중의 문명이란 곤줄박이의 개체 수이다 새점(占)을 배워야겠다
鵲巢感想文
시인 송재학 시집 ‘검은색’을 읽었다. 이 중에 한 편의 시다. 시제가 ‘공중’이다. 시 내용에서 허공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시제와 엄연히 같은 말인 것 같아도 여기서는 다르게 사용된다. 무엇을 치환한 느낌마저 들기 때문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공중이 시의 객체라면 허공은 시의 주체가 된다. 허공을 깨우치기 위해 공중의 안감을 보는 시인이다.
시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공중의 문명이란 곤줄박이의 개체 수라고 시인은 얘기한다. 여기서 문명은 문명이 아니라 시에서 풍기는 어떤 감흥의 정도다. 곤줄박이는 공중의 한 부분이며 이의 개체 수가 문명을 좌우한다. 곤줄박이라는 새를 비유로 든 것도 재밌다. 이 새는 박샛과로 머리와 목은 검은색, 등ㆍ가슴ㆍ배는 밤색, 날개와 꽁지는 잿빛 청색이며 뒷머리에 ‘V’ 자 모양의 검은 무늬가 있다. 텃새로 야산이나 평지에 사는데 한국, 일본, 사할린 등지에 분포한다.
시 도입부에 보면 빈 곳에서 온 곤줄박이 한 마리 창가에 와서 앉았다는 말이 나온다. 창가는 마음의 창으로 현실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를 향한 문이다. 말하자면, 곤줄박이는 시적 계기를 위한 장치다. 비 젖어 바들바들 떨고 있다거나 내 손바닥에 올렸다니, 하는 것은 시의 묘사다. 뒤 문장은 이를 더 자세히 묘사한다. 즉, 허공이란 가끔 연약하다는 둥, 회색 깃털과 더불어 목덜미와 배는 갈색이라는 둥, 그러다가 검은 부리와 흰 뺨의 영혼이라며 아예 못을 박는다.
하지만, 시인은 마! 이러한 것을 봤을 때 허공은 공중에서 묻혀 온, 공중이 묻혀준 색깔인 거로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시 문장은 여러 가지 보호색으로 덮여 있으니까 말이다. 이를 깃털의 문양이 보호색이라는 비유를 든다. 그러므로 이것은 허공의 입김이 아니다. 허공의 감흥을 돋우는 데는 일리가 있어도 말이다.
내 창가에서 허공의 날숨을 내고 있다는 것은 공중에 날아와 앉은 새, 곤줄박이를 보았으므로 숨을 내쉬는 것이 된다. 즉, 시를 적을 수 있겠다는 표현이다. 다음은 허공의 색을 찾아보려면 새의 숫자를 셈하면 된다는 말이 나온다. 허공은 시의 아버지 시인으로 그 특색을 짚어보고자 하면 그가 남긴 시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새는 시를 제유한다.
허공은 아마도 추상파의 쥐수염 붓을 가졌을 것이라는 말도 재밌는 표현이다. 쥐수염 붓에 관한 설명은 예전 시인 안도현 선생의 시 ‘국화꽃 그늘과 쥐수염 붓’을 감상에 쓴 적 있다. 쥐수염 붓은 왕희지와 추사가 아꼈던 붓으로 명필가는 아주 귀하게 여기던 붓이다. 여기서는 문학이나 문필을 제유한 것으로 보인다. 추상파니 시는 이에 비유할 만하다.
평사낙안(平沙落雁)은 모래펄에 날아와 앉은 기러기로 글씨나 문장이 매끈하게 잘된 것을 비유한다. 공중의 소리 일가들은 모든 새의 울음에 나누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은 시집과 시집에 든 시를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시를 쓴다는 것은 시에 취미를 두고 시를 쓴다는 것은 우선 공중의 소리 일가를 이룬 새의 울음소리를 먼저 들어야 할 것이다. 이리하여 선염법渲染法을 기다리는 것이 허공의 갖추어야 할 예의다.
공자의 말씀에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먼저 그림을 그릴 흰 바탕을 마련하고 그다음에 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본바탕을 먼저 갖추고 난 다음에 인품과 자질은 더 세련된 멋을 갖출 것이며 시를 써도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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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1986년 ‘세계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시단에 나왔다.
시집 ‘검은색’ 10p
허공이라 생각했다 색이 없다고 믿었다 빈 곳에서 온 곤줄박이 한 마리 창가에 와서 앉았다 할딱거리고 있다 비 젖어 바들바들 떨고 있다 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허공이란 가끔 연약하구나 회색 깃털과 더불어 목덜미와 배는 갈색이다 검은 부리와 흰 뺨의 영혼이다 공중에서 묻혀 온, 공중이 묻혀준 색깔이라 생각했다 깃털의 문양이 보호색이니까 그건 허공의 입김이라 생각했다 박샛과 곤줄박이는 갈필을 따라 날아다니다가 내 창가에서 허공의 날숨을 내고 있다 허공의 색을 찾아보려면 새의 숫자를 셈하면 되겠다 허공은 아마도 추상파의 쥐수염 붓을 가졌을 것이다 일몰 무렵 평사낙안의 발묵이 번진다 짐작하자면 공중의 소리 일가(一家)들은 모든 새의 울음에 나누어 서식하고 있을 것이다 공중이 텅 비어 보이는 것도 색 일가들이 모든 새의 깃털로 바빴기 때문이다 희고 바래긴 했지만 낮달도 선염법(渲染法)을 가다리고 있지 않은가 공중이 비워지면서 허공을 실천 중이라면, 허공에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다 바람결 따라 허공 한 줌 움켜쥐자 내 손바닥을 칠갑하는 색깔들, 오늘 공중의 안감을 보고 만졌다 공중의 문명이란 곤줄박이의 개체 수이다 새점(占)을 배워야겠다
鵲巢感想文
시인 송재학 시집 ‘검은색’을 읽었다. 이 중에 한 편의 시다. 시제가 ‘공중’이다. 시 내용에서 허공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시제와 엄연히 같은 말인 것 같아도 여기서는 다르게 사용된다. 무엇을 치환한 느낌마저 들기 때문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공중이 시의 객체라면 허공은 시의 주체가 된다. 허공을 깨우치기 위해 공중의 안감을 보는 시인이다.
시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공중의 문명이란 곤줄박이의 개체 수라고 시인은 얘기한다. 여기서 문명은 문명이 아니라 시에서 풍기는 어떤 감흥의 정도다. 곤줄박이는 공중의 한 부분이며 이의 개체 수가 문명을 좌우한다. 곤줄박이라는 새를 비유로 든 것도 재밌다. 이 새는 박샛과로 머리와 목은 검은색, 등ㆍ가슴ㆍ배는 밤색, 날개와 꽁지는 잿빛 청색이며 뒷머리에 ‘V’ 자 모양의 검은 무늬가 있다. 텃새로 야산이나 평지에 사는데 한국, 일본, 사할린 등지에 분포한다.
시 도입부에 보면 빈 곳에서 온 곤줄박이 한 마리 창가에 와서 앉았다는 말이 나온다. 창가는 마음의 창으로 현실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를 향한 문이다. 말하자면, 곤줄박이는 시적 계기를 위한 장치다. 비 젖어 바들바들 떨고 있다거나 내 손바닥에 올렸다니, 하는 것은 시의 묘사다. 뒤 문장은 이를 더 자세히 묘사한다. 즉, 허공이란 가끔 연약하다는 둥, 회색 깃털과 더불어 목덜미와 배는 갈색이라는 둥, 그러다가 검은 부리와 흰 뺨의 영혼이라며 아예 못을 박는다.
하지만, 시인은 마! 이러한 것을 봤을 때 허공은 공중에서 묻혀 온, 공중이 묻혀준 색깔인 거로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시 문장은 여러 가지 보호색으로 덮여 있으니까 말이다. 이를 깃털의 문양이 보호색이라는 비유를 든다. 그러므로 이것은 허공의 입김이 아니다. 허공의 감흥을 돋우는 데는 일리가 있어도 말이다.
내 창가에서 허공의 날숨을 내고 있다는 것은 공중에 날아와 앉은 새, 곤줄박이를 보았으므로 숨을 내쉬는 것이 된다. 즉, 시를 적을 수 있겠다는 표현이다. 다음은 허공의 색을 찾아보려면 새의 숫자를 셈하면 된다는 말이 나온다. 허공은 시의 아버지 시인으로 그 특색을 짚어보고자 하면 그가 남긴 시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새는 시를 제유한다.
허공은 아마도 추상파의 쥐수염 붓을 가졌을 것이라는 말도 재밌는 표현이다. 쥐수염 붓에 관한 설명은 예전 시인 안도현 선생의 시 ‘국화꽃 그늘과 쥐수염 붓’을 감상에 쓴 적 있다. 쥐수염 붓은 왕희지와 추사가 아꼈던 붓으로 명필가는 아주 귀하게 여기던 붓이다. 여기서는 문학이나 문필을 제유한 것으로 보인다. 추상파니 시는 이에 비유할 만하다.
평사낙안(平沙落雁)은 모래펄에 날아와 앉은 기러기로 글씨나 문장이 매끈하게 잘된 것을 비유한다. 공중의 소리 일가들은 모든 새의 울음에 나누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은 시집과 시집에 든 시를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시를 쓴다는 것은 시에 취미를 두고 시를 쓴다는 것은 우선 공중의 소리 일가를 이룬 새의 울음소리를 먼저 들어야 할 것이다. 이리하여 선염법渲染法을 기다리는 것이 허공의 갖추어야 할 예의다.
공자의 말씀에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먼저 그림을 그릴 흰 바탕을 마련하고 그다음에 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본바탕을 먼저 갖추고 난 다음에 인품과 자질은 더 세련된 멋을 갖출 것이며 시를 써도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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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1986년 ‘세계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시단에 나왔다.
시집 ‘검은색’ 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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