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 조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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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96회 작성일 17-05-21 22:09본문
달팽이 / 조말선
나는 음울한 아이였어요 예민한 편이었죠 통 집밖을 나다니지 않았어요 한밤중에 잠 깬 엄마가 깜짝 놀라 묻곤 했죠 너, 안 자고 뭐 하니? 나는 절대로 벽을 뜯어먹는다고 밝히지 않았어요 나는 열심히 공부한다는 말에 부끄러워했으니까요 비 오는 날에 낮잠에서 깬 엄마가 묻곤 했죠 너, 비 맞고 뭐 하니? 나는 절대로 지붕을 갉아먹는다고 밝히지 않았어요 나는 내게 뭔가를 기대하는 반응에 치를 떨었으니까요 이제 내가 집밖을 나설 때가 되긴 된 건가요 통 바깥출입을 하는 게 내키지 않아서 말이죠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느니 집을 먹어치우는 게 나았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집의 구조를 이해하는 게 빨랐죠 세상에서 가장 간편한 집을 짓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鵲巢感想文
달팽이는 연체동물이다. 밤이나 비 오는 낮에 주로 활동한다. 풀이나 나뭇잎을 먹고 나사 모양의 집을 만들어서 이고 다닌다.
시인의 시 ‘달팽이’는 시인의 마음을 달팽이에 이입하여 그린 셈이다. 그러니까 달팽이의 습성으로 시를 그렸다. 시에서 ‘엄마’가 두 번 나온다. 엄마는 시적 장치며 절대자다. 엄마는 화자인 달팽이에게 두 번의 질문을 한다. 이 두 번의 질문은 달팽이의 습성과 연관한다. 그러니까 두 번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달팽이의 습성과 중첩하여 시인의 마음을 옮겨놓는다.
밤에 무엇을 하는지, 비 오는 날은 또 무엇을 하는지 말이다.
시인은 역시 타고난 글쟁이라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습성을 지녔다. 이러한 글을 쓰는 데 제아무리 머리를 써도 글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기 마련이다. 집 밖을 나서지도 않고 밤잠 스쳐 가며 공부를 하는 것은 집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함이다.
시를 쓰고 싶다면, 쓴다고 모두 시가 되는 것이 아니듯 우선 글 구조를 이해하며 공부하는 것이 먼저임을 시인은 말하고 있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집의 구조를 이해하는 게 빨랐죠.) 여기서 아이스크림이란 시어가 나온다. 아이스크림의 형태와 모양, 그리고 맛과 색상을 생각하여 시인은 쓴 것임을 밝혀둔다.
달팽이가 바다를 건넌다는 말도 있다. 우리 말 구조를 알고 싶다면 우리말을 읽어야 한다. 세상이 좁다는 것을 와우각상(蝸牛角上)에 비유를 한다만, 문학과의 거리를 좁힌다면 와사와 같은 작은 시집 한 권도 가질 수 있겠다.
시인은 달팽이에 환치하여 한 편의 시를 이루었다. 지네나 거미 혹은 무생물인 다른 어떤 물건에 비유를 들어 글을 써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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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말선 1965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199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와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둥근 발작’
나는 음울한 아이였어요 예민한 편이었죠 통 집밖을 나다니지 않았어요 한밤중에 잠 깬 엄마가 깜짝 놀라 묻곤 했죠 너, 안 자고 뭐 하니? 나는 절대로 벽을 뜯어먹는다고 밝히지 않았어요 나는 열심히 공부한다는 말에 부끄러워했으니까요 비 오는 날에 낮잠에서 깬 엄마가 묻곤 했죠 너, 비 맞고 뭐 하니? 나는 절대로 지붕을 갉아먹는다고 밝히지 않았어요 나는 내게 뭔가를 기대하는 반응에 치를 떨었으니까요 이제 내가 집밖을 나설 때가 되긴 된 건가요 통 바깥출입을 하는 게 내키지 않아서 말이죠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느니 집을 먹어치우는 게 나았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집의 구조를 이해하는 게 빨랐죠 세상에서 가장 간편한 집을 짓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鵲巢感想文
달팽이는 연체동물이다. 밤이나 비 오는 낮에 주로 활동한다. 풀이나 나뭇잎을 먹고 나사 모양의 집을 만들어서 이고 다닌다.
시인의 시 ‘달팽이’는 시인의 마음을 달팽이에 이입하여 그린 셈이다. 그러니까 달팽이의 습성으로 시를 그렸다. 시에서 ‘엄마’가 두 번 나온다. 엄마는 시적 장치며 절대자다. 엄마는 화자인 달팽이에게 두 번의 질문을 한다. 이 두 번의 질문은 달팽이의 습성과 연관한다. 그러니까 두 번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달팽이의 습성과 중첩하여 시인의 마음을 옮겨놓는다.
밤에 무엇을 하는지, 비 오는 날은 또 무엇을 하는지 말이다.
시인은 역시 타고난 글쟁이라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습성을 지녔다. 이러한 글을 쓰는 데 제아무리 머리를 써도 글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기 마련이다. 집 밖을 나서지도 않고 밤잠 스쳐 가며 공부를 하는 것은 집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함이다.
시를 쓰고 싶다면, 쓴다고 모두 시가 되는 것이 아니듯 우선 글 구조를 이해하며 공부하는 것이 먼저임을 시인은 말하고 있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집의 구조를 이해하는 게 빨랐죠.) 여기서 아이스크림이란 시어가 나온다. 아이스크림의 형태와 모양, 그리고 맛과 색상을 생각하여 시인은 쓴 것임을 밝혀둔다.
달팽이가 바다를 건넌다는 말도 있다. 우리 말 구조를 알고 싶다면 우리말을 읽어야 한다. 세상이 좁다는 것을 와우각상(蝸牛角上)에 비유를 한다만, 문학과의 거리를 좁힌다면 와사와 같은 작은 시집 한 권도 가질 수 있겠다.
시인은 달팽이에 환치하여 한 편의 시를 이루었다. 지네나 거미 혹은 무생물인 다른 어떤 물건에 비유를 들어 글을 써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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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말선 1965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199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와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둥근 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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