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의 입 / 김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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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95회 작성일 17-05-29 21:32본문
씨의 입 / 김선태
‘씹’이라는 순 우리말이 있지요 / ‘씹(種)’와 ‘입(口)’을 합친 / ‘씨입’이 줄어서 된 이 말은 / ‘씨를 들이는 입’과 / ‘씨를 들이는 일’이라는 뜻을 / 함께 품고 있지요
무슨 상스런 욕이나 / 음담에 쓰는 속된 말이 아니라 / 생명 탄생의 입구와 출구 / 생명 탄생의 행위가 들어 있으니 / 세상에 이처럼 성스러운 말이 / 또 어디 있을까요
무릇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 ‘씹’을 등지고 살 수 없습니다
‘씨’가 좋아야, ‘씹’을 잘해야 / 건강한 싹을 틔우고 / 힘차게 가지를 뻗고 /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 ‘씹할 놈’은 결코 욕이 아닙니다 / 오히려 ‘씹 못 할 놈’이야말로 / 가장 서럽고 치명적인 욕이지요
‘씹’이라는 이 한마디 속에 / 세계의 존폐가 달려 있습니다
鵲巢感想文
詩人 김선태 선생의 시집 ‘그늘의 깊이’를 읽었다. 이 시집에 두 번째 단락은 모두 선정적이라 하기에도 그렇고 그렇다고 관능미 흐르는 글이라 얘기하기도 그렇다. 시제 ‘섬의 리비도 3’ 부제목이 ‘대바구’인데 이 말뜻은 ‘대신 박아주는 놈’이라 시인은 정의한다.
물론 詩人이 말하기에 앞서 우리의 어느 섬에 남아 있는 희한한 혼인풍습이다. 섬 남정네들은 바다가 삶의 터전이자 무덤이라, 그야말로 인생재해, 인명재해이니 섬에 떼과부가 많을 수밖에 없어 청상과부로 수절해야 한다면 잔인한 처사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적 욕망을 주신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섬에 남은 남편은 이를 짠하게 여겨 과붓집에 몰래 스며들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거저 들어가는 것은 아니겠다. 여러 가지 주고받는 것도 있어 시평에 다 옮겨 담을 수 없는 일이다. 저 뒤쪽에는 이에 보태기라도 하듯 시 한 편을 또 남겼다.
시제 ‘씨의 입’도 시인은 어떤 정황과 풀이를 그럴싸하게 한 듯하지만, 실은 맞는 말이다. 씨의 입은 ‘씹’만 그럴 것도 아니라 ‘詩’ 또한 씨의 입이며 조금 저속할지는 모르지만, 씹이다. 이 씹은 순우리말이라 저속하게 여길 필요도 없다. 이 단어를 저속한 의미로 쓰는 사람이 문제지, 거저 의미를 두고 읽거나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사용한다면 어찌 씹이 욕으로만 보일까 말이다.
이 씹은 생명 탄생의 입구와 출구, 생명 탄생의 행위가 들어 있다. 필자는 이 구절이 참 좋게 읽었다. 오로지 생명 탄생의 행위이자 입구와 출구로만 여긴다면, 사회의 웬만한 문란한 사건·사고는 줄지 않을까 싶다. 사회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몸은 하나의 씨다. 근본적으로 ‘씨’가 좋아야 건강한 시를 생산할 수 있으며 이 생산적 활동은 역시 ‘씹’이다. 씹이란 행위를 강조하는 말이다. 어쩌면 씹는다는 말의 그 어근이다.
시를 쓰는 행위는 시인이 말했던 거와 마찬가지로 ‘씹할 놈’이며 더 나가 언어 구사 능력을 키우고 보태며 자기표현을 더 값지게 한다. 그러니까 이는 결코 욕이 아니다. 오히려 ‘씹 못 할 놈’이야말로 가장 서럽고 치명적인 욕이라 시인은 단정한다.
예전에 모 선생을 만났다. 중년 나이쯤 되면 단체와 협회 등 여러 모임을 가지며 활동한다. 어느 지인으로부터 문자를 받아도 답변 하나 보내지 못한 선생이었다. 왜 답장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혹여나 오타나 의미가 잘못 전달할 것 같아 아예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는 ‘씹 못 할 놈’이다. 시인이 말한 서럽고 치명적인 욕이지만, 이는 응변 능력이 없음을 얘기한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말이 있지만, 말 한마디 천 냥 빚 갚는다는 말도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씨를 잘 가려서 해야겠다. 속담과 격언은 말의 씨다. 비단 대단 곱다 해도 말같이 고운 것은 없다는 말, 비단이 아무리 곱다 해도 아름다운 마음씨에서 우러나오는 말처럼 고운 것은 없다는 뜻이다. 말 잘하기에 앞서 근본 그릇이 되어야겠다.
이것으로 詩人 김선태 선생의 詩集 ‘그늘의 깊이’를 책거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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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199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그늘의 깊이’
‘씹’이라는 순 우리말이 있지요 / ‘씹(種)’와 ‘입(口)’을 합친 / ‘씨입’이 줄어서 된 이 말은 / ‘씨를 들이는 입’과 / ‘씨를 들이는 일’이라는 뜻을 / 함께 품고 있지요
무슨 상스런 욕이나 / 음담에 쓰는 속된 말이 아니라 / 생명 탄생의 입구와 출구 / 생명 탄생의 행위가 들어 있으니 / 세상에 이처럼 성스러운 말이 / 또 어디 있을까요
무릇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 ‘씹’을 등지고 살 수 없습니다
‘씨’가 좋아야, ‘씹’을 잘해야 / 건강한 싹을 틔우고 / 힘차게 가지를 뻗고 /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 ‘씹할 놈’은 결코 욕이 아닙니다 / 오히려 ‘씹 못 할 놈’이야말로 / 가장 서럽고 치명적인 욕이지요
‘씹’이라는 이 한마디 속에 / 세계의 존폐가 달려 있습니다
鵲巢感想文
詩人 김선태 선생의 시집 ‘그늘의 깊이’를 읽었다. 이 시집에 두 번째 단락은 모두 선정적이라 하기에도 그렇고 그렇다고 관능미 흐르는 글이라 얘기하기도 그렇다. 시제 ‘섬의 리비도 3’ 부제목이 ‘대바구’인데 이 말뜻은 ‘대신 박아주는 놈’이라 시인은 정의한다.
물론 詩人이 말하기에 앞서 우리의 어느 섬에 남아 있는 희한한 혼인풍습이다. 섬 남정네들은 바다가 삶의 터전이자 무덤이라, 그야말로 인생재해, 인명재해이니 섬에 떼과부가 많을 수밖에 없어 청상과부로 수절해야 한다면 잔인한 처사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적 욕망을 주신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섬에 남은 남편은 이를 짠하게 여겨 과붓집에 몰래 스며들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거저 들어가는 것은 아니겠다. 여러 가지 주고받는 것도 있어 시평에 다 옮겨 담을 수 없는 일이다. 저 뒤쪽에는 이에 보태기라도 하듯 시 한 편을 또 남겼다.
시제 ‘씨의 입’도 시인은 어떤 정황과 풀이를 그럴싸하게 한 듯하지만, 실은 맞는 말이다. 씨의 입은 ‘씹’만 그럴 것도 아니라 ‘詩’ 또한 씨의 입이며 조금 저속할지는 모르지만, 씹이다. 이 씹은 순우리말이라 저속하게 여길 필요도 없다. 이 단어를 저속한 의미로 쓰는 사람이 문제지, 거저 의미를 두고 읽거나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사용한다면 어찌 씹이 욕으로만 보일까 말이다.
이 씹은 생명 탄생의 입구와 출구, 생명 탄생의 행위가 들어 있다. 필자는 이 구절이 참 좋게 읽었다. 오로지 생명 탄생의 행위이자 입구와 출구로만 여긴다면, 사회의 웬만한 문란한 사건·사고는 줄지 않을까 싶다. 사회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몸은 하나의 씨다. 근본적으로 ‘씨’가 좋아야 건강한 시를 생산할 수 있으며 이 생산적 활동은 역시 ‘씹’이다. 씹이란 행위를 강조하는 말이다. 어쩌면 씹는다는 말의 그 어근이다.
시를 쓰는 행위는 시인이 말했던 거와 마찬가지로 ‘씹할 놈’이며 더 나가 언어 구사 능력을 키우고 보태며 자기표현을 더 값지게 한다. 그러니까 이는 결코 욕이 아니다. 오히려 ‘씹 못 할 놈’이야말로 가장 서럽고 치명적인 욕이라 시인은 단정한다.
예전에 모 선생을 만났다. 중년 나이쯤 되면 단체와 협회 등 여러 모임을 가지며 활동한다. 어느 지인으로부터 문자를 받아도 답변 하나 보내지 못한 선생이었다. 왜 답장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혹여나 오타나 의미가 잘못 전달할 것 같아 아예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는 ‘씹 못 할 놈’이다. 시인이 말한 서럽고 치명적인 욕이지만, 이는 응변 능력이 없음을 얘기한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말이 있지만, 말 한마디 천 냥 빚 갚는다는 말도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씨를 잘 가려서 해야겠다. 속담과 격언은 말의 씨다. 비단 대단 곱다 해도 말같이 고운 것은 없다는 말, 비단이 아무리 곱다 해도 아름다운 마음씨에서 우러나오는 말처럼 고운 것은 없다는 뜻이다. 말 잘하기에 앞서 근본 그릇이 되어야겠다.
이것으로 詩人 김선태 선생의 詩集 ‘그늘의 깊이’를 책거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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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199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그늘의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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