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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빙하시대 4 / 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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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36회 작성일 17-05-3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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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빙하시대 4 / 허연




    나에게 월급을 주는 빌딩 뒤에는 타임캡슐이 묻혀 있다. 콘돔이며 뭐 이런 것들이 묻혀 있단다. 기념이란다. 난 그래도 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간 사람을 존경할 줄은 안다. 그나마 다행이다. 난 때로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침묵하기도 한다. 따라서 나는 매우 실존적인 잡놈이다.

    착각은 오류를 따지지 않는 법. 오늘도 나는 시내로 돈을 벌러 간다. 돈 벌러 온 놈들이 잔뜩 몰려 있는 곳으로 15년째. 시내는 세상의 중심이다. 물론 착각으로 판명 날 게 뻔하다. 개구멍에라도 빛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또 하루를 썩힌다. 욕을 내뱉으며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가끔은 토할 것 같다. 돈 버는 곳에선 아무도 진실하지 않지만 아무도 무심하지 않다. 난 천성이 도 닦을 놈은 못 된다. 버틸 뿐이다.

    밤마다 내가 사나운 백상아리가 되는 꿈을 꾼다.



鵲巢感想文
    시인 허연 선생의 ‘슬픈 빙하시대 4’를 읽었다. 빙하라는 말은 얼어붙은 강이거나 수천 년 동안 내린 눈의 얼음덩이다. 눈의 얼음덩이 채 떠내려가는 것을 우리는 빙하라 한다. 허연 선생은 빙하시대라고 했다. 이 시대를 시인이 바라본 관점이다. 어쩌면 얼어붙은 시대, 생명력이라고는 없는 이 시대, 혹은 시인이 바라본 사회가 빙하처럼 냉혹하거나 발전 가능성이 없는 시대로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월급을 주는 빌딩 뒤에는 타임캡슐이 묻혀 있다. 빌딩은 현대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딱딱하고 무미건조하다. 이러한 빌딩 뒤에는 타임캡슐처럼 아픔이 묻어 있다. 그러니까 빌딩과 타임캡슐은 대치를 이룬다. 성장은 많은 희생이 따르게 마련인 것이 자본주의다. 지금은 인권이 보장되었고 민주주의가 상당히 발전한 가운데 살면서도 우리가 모르는 희생은 곳곳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다. 시인은 이를 콘돔이라고 정의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곧 기념이다. 슬픈 아픔이며 가릴 수밖에 없는 진실이다.
    난 때로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침묵하기도 한다. 돈 버는 곳에선 아무도 진실하지 않지만 아무도 무심하지 않다. 이는 사회에 한 개인으로 당연히 시인이 해야 할 의무인지도 모르겠다. 무산대중(無産大衆)에 대한 연민이나 소외된 계층에 대한 양심적인 분노 같은 것은 고발할 의무가 있으며 근데,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침묵이 문제다.
    왜 시인은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하는가? 지난 정부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연극 연출가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지원대상에서 제외했다. 거기다가 문화부 측 심사위원들을 압박했다는 내용까지 드러났다. 그러니까 ‘블랙리스트’ 사건의 전모를 밝힌 계기를 마련한 시인 도종환 선생은 문화부 장관 후보자로 발탁됐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침묵은 어쩌면 시인이 처한 어떤 사회적 배경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집이 2008년에 발표했으니까 말이다. 시인은 평범한 시민, 우리의 삶을 대변한다. 세상에 대한 불의에 욕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루를 이어야 하는 생명, 돈을 벌어야 하는 자본주의 시대다. 정말 토할 것 같은 세상이다. 그러니,
    밤마다 이 세계를 물어뜯는 백상아리가 된다. 백상아리는 바닷물고기로 상어의 일종이다. 여기서는 시인, 혹은 백지 같은 한풀이다. 세계는 바다처럼 넓고 넓다. 이 세계에 대한 부조리를 시인 나름의 해결 방법이다.
    성동격서聲東擊西라는 말이 있다. 소리는 동쪽에서 내며 서쪽을 친다는 말이다. 시인은 사회에 미약한 존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잡은 필봉은 이 사회를 충분히 동요하고도 남는다. 시는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본질을 살짝 가림으로써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이를 대변한다.
    현 정부는 빙하시대가 아니라 소통의 문화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길 심히 바란다. 차별과 배제가 없는 사회, 불공정한 지원으로 예술인들에게 불이익이 없는 사회, 문화생태계를 왜곡하며 다양성을 잃게 하여 국민이 피해가 없는 사회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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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연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 등단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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