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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 /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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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49회 작성일 17-06-02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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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 / 이영주




    이 하수도에서 나는 나의 친구가 된 것일까. 교장 선생님이 자살한 개천가에서 거위들이 울었다. 철조망 밖에는 커다란 구름 굴뚝. 나는 하수도 밑에서 주운 맥고모자를 썼다.

    구름이 몸을 굽혔을 때 거위들은 쩍쩍 부리를 벌렸다. 열을 맞춰 구름을 굴뚝 안으로 밀어 넣는 기계 울음소리. 왜 더 나은 자살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버지는 천변 끝에 집을 지었는데 매일매일 구름을 기계 안에 넣고 돌렸다. 잠들고 싶은 자들은 아버지의 베개를 사 갔다. 나는 밤새도록 눈을 부릅뜨고 몸을 굽혔다. 폈다. 뼈들이 덜그럭거릴 때마다 도망쳐서 굴뚝까지 올라갔다. 어떤 울음소리를 내야 할지 생각했다.

    저물녘이 되면 많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재촉했지만 기계 안에서 거위들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깊은 잠을 위해 촉촉한 깃털을 넣어야 한다는 아버지. 나는 베개 라벨지 숫자를 세며 입술을 빨았다. 아무래도 더 좋게 죽은 자들의 기운은 수많은 잠이 흘러가는 하수도로 가야 한다.

    솜틀 기계를 돌릴 때에는 모자를 썼다. 자살한 자들이 엎드린 개천에서 흰 깃털이 날아올랐다. 나는 내 손을 잡고 깃털을 밟으면서 아침마다 학교에 갔다. 뒤뚱거리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鵲巢感想文
    베개는 잠잘 때 혹은 누울 때 머리에 괴는 물건이다. 여기서는 머리에 괴는 물건으로 시를 썼기보다는 시 받침대, 물론 베개라는 기능을 보며 얘기한 것이다. 무엇을 받치는 물건이라는 면에서 시와 베개는 일맥상통하는 점을 찾을 수 있겠다.

    시 1연은 시 발단의 계기를 마련했다. 하수도 같은 세상은 시인이 느낀 점이다. 이 하수도와 거위는 시인의 마음이며 맥고모자를 쓴 것은 거위가 변이한 어떤 물체다. 자살한 교장 선생님은 반듯한 세계, 규칙과 규범을 갖는 사회, 한 치 흩트림이 없는 세상을 상징한다. 굴뚝은 인내와 노력을 철조망은 그 경계다.

    시 2연은 시인의 시에 대한 비평이다. 반듯한 세계를 추구하지만, 쉽지가 않다. 거위가 부리를 벌려 세상을 좇고 있지만 구름처럼 사라지기 쉬운 것도 없다. 이상과 꿈, 목표 같은 것을 기계처럼 욱여넣기도 하지만, 솔직히 더 나은 표현은 찾기가 힘들다. 자살은 우리가 생각하는 스스로 목숨 끊는 행위를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오히려 살고자 하는 희망, 어떤 무늬 혹은 창문이나 문의 뼈대 같은 지지대로 읽는 것도 괜찮겠다. 시니까, 굳이 더 표현하자면 자+살이다.

    시 3연은 시 공부에 대한 매진이다. 아버지는 천변 끝에 집을 지었다는 것은 이미 행위가 끝난 본보기다. 우리는 아버지처럼 사는 세상을 그리워한다. 그러니까 더 빠른 성찰과 성장을 통해 내가 가보지 않은 세상을 가보고 싶지만, 세상은 똑같다. 소월이 말한 ‘저만치 혼자서 피워 있네.’다. 하지만, 이쪽도 성찰하며 바라본 세상이며 그만큼 세상을 들여다보는 나이가 되었다. 어쩌면 성장은 이루었지만, 그 표현은 미흡할 수도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우주의 물질과 같은 것이다. 드러낸다고 해서 드러나는 것도 아니며 계량할 수도, 만질 수도, 볼 수도, 측정도 안 되는 불가사의한 물질과 비슷하다. 암흑 같지만, 빛이며 생성이자 소멸 같은 아득한 시간과 같은 것이다.

    시 4연, 약간 진술에 가깝지만, 영원한 안식을 기도하는 시인을 볼 수 있다. 저물녘이라는 시간성을 제시했다. 거위의 피를 보면서까지 어쩌면 거위는 희생 같은 현실을 대변한다. 이것은 사색이며 한편으로 안심으로 이끄는 작용과 같다. 이에 반작용으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거나 더 좋게 죽은 자들의 기운을 일깨우는 주술적 행위를 부른다면 하수도는 생명을 가진 셈이다.

    시 5연, 기계문명에 저항하는 모자를 본다. 흰 깃털과 깃털을 맞잡고 걷는 시인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노래한다. 베개처럼 누울 수 있는 베개처럼 지지하거나 베개처럼 받치는 세상, 한 편의 시로 반듯하게 교장 선생님처럼 걸어갈 수만 있다면 오늘도 뒤뚱거리더라도 걷기를 포기하는 일은 없다. 전진, 앞으로 계속 나갈 뿐이다.


    견강부회牽強附會라는 말이 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시와 해석은 각기 읽는 법이 달라 그럴 수 있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자지익師資之益이라는 말도 있듯 돌아보면 스승 아닌 것이 어디 있을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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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주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0년 문학동네 신인상 등단
    시집 ‘언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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