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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짐에 대하여 / 윤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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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57회 작성일 17-06-0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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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짐에 대하여 / 윤의섭




    죽은 나무는 저항 없이 부러진다
    물기가 사라질수록 견고해지고 가벼워지고
    아마 죽음이란 초경량을 향한 꼿꼿한 질주일 것이다
    무생물의 절단 이후는 대개 극단적이다
    잘려 나간 컵 손잡이는 웬만하면 혼자 버려지지 않는다
    강철보다 무른 쇠가 오래 버티었다면 순전히 운 때문이며
    용접 그 최후의 방편은 가장 강제적인 재생 쉽게 주어지지 않는 안락사
    수평선 너머 부러진 바다와 구름 사이 조각난 낮달
    나는 네게서 얼마나 멀리 부러져 나온 기억일까
    갈대는 부러지지 않는다지만 대신 바람이 갈라지고 마는걸
    편린의 날들은 사막으로 치닫는 중이다
    이쯤 되면 버려졌다거나 불구가 되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는 스스로 부러질 때가 있었던 것이고
    서로의 단면은 상처이기 전에 폐쇄된 통로일 뿐이라고
    둘로 나뉘었으므로 생과 사의 길을 각자 나누어 가졌다고
    조금 더 고독해지고 조금 더 지독해진 거라고
    부러지고 부러져
    더는 부러질 일 없을 때까지 부러
    진 거라고



鵲巢感想文
    노자 도덕경 76장을 보면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나, 그 죽음은 굳고 강하다고 했다. 더 나가 만물인 풀과 나무도 삶은 부드럽고 연하며 그 죽음은 마르고 딱딱하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라 했다.

    시인의 시, 부러짐에 대한 것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몸이 굳는 현상을 연상케 한다. 몸도 굳지만, 마음도 예전처럼 부드럽지는 못하다. 부드럽다는 것은 저항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이 굳는 것은 슬픈 일이다.

    무생물의 절단 이후는 대개 극단적이다. 무생물은 생물이 아닌 물건이다. 흙이나 돌, 혹은 물 같은 것을 말한다. 극단적極端的이라는 말은 한쪽으로 크게 치우치거나 일의 진행이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그 끝을 말한다. 절단이라는 말과 이후라는 시어에 앞에 무생물이라는 단어가 마치 그 이전에는 생물이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절단 이후는 하나의 경계점이다. 그러면 절단 이전에는 극단적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어떤 중용의 길이었음을 암시한다.

    잘려나간 컵 손잡이는 웬만하면 혼자 버려지지 않는다. 컵을 굳이 구분하자면 무생물이다. 컵 손잡이가 있다면 몸통은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몸통마저 버려진 것이 된다. 원래 손잡이와 몸통은 한 몸이니까 말이다.

    강철 같은 젊음이 있었다면 무른 쇠 같은 인생도 찾아드는 법이다. 무른 쇠가 모든 것을 인정하며 받아들여도 그것은 순전히 운이다. 가끔은 용접하며 삶을 잇기도 하며 그 최후의 방편은 가장 경제적인 재생을 써보기도 한다. 삶을 잇는 것은 희망이며 봄을 바라지만, 봄은 봄 같지 않아 결국 안락사한다.

    부부의 연은 수평선이다. 바다는 여성 측을 대변하며 낮달은 하나의 이상이다. 구름과 조각은 그 이상을 가리는 현실을 묘사한다. 원만한 낮달 아래 구름이 끼지 않은 바다를 그리워하지만, 시간은 이미 갈라놓고 말았다. 바람은 일종의 시간 흐름을 예시한다.

    편린片鱗이란 한 조각의 비늘이라는 뜻으로 극히 사소한 일을 말하며 이 사소한 일마저 사막으로 치달으니 무미건조한 삶의 묘사다. 이쯤 되면 버려졌다거나 불구가 되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시인은 말하지만, 결국 이는 버려졌다는 것을 강조한 뜻이 돼 버렸다. 그러니까 막막한 현실이다.

    언젠가는 스스로 부러질 때가 있었던 것이라며 위안하며 서로의 단면은 상처이기 전에 폐쇄된 통로일 뿐이라고 단정한다. 이는 고독과 지독한 삶의 시작이라 부러지고 부러져 더는 부러질 일 없을 때까지 부러진 거나 다름이 없음을 얘기한다.

    시는 마음이다. 마음을 풀다 보면 어느새 위안도 되고 평정을 찾는다. 인생은 부러질 때가 오는 법이다. 칠순쯤 되는 어느 선생이었다. 물론 사업 관계상 이것저것 담소를 나누다가 선생보다는 필자 나이는 아래였다. 이제 오십은 곧 닥치는 일이라 늙음을 준비해야 함을 조심스럽게 표현했다. 그러니까 선생은 좋은 얘기를 해주셨다. 선생께서는 부부의 관계가 뜻하지 않을 때, 우울증이 찾아왔다며 말씀을 주셨다.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 지금은 새로운 삶을 사시는 듯 활기를 찾았다는 말씀이었다. 선생은 오로지 일에 매진한다. 어떤 하나를 잃었다고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일은 호기심과 성취감으로 그 멋을 찾으니 도로 멋진 삶을 꾸려가게 됐다.

    남자 나이 사십이 넘으면 늙음을 준비해야 하고 50을 넘기면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옛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도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의학이 발달하여 앞으로는 인간수명도 150은 여사고 200세까지 바라보는 시대가 되었다. 빠르면 2050년이며 늦어도 2100년에는 스스로 목숨 끊는 일이 없다면 웬만한 병은 치료가 되며 노화까지도 어느 정도는 정복이 된다. 물론 의료비도 턱없이 낮아 누구나 혜택을 받는 시대다.

    하지만,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이 궁극적 질문에 대한 답은 역시 창의적이며 의미 있는 생산에 있다. 이는 나와 모두, 이로워야 한다. 낙이자상수장(樂易者常壽長)이라 했다. 즐겁고 평이한 사람은 언제나 오래 산다. 이와 반대로 우험자상요절(憂險者常夭折)이라 하여 위험하고 우려한 사람은 늘 근심스럽고 두려워 일찍 죽는다는 얘기다. 그러면 즐거운 것은 무엇인가? 옛 선비는 시와 벗하며 낙하며 살았다. 글을 읽고 시를 짓는 것은 인위적인 욕심을 버리게 하며 극단적 행동을 멀리하고 자연에 좀 더 가까워지니 천수도 누리 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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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의섭 1968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났다. 1994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했다.
    시집 ‘묵시록’
    노자 도덕경 71장
    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 萬物草木之生也柔脆,
    인지생야유약, 기사야견강, 만물초목지생야유취,
    其死也枯槁, 故堅强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기사야고고, 고견강자사지도, 유약자생지도,
    是以兵强則不勝, 木强則兵, 强大處下, 柔弱處上.
    시이병강즉불승, 목강즉병, 강대처하, 유약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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