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 안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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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37회 작성일 17-06-07 14:38본문
그림자 / 안시아
뜨거운 한낮은 햇빛 가마터다
달궈진 태양이 먹빛으로 빚어지는 오후
뚜벅뚜벅 골목을 가고 있다
태양은 제 몸을 달궈 가장 어두운
그늘 하나씩 만들어주는 셈,
뜨거운 최후까지 검은빛을 반사한다
태양을 향한 담벼락이 굴곡진다
햇살에 담갔다 올린 나뭇잎이
유약을 입은 듯 반짝이고
골목을 회전시킨다
타는 듯한 오후가 지나면
둥근 저녁을 빚어놓을 것이다
서로의 경계를 지우며
직립이 교차하고 있다
鵲巢感想文
시인이 사용한 시어를 보면, 자연이 소재다. 한낮, 햇빛, 태양, 먹빛, 검은빛, 햇살, 나뭇잎을 볼 수 있다. 여기서 굳이 인공물을 찾자면 골목이나 담벼락과 명사를 꾸민 형용사로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음이다. 가령, 뜨거운 한낮이라든가, 달궈진 태양, 가장 어두운 그늘을 들 수 있다.
뜨거운 한낮은 햇빛 가마터다. 햇빛은 시인이 바라는 희망을 상징한다. 가마터는 질그릇이나 사기그릇을 굽는 터로 희망을 생산하는 현장이다. 그러니까 뜨거운 한낮은 시인의 열정을 가미한 묘사다.
달궈진 태양이 먹빛으로 빚어지는 오후, 뚜벅뚜벅 골목을 가고 있다. 때는 오후라 하루가 거의 다 갔다. 그만큼 애정을 놓은 하루다. 달궈진 태양으로 이를 묘사한다. 뚜벅뚜벅 골목을 가고 있는 주체는 태양이다. 그러므로 태양은 시인을 은유한다.
태양은 제 몸을 달궈 가장 어두운 그늘 하나씩 만들어주는 셈, 뜨거운 최후까지 검은빛을 반사한다. 책을 읽지 않으면 글이 되지 않는 법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20년간 글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한 낸시 소머스교수는 “어느 분야에서든 진정한 프로가 되려면 글쓰기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짧은 글이라도 매일 쓰라고 했다. 쓰면 생각하게 된다.
사회에 리더가 된 졸업생에게 ‘성공요인이 뭐냐’고 물었더니 가장 많은 답이 ‘글쓰기’였다. ‘능력을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이란 질문에 대한 답도 단연 ‘글쓰기’였다. 글쓰기는 기술이 아니라 생각의 근력筋力을 키우는 일이다.
태양 같은 하루, 태양처럼 보낸 열정은 단연 먹빛으로 찬란한 노을을 만들 게 돼 있다.
때로는 그 열정이 담벼락 같은 굴곡진 벽을 만나기도 하며 뜻하지 않은 길로 들어서게 할 수도 있지만, 둥근 저녁을 바란다면 한낱 스치는 발걸음에 불과하다.
하루가 낮이 있다면 밤이 있듯 생활의 일면을 거울 보듯 매일 들여다보는 성찰이 있다면, 직립은 어떤 경계 없이 온전하겠다.
어쩌면 시인은 세상 삶을 소탈하게 사는 부류라 할 수도 있겠다. 하루를 뜨겁게 살더라도 그 하루는 단색이며 그 느낌은 그늘로서 뜨거운 최후까지 검은빛으로 발하니까 말이다. 노자는 일찍이 이런 말을 했다. 다섯 가지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五色令人目盲), 권력과 돈, 명예와 혈족 그리고 건강, 이 모든 것을 갖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에서 싹트는 것이다.
해구상욕骸垢想浴이라는 말이 있다. 몸에 때가 있으면 씻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루를 살아도 열정이 있어야 하며 그 열정은 남부끄럽지 않은 청렴결백하고 헌신적인 그 무엇이라면 이 이상 최상의 가치 있는 삶은 없을 것이다.
서로의 경계를 지우며 직립이 교차하도록 둥근 저녁을 빚는 것은 태양처럼 뜨거운 한낮을 바라는 희망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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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3년 ‘현대시학’ 신인상 등단
시집 ‘수상한 꽃’
뜨거운 한낮은 햇빛 가마터다
달궈진 태양이 먹빛으로 빚어지는 오후
뚜벅뚜벅 골목을 가고 있다
태양은 제 몸을 달궈 가장 어두운
그늘 하나씩 만들어주는 셈,
뜨거운 최후까지 검은빛을 반사한다
태양을 향한 담벼락이 굴곡진다
햇살에 담갔다 올린 나뭇잎이
유약을 입은 듯 반짝이고
골목을 회전시킨다
타는 듯한 오후가 지나면
둥근 저녁을 빚어놓을 것이다
서로의 경계를 지우며
직립이 교차하고 있다
鵲巢感想文
시인이 사용한 시어를 보면, 자연이 소재다. 한낮, 햇빛, 태양, 먹빛, 검은빛, 햇살, 나뭇잎을 볼 수 있다. 여기서 굳이 인공물을 찾자면 골목이나 담벼락과 명사를 꾸민 형용사로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음이다. 가령, 뜨거운 한낮이라든가, 달궈진 태양, 가장 어두운 그늘을 들 수 있다.
뜨거운 한낮은 햇빛 가마터다. 햇빛은 시인이 바라는 희망을 상징한다. 가마터는 질그릇이나 사기그릇을 굽는 터로 희망을 생산하는 현장이다. 그러니까 뜨거운 한낮은 시인의 열정을 가미한 묘사다.
달궈진 태양이 먹빛으로 빚어지는 오후, 뚜벅뚜벅 골목을 가고 있다. 때는 오후라 하루가 거의 다 갔다. 그만큼 애정을 놓은 하루다. 달궈진 태양으로 이를 묘사한다. 뚜벅뚜벅 골목을 가고 있는 주체는 태양이다. 그러므로 태양은 시인을 은유한다.
태양은 제 몸을 달궈 가장 어두운 그늘 하나씩 만들어주는 셈, 뜨거운 최후까지 검은빛을 반사한다. 책을 읽지 않으면 글이 되지 않는 법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20년간 글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한 낸시 소머스교수는 “어느 분야에서든 진정한 프로가 되려면 글쓰기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짧은 글이라도 매일 쓰라고 했다. 쓰면 생각하게 된다.
사회에 리더가 된 졸업생에게 ‘성공요인이 뭐냐’고 물었더니 가장 많은 답이 ‘글쓰기’였다. ‘능력을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이란 질문에 대한 답도 단연 ‘글쓰기’였다. 글쓰기는 기술이 아니라 생각의 근력筋力을 키우는 일이다.
태양 같은 하루, 태양처럼 보낸 열정은 단연 먹빛으로 찬란한 노을을 만들 게 돼 있다.
때로는 그 열정이 담벼락 같은 굴곡진 벽을 만나기도 하며 뜻하지 않은 길로 들어서게 할 수도 있지만, 둥근 저녁을 바란다면 한낱 스치는 발걸음에 불과하다.
하루가 낮이 있다면 밤이 있듯 생활의 일면을 거울 보듯 매일 들여다보는 성찰이 있다면, 직립은 어떤 경계 없이 온전하겠다.
어쩌면 시인은 세상 삶을 소탈하게 사는 부류라 할 수도 있겠다. 하루를 뜨겁게 살더라도 그 하루는 단색이며 그 느낌은 그늘로서 뜨거운 최후까지 검은빛으로 발하니까 말이다. 노자는 일찍이 이런 말을 했다. 다섯 가지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五色令人目盲), 권력과 돈, 명예와 혈족 그리고 건강, 이 모든 것을 갖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에서 싹트는 것이다.
해구상욕骸垢想浴이라는 말이 있다. 몸에 때가 있으면 씻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루를 살아도 열정이 있어야 하며 그 열정은 남부끄럽지 않은 청렴결백하고 헌신적인 그 무엇이라면 이 이상 최상의 가치 있는 삶은 없을 것이다.
서로의 경계를 지우며 직립이 교차하도록 둥근 저녁을 빚는 것은 태양처럼 뜨거운 한낮을 바라는 희망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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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3년 ‘현대시학’ 신인상 등단
시집 ‘수상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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