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 이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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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12회 작성일 17-06-20 23:24본문
옥상에서 / 이윤승
말갛게 씻은 하늘 한 장 옥상에 널었다
꼬들꼬들 잘 마른 햇살 몇 말 수직으로 꽂혔다
잡힐 듯 부드러운 바람의 감촉
꽃이 되고 싶은 동동 떠다니는 씨앗
새들의 음계를 비명으로 읽는다
솜사탕 구름 몇 조각 덤이다
지붕 나무 산들의 꼭대기가 선명하게 보인다
높은 곳은 오르고 싶다
내 안에 내장된 오랜 습성 때문이다
꼭대기에 가볍게 착지한 깃털이 있단다
꼭대기는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것이라고
눈 맑은 새가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골목길이 골짜기가 된다
물길 되어 흐른다
옆집 미용실 아들의 취직 명퇴한 정씨의 재취업
내 집 장만의 꿈 다 이 길로 흘러들어 왔다
방향이 같은 곳으로 흐르는 골목들
鵲巢感想文
옥상은 지붕의 위다. 특히 현대식 양옥 건물에서 마당처럼 편평하게 만든 지붕 위를 말한다. 옥상은 마당과 다르다. 마당은 집의 포괄적 개념이라면 옥상은 집 그 자체며 협의적이다. 마당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곳이라면 옥상은 그저 삶의 여유 공간이다. 빨래를 널거나 동네 뒷산을 바라볼 수 있다면 혹은 화분을 놓고 커피 한 잔 마시며 화분을 심을 수 있는 여유면 더 바랄 게 없다.
시인은 심은 화분처럼 꼬들꼬들 잘 마른 햇살 몇 말 수직으로 꽂힌 것을 본다. 저것은 나비처럼 잡힐 듯 부드러운 바람의 감촉 같은 것이다.
시는 코스모스 씨앗처럼 꽃이 되고 싶은 동동 떠다니는 마음이다. 넌 정말 나빠, 그러면서도 새처럼 바라보는 음계는 단 두 명이었다가 여러 사람이 지나간다. 꼭 한 사건은 단지 그 원인만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유명한 하인리히 법칙도 있듯이 말이다.
옥상은 비록 좁지만, 세상 훤히 내다볼 수 있는 공간이다. 솜사탕 구름 몇 조각은 덤이다. 어쩌면 세상 각계각층의 지붕을 볼 수 있으며 나무와 산과 내 안에 오래된 습성까지 볼 수 있는 곳이다.
산 꿩은 날아오르고 사슴은 물을 마시고 어미 멧돼지가 여러 마리 새끼를 거닐며 걸어가는 모습처럼 구름의 뒤, 구름이 보이고 꼭대기는 가볍게 착지한 깃털이 있다. 깃털을 믿고 우리는 꼭대기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눈 맑은 새가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는 않을까! 그렇게 기대하면서 말이다.
새처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골목길은 골짜기가 된다. 우울한 지난날은 추억처럼 지나갈 것이다. 어떤 빈 곳을 채울 수 있겠다던 어떤 희망이다. 마치 녹슨 문처럼 좀처럼 열 수 없었던 어떤 열쇠로 마음을 채울 수도 있겠다. 마찬가지로 옆집 미용실 아들의 취직처럼 명퇴한 정 씨의 재취업과 마찬가지로 하나씩 매 꿰 나가는 마음은 집(詩)을 형성하는 것과 같다.
마음의 옥상에서 하늘 바라보며 달 같은 수박을 가를 때 붉은 열정에 까만 씨앗 같은 희망은 내 일의 골목길이다. 잘 정돈된 골목길에 가로등까지 정비되었다면, 혹여나 길을 걷다가 넘어져 무릎이 다치는 길동무는 없겠다. 그러고 보면 하늘은 참 고맙다.
가을 / 이윤승
햇살이 실패에 감겨 있다
풀린 실을 따라나서면
시월이다
항파두리 코스모스
가녀린 일가붙이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수런수런 바람결에 묻어오는
가을 수다를 다 들을 수는 없지만
햇살이 바지에 엉기고
웃자란 풀들의 씨가 지레 놀라 터지고
땅은 보이지 않는데
하늘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시인 이윤승의 시 가을 全文이다. 인생도 가을쯤에 이르면 가늘고 얇고 파릇하게 뜨는 바람의 씨앗이 있다. 햇살이다. 실패에 감긴 풀린 실처럼 하늘의 끝도 없이 낭창낭창 흔드는 연으로 항파두리 골목을 누비며 어쩌면 한 방향으로 동질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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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승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2014년 ‘제주작가’ 신인상 수상하며 작품 활동 시작했다.
시집 ‘눈가에 자주 손이 갔다’
말갛게 씻은 하늘 한 장 옥상에 널었다
꼬들꼬들 잘 마른 햇살 몇 말 수직으로 꽂혔다
잡힐 듯 부드러운 바람의 감촉
꽃이 되고 싶은 동동 떠다니는 씨앗
새들의 음계를 비명으로 읽는다
솜사탕 구름 몇 조각 덤이다
지붕 나무 산들의 꼭대기가 선명하게 보인다
높은 곳은 오르고 싶다
내 안에 내장된 오랜 습성 때문이다
꼭대기에 가볍게 착지한 깃털이 있단다
꼭대기는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것이라고
눈 맑은 새가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골목길이 골짜기가 된다
물길 되어 흐른다
옆집 미용실 아들의 취직 명퇴한 정씨의 재취업
내 집 장만의 꿈 다 이 길로 흘러들어 왔다
방향이 같은 곳으로 흐르는 골목들
鵲巢感想文
옥상은 지붕의 위다. 특히 현대식 양옥 건물에서 마당처럼 편평하게 만든 지붕 위를 말한다. 옥상은 마당과 다르다. 마당은 집의 포괄적 개념이라면 옥상은 집 그 자체며 협의적이다. 마당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곳이라면 옥상은 그저 삶의 여유 공간이다. 빨래를 널거나 동네 뒷산을 바라볼 수 있다면 혹은 화분을 놓고 커피 한 잔 마시며 화분을 심을 수 있는 여유면 더 바랄 게 없다.
시인은 심은 화분처럼 꼬들꼬들 잘 마른 햇살 몇 말 수직으로 꽂힌 것을 본다. 저것은 나비처럼 잡힐 듯 부드러운 바람의 감촉 같은 것이다.
시는 코스모스 씨앗처럼 꽃이 되고 싶은 동동 떠다니는 마음이다. 넌 정말 나빠, 그러면서도 새처럼 바라보는 음계는 단 두 명이었다가 여러 사람이 지나간다. 꼭 한 사건은 단지 그 원인만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유명한 하인리히 법칙도 있듯이 말이다.
옥상은 비록 좁지만, 세상 훤히 내다볼 수 있는 공간이다. 솜사탕 구름 몇 조각은 덤이다. 어쩌면 세상 각계각층의 지붕을 볼 수 있으며 나무와 산과 내 안에 오래된 습성까지 볼 수 있는 곳이다.
산 꿩은 날아오르고 사슴은 물을 마시고 어미 멧돼지가 여러 마리 새끼를 거닐며 걸어가는 모습처럼 구름의 뒤, 구름이 보이고 꼭대기는 가볍게 착지한 깃털이 있다. 깃털을 믿고 우리는 꼭대기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눈 맑은 새가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는 않을까! 그렇게 기대하면서 말이다.
새처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골목길은 골짜기가 된다. 우울한 지난날은 추억처럼 지나갈 것이다. 어떤 빈 곳을 채울 수 있겠다던 어떤 희망이다. 마치 녹슨 문처럼 좀처럼 열 수 없었던 어떤 열쇠로 마음을 채울 수도 있겠다. 마찬가지로 옆집 미용실 아들의 취직처럼 명퇴한 정 씨의 재취업과 마찬가지로 하나씩 매 꿰 나가는 마음은 집(詩)을 형성하는 것과 같다.
마음의 옥상에서 하늘 바라보며 달 같은 수박을 가를 때 붉은 열정에 까만 씨앗 같은 희망은 내 일의 골목길이다. 잘 정돈된 골목길에 가로등까지 정비되었다면, 혹여나 길을 걷다가 넘어져 무릎이 다치는 길동무는 없겠다. 그러고 보면 하늘은 참 고맙다.
가을 / 이윤승
햇살이 실패에 감겨 있다
풀린 실을 따라나서면
시월이다
항파두리 코스모스
가녀린 일가붙이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수런수런 바람결에 묻어오는
가을 수다를 다 들을 수는 없지만
햇살이 바지에 엉기고
웃자란 풀들의 씨가 지레 놀라 터지고
땅은 보이지 않는데
하늘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시인 이윤승의 시 가을 全文이다. 인생도 가을쯤에 이르면 가늘고 얇고 파릇하게 뜨는 바람의 씨앗이 있다. 햇살이다. 실패에 감긴 풀린 실처럼 하늘의 끝도 없이 낭창낭창 흔드는 연으로 항파두리 골목을 누비며 어쩌면 한 방향으로 동질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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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승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2014년 ‘제주작가’ 신인상 수상하며 작품 활동 시작했다.
시집 ‘눈가에 자주 손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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