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육계장 / 박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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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92회 작성일 17-06-24 20:52본문
어육계장 / 박기영
그해 여름 더위는 지리산 칠선계곡 건너가지 못했다. 계곡 입구에서는 밤부터 대여섯 남정네들 밤새 그물을 치고 물고기가 오르내리는 것을 막았다.
사내들은 동 트기 전 계곡 입구에 천막 치고 가마솥을 걸었다. 해가 중천에 걸리자 달아오른 솥 안은 전쟁터였다. 꺽다구와 돌고기, 산메기 살이 갈라지고 뼈가 추려져 형체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속으로 닭들은 뼈째 삶겨져 골수까지 토해내고 마침내는 살결이 실처럼 풀어져서야 계곡 입구에 버려졌다.
가마솥 걸어놓은 바위가 달아오르기 시작하자 수은주 끝 끌어올리는 햇살 막기 위해 솥으로 고사리며 대파, 숙주와 고춧가루로 이루어진 지원군들이 투입되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반백의 노인네들이 마지막으로 천막 안에 모여 억센 평안도 사투리를 뚝배기 안으로 쏟아내며 인정사정없는 남쪽 간나들 더위를 땅으로 메쳤다.
조밥과 어육계장의 붉은 국물들. 이마에 검버섯 가득한 노인들 사투리 거들고, 산 험한 평안도 차가운 계곡 물 닮은 곳 찾아 나온 사람들은 어육계장 뜨거운 국물에 자신을 묻고, 칠선계곡 급류에 막혀, 걷어 올린 허벅지에서 울고 있던 그해 여름, 고향 잃어버린 더위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鵲巢感想文
시인 박기영 선생의 시집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을 읽었다. 시집 한 권 읽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구수한 된장찌개 한 그릇 하듯 정감이 넘친다. 시인은 195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지만, 시인의 아버님은 평안남도 맹산 출신 포수였다. 아버지 따라 원주, 마천 등지를 떠돌다가 대구에 정착했다. 1987년 KBS 방송작가로 여러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프리랜서 연출가로 활동하다 캐나다에 이민을 갔다. 2002년에 귀국하여 충북 옥천에 터를 잡고 옻 된장 등 옻과 관련된 음식과 상품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
시인의 서정은 북방의 산협과 고원지대를 불어가는 서늘한 바람 소리에 귀를 비끄러매고, 선 굵은 서사는 곰살맞고 웅숭깊은 설화적 세계와 공동체에 대한 강력한 기억을 무기력한 일상 속에 돋을새김한다는 시인 손택수 선생의 말씀은 한 치 틀린 바 없어 공감하여 옮겨본다.
시인의 시를 천천히 읽어보면 마치 평안도 사투리로 고집한 백석의 시를 읽는 듯 느낌도 영 없지는 않지만, 남쪽보다는 북쪽이 억양은 더 억세다는 걸 실감한다.
북쪽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 요즘 가뭄으로 심각하여 남쪽만 그런가 싶었더니만, 북쪽도 사정은 만만치 않았는지 공중파 소식을 전하는 북한 소식도 가끔 접하게 됐다. 가뭄에 대한 북한의 사정은 절박하다. ‘총결사전, 총돌격전, 총동원’ 등 가뭄 피해를 철저히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사용하는 언어에서도 보인다. 가뭄에 대한 총결사전은 올해 알곡 생산 목표수행의 돌파구를 열어놓을 것을 절박하게 호소하는 선전 문구다.
얼마 전의 일이다. 어떤 모임에 참석차 팔공산 어느 마을에 갔었다. 산 오르는 길, 집이 듬성듬성 있었고 우리가 찾아간 곳은 제일 꼭대기쯤에 한 채 집이 있었는데 그 아래 집에서 모였다. 백숙에 상추와 된장에 한 끼 밥을 참 잘 먹은 기억이 난다. 이 시를 읽으니까 생각해 본 일이다. 학수고대하는 비는 오지 않고 가뭄으로 농민들은 마음만 애끓는다. 거기다가 AI인지 뭔지 이 한여름에도 돌고 있으니 삼복날 한 철 장사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조밥과 어육계장의 붉은 국물들, 이마에 검버섯 가득한 노인들
사투리 거들고, 산 험한 평안도 계곡물 닮은 곳 찾아 나온 사람들은 어육계장 뜨거운 국물에 자신을 묻고,
칠선계곡 급류에 막혀,
걷어 올린 허벅지에서 울고 있던 그해 여름,
고향 잃어버린 더위를 묵묵히 바라보는 시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겠는가마는
비가 오지 않아 큰일이다.
노자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다. 취빙이다. 12장과 43장에 나온다. 12장에 치빙전렵馳騁畋獵, 43장에 馳騁天下之至堅, 치빙馳騁이라는 말은 1차적인 뜻은 달리고 달린다는 뜻으로 그만큼 능수능란한 의미다.
취우라는 말을 떠올려 보기 위해 취빙을 얘기했다. 취우驟雨는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말한다. 우리말로 하자면, 소나기다. 이 취우라는 말은 취우(翠雨)도 있다. 취우는 푸른 나뭇잎에 매달린 물방울이란 뜻이다. 취(翠)는 물총새를 뜻하기도 하며 비취색, 푸른색을 뜻한다. 취우驟雨가 됐든 취우翠雨가 됐든 지상의 모든 생물은 비 억수 내리 길만 간절하다.
이제는 비 좀 왔으면 싶다.
비 철철 내려, AI는 훌 떨쳐버리고 복날 장사꾼은 닭 삶아 더위 쫓고 서민은 몸보신하여 이 맹더위를 떨쳐내어 올 한 해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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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 195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198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집 ‘맹산식당 옻순비빔밥’
그해 여름 더위는 지리산 칠선계곡 건너가지 못했다. 계곡 입구에서는 밤부터 대여섯 남정네들 밤새 그물을 치고 물고기가 오르내리는 것을 막았다.
사내들은 동 트기 전 계곡 입구에 천막 치고 가마솥을 걸었다. 해가 중천에 걸리자 달아오른 솥 안은 전쟁터였다. 꺽다구와 돌고기, 산메기 살이 갈라지고 뼈가 추려져 형체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속으로 닭들은 뼈째 삶겨져 골수까지 토해내고 마침내는 살결이 실처럼 풀어져서야 계곡 입구에 버려졌다.
가마솥 걸어놓은 바위가 달아오르기 시작하자 수은주 끝 끌어올리는 햇살 막기 위해 솥으로 고사리며 대파, 숙주와 고춧가루로 이루어진 지원군들이 투입되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반백의 노인네들이 마지막으로 천막 안에 모여 억센 평안도 사투리를 뚝배기 안으로 쏟아내며 인정사정없는 남쪽 간나들 더위를 땅으로 메쳤다.
조밥과 어육계장의 붉은 국물들. 이마에 검버섯 가득한 노인들 사투리 거들고, 산 험한 평안도 차가운 계곡 물 닮은 곳 찾아 나온 사람들은 어육계장 뜨거운 국물에 자신을 묻고, 칠선계곡 급류에 막혀, 걷어 올린 허벅지에서 울고 있던 그해 여름, 고향 잃어버린 더위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鵲巢感想文
시인 박기영 선생의 시집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을 읽었다. 시집 한 권 읽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구수한 된장찌개 한 그릇 하듯 정감이 넘친다. 시인은 195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지만, 시인의 아버님은 평안남도 맹산 출신 포수였다. 아버지 따라 원주, 마천 등지를 떠돌다가 대구에 정착했다. 1987년 KBS 방송작가로 여러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프리랜서 연출가로 활동하다 캐나다에 이민을 갔다. 2002년에 귀국하여 충북 옥천에 터를 잡고 옻 된장 등 옻과 관련된 음식과 상품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
시인의 서정은 북방의 산협과 고원지대를 불어가는 서늘한 바람 소리에 귀를 비끄러매고, 선 굵은 서사는 곰살맞고 웅숭깊은 설화적 세계와 공동체에 대한 강력한 기억을 무기력한 일상 속에 돋을새김한다는 시인 손택수 선생의 말씀은 한 치 틀린 바 없어 공감하여 옮겨본다.
시인의 시를 천천히 읽어보면 마치 평안도 사투리로 고집한 백석의 시를 읽는 듯 느낌도 영 없지는 않지만, 남쪽보다는 북쪽이 억양은 더 억세다는 걸 실감한다.
북쪽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 요즘 가뭄으로 심각하여 남쪽만 그런가 싶었더니만, 북쪽도 사정은 만만치 않았는지 공중파 소식을 전하는 북한 소식도 가끔 접하게 됐다. 가뭄에 대한 북한의 사정은 절박하다. ‘총결사전, 총돌격전, 총동원’ 등 가뭄 피해를 철저히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사용하는 언어에서도 보인다. 가뭄에 대한 총결사전은 올해 알곡 생산 목표수행의 돌파구를 열어놓을 것을 절박하게 호소하는 선전 문구다.
얼마 전의 일이다. 어떤 모임에 참석차 팔공산 어느 마을에 갔었다. 산 오르는 길, 집이 듬성듬성 있었고 우리가 찾아간 곳은 제일 꼭대기쯤에 한 채 집이 있었는데 그 아래 집에서 모였다. 백숙에 상추와 된장에 한 끼 밥을 참 잘 먹은 기억이 난다. 이 시를 읽으니까 생각해 본 일이다. 학수고대하는 비는 오지 않고 가뭄으로 농민들은 마음만 애끓는다. 거기다가 AI인지 뭔지 이 한여름에도 돌고 있으니 삼복날 한 철 장사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조밥과 어육계장의 붉은 국물들, 이마에 검버섯 가득한 노인들
사투리 거들고, 산 험한 평안도 계곡물 닮은 곳 찾아 나온 사람들은 어육계장 뜨거운 국물에 자신을 묻고,
칠선계곡 급류에 막혀,
걷어 올린 허벅지에서 울고 있던 그해 여름,
고향 잃어버린 더위를 묵묵히 바라보는 시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겠는가마는
비가 오지 않아 큰일이다.
노자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다. 취빙이다. 12장과 43장에 나온다. 12장에 치빙전렵馳騁畋獵, 43장에 馳騁天下之至堅, 치빙馳騁이라는 말은 1차적인 뜻은 달리고 달린다는 뜻으로 그만큼 능수능란한 의미다.
취우라는 말을 떠올려 보기 위해 취빙을 얘기했다. 취우驟雨는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말한다. 우리말로 하자면, 소나기다. 이 취우라는 말은 취우(翠雨)도 있다. 취우는 푸른 나뭇잎에 매달린 물방울이란 뜻이다. 취(翠)는 물총새를 뜻하기도 하며 비취색, 푸른색을 뜻한다. 취우驟雨가 됐든 취우翠雨가 됐든 지상의 모든 생물은 비 억수 내리 길만 간절하다.
이제는 비 좀 왔으면 싶다.
비 철철 내려, AI는 훌 떨쳐버리고 복날 장사꾼은 닭 삶아 더위 쫓고 서민은 몸보신하여 이 맹더위를 떨쳐내어 올 한 해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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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 195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198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집 ‘맹산식당 옻순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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