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행방 / 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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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02회 작성일 17-08-11 05:32본문
거미의 행방 / 김유석
내 방에 유령이 있다
낡은 사진들과 도금이 볏겨진 벽시계 사이
미소 띤 젊은 날의 얼굴과 멈춘 시간이
비긋이 걸린 구석
상형문자처럼, 검은 실밥으로 뜬 저 표지는
형체를 드러내지 않고 존재의 느낌을 거느리는 것의 정체
유치하게 커튼을 흔든다거나
공연히 전등을 켰다 껐다 하는 시시한 자작극은 치워라
열려진 감옥인데 달아나지 못하는 기분일 뿐인
색 바랜 사진 속에
첫사랑처럼 하고 싶은 얼굴이 있다
흔적이 묻은 발을 사진 밖으로 감추고
생각을 털어내듯 무늬처럼 웃는 젊은이
잠자는 시계를 바라보고 있다
멈춰진 시간은 미소 끝에서 그가 출몰하는 시간
감정과 욕망과, 뻔한 것들로는
겨우 21그램의 무게*를 가진 그를 불러 낼 순 없지만
차갑고 푸르스름하게 또 한 해가 닫히는 밤, 문득
커다란 자루를 메고 세상 밖으로 나서는 修士를 본다
오래 전 죽은 채로 나는 감시해 온 독재자
바늘이 돌고 점점 빠르게
사진이 늙는다,
사몽과 비몽 사이
이상과 허영이 모처럼 내통하는 쭈글쭈글한 잠 속
여전히 슬근거리는 것이 있다
거미인줄 알았는데
시간이다,
* 21그램 : 영혼의 무게
* 김유석 : 1960년 전북 김제 출생,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 감상
오래 전 찍어 벽에 걸어 둔 자신의 낡은 사진틀을 바라보며 화자는 그 당시와
현재를 대조 하면서 생각에 잠긴다(시를 엮어나간다)
특히, 사진틀 속 시간의 묘사가 이채롭다 사진틀 안에는 사진이 낡았고 커튼은
흔들리지 않고 전등불도 깜빡이지 않고 시계바늘도 고정인 채 시간이 멈춰 있다
(시간이 멈췄으므로 존재도 멈춘 것 이므로 열려있는 감옥인데 도망치지 못한다 )
- 생각을 덜어내듯 무늬처럼 웃는 젊은이
- 잠자는 시계를 바라보고 있다,
현재의 자기가 그 때의 생각을 더듬고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빠르게 흐르고 있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면서
- 바늘이 돌고 점점 빠르게
- 사진이 늙는다
과거와 현실의 모처럼의 내통이 꿈이라는 사실에서 썩 기분좋지 않은
시간의 간격을 슬근거리는 거미처럼 느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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