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 / 김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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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童心初박찬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58회 작성일 17-12-03 02:24본문
함박눈 / 김혜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더 이상 우리 말은 듣지 않겠다고
작정한 순간,
폭설이 쏟아졌다
그것도 모르고
땅에 계신 우리는 하늘을 향해
아버지, 아 아 아버지
목청껏 간구했다
그러나 아무 목소리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상달되지 않았다
폭설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칼을 질렀다
그 다음 폭설이 우리와 우리 사이에
금을 그었다
두터운 잠과도 같은 금을 그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서로를 향해
망우리, 마아앙우리
같이 가자 같이 가자
목청껏 외쳤지만
아무도 멈춰서지 않았다
자꾸만 두껍게 더 두껍게 흰 금이
가로세로 그어지고
서로가 사막처럼 머얼어졌다
하늘에 있던 나와 땅에 있던 나마저도
머얼어졌다, 꿈속처럼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김혜순, 문학과지성사, 1987년(2쇄), 56~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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