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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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후裵月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430회 작성일 15-07-09 00:46본문
첫 눈 /어느 초등생이 쓴 시
첫 눈이 내린다
맨 처음 떨어지는 눈은
태어날 때부터 맨 아래에 있던 눈,
맨 아래에 있던 눈은 떨어진 후에도 맨 아래,
눈이 되지 못하고 땅바닥으로 고꾸라져 녹아버린다
중간에 떨어지는 눈은
태어날 때부터 중간에 있던 눈,
중간에 있던 눈은 떨어진 후에도 중간,
아래의 눈들이 얼려놓은 땅으로 힘들게 쌓인다
맨 위에 떨어지는 눈은
태어날 때부터 맨 위에 있던 눈,
맨 위에 있던 눈은 떨어진 후에도 맨 위,
아래의 눈들이 빚어놓은 푹신한 땅 위로 상처 없이 떨어진다
사람들은 모두 맨 위에 있는 눈을 보고 아름답다고 한다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맨 위에서 태어났을 뿐인데
자기들이 전부인 것 마냥 아름답다며 사치스러운 자태를 뽐낸다
첫 날에 내린 진짜 첫 눈은
언 바닥에 몸을 내박으며 물의 파편이 되어
지금쯤 하수구로 흘러들어 억울함에 울부짖고 있는 것은 아무도 듣지 못한다
난 눈이 싫다
댓글목록
시후裵月先님의 댓글
시후裵月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감상]
좋은 시를 찾아 읽는 일도 힘들다
딱히 좋은 시란 어떤 것이다라고 정의하기 어려우므로
시가 읽히지 않는다해도 시 쓰는 사람은 많다
시 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맘 다스리는 일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다
그것은 언어를 다스리는 일과도 같기에
위의 시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한 눈에 띄어 여러 번 반복해서 읽게 되었는데 ...
글쓴이도 정확하게 모르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초등생 작품이라는 것에 더욱 놀랍다
눈이 싫다는 이유를 들어 자연스레 서술했을 뿐인데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구에서 느껴지는 비정함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난 눈이 싫다' 이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인 문장이 오뉴월 서릿발처럼 서늘하고 차갑다
무엇이 이토록 어린 시인의 마음을 비틀어 놓은 것인지? 동시대를 살면서 자문해 본다
첫 눈
해마다 첫 사랑과 맞물려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하던 시의 주제가 아니었던가?
한 편에선 이렇게 다른 각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읽는 이로 하여금 전율케 한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그 이면에 묻힌 진실을 바로 볼 줄 아는 시선을 가져야겠다
눈을 정말 좋아하는 나지만 어쩐지 이 시를 읽는 내내 '나도 눈이 싫다'
그리고 시인이 옆에 있다면 한 마디 나누고 싶다
맨 위에 있어 빛나는 눈도 좋아라 뛰쳐나온 사람들 발에 밟히고 녹아질 땐 질척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