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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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88회 작성일 18-04-04 04:08본문
삼겹살 / 김기택
술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한 시간이 넘도록
내 몸에서 고기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불에 익은 피, 연기가 된 살이
내 땀구멍마다 주름과 지문마다 가득차 있다,
배고플 때 허겁지겁 먹었던
고소한 향은 사라지고
도살 직전의 독한 노린내만 남아
배부른 내 콧구멍을 솜뭉치처럼 틀어막고 있다,
고기 냄새를 聖人의 後光처럼 쓰고
나는 지하철에서 내린다,
지하철 안 내가 서있던 자리에는
내 모습의 허공을 덮고 있는 고기냄새의 거푸집이
아직도 손잡이를 잡은 채
계단으로 빠져나가는 나를 차창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상으로 올라오자
상쾌한 바람이 한꺼번에 고기냄새를 날려보낸다,
시원한 공기를 크게 들이 쉬는 사이
고기냄새는 잠깐 파리떼처럼 날아올랐다가
바로 끈적끈적한 발을 내 몸에 찰싹 붙인다,
제 몸을 지글지글 지진 손을
제 몸을 짓이긴 이빨을 붙들고 놓지 않는다,
아직도 비명과 발악이 남아 있는 비린내가
제 시신이 묻혀있는 내 몸속으로
끈질기게 스며들고 있다
# 감상
몸에서 나는 삼겹살 구워진 냄새를 끊질기게 관찰, 탐구, 묘사해서
만들어진 기막히게 절묘한 시 한 편을 본다
끊어버리고 싶은 냄새는 부처님 後光처럼 달라붙어서 따라다니는데,
- 지하철 안 내가 서있던 자리에는
- 내 모습의 허공을 덮고 있는 고기냄새의 거푸집이
- 아직도 손잡이를 잡은 채
- 계단으로 빠져나가는 나를 차창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의 화룡정점이고 분위기의 압권이다
화자의 상상력의 전이와 확산의 끝은 대체 어디까지란 말인가, 기막힌
이 극 사실적 묘사에서 그만 입이 딱, 벌어질 뿐이다
- 아직도 비명과 발악이 남아 있는 비린내가
- 제 시신이 묻혀 있는 내 몸속으로
- 끈질기게 스며들고 있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까지 자아내게 하는 본 句節에서 뼛속 끝까지 파고
드는 화자의 끊질긴 진력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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