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이야기/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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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북수유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29회 작성일 18-05-25 10:04본문
모자 이야기
남진우
내 낡은 모자 속에서
아무도 산토끼를 끄집어낼 수는 없다
내 낡은 모자 속에 담긴 것은
끝없는 사막 위에 떠 있는 한 점 구름일 뿐
내 낡은 모자 속에서 사람들은
파도 소리도 바람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러나 깊은 밤 내 낡은 모자에 귀를 갖다 대면
기적 소리와 함께 시커먼 화물 열차가 달려 나오기도 한다
내 낡은 모자를 안고 오늘 나는 시장에 갔다
하지만 해 저물도록 아무도 사는 이 없어
나는 구름과 놀다가 기차를 타고 훌쩍
머나먼 사막으로 떠났다
누군지 모르는 그대여
내 낡은 모자를 사다오
달리는 화물 열차 끝에 매달려 오늘도 나는
내 모자를 쓸 그대를 찾아 헤맨다
―시집『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 (2006, 문학과지성사)
당신은 모자를 팔아본 적이 있나요. 팔아본 적은 없어도 사 본 적은 있을 것입니다. 모자는 모자일 뿐인데 마술이 아닌 다음 모자 속에서 산토끼가 있을 리 없고 파도소리 바람 소리가 들릴 리 없겠지요. 그런데 그 모자 속에 여러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구름, 파도, 바람, 심지어 기적소리를 울리며 화물열차가 달립니다.
화자는 내 낡은 모자를 누군가에게 팔고 싶어 합니다. 당신은 투자 가치가 불완전하고 미래를 모르는 저 낡은 모자를 사고 싶은 생각이 드시나요. 만약 당신이 저 모자를 갖고 싶다거나 곁에 두고 싶다면 당신은 기업가의 싹은 노랗고 유토피아를 들먹이는 사람일 것입니다.
모자의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이상의 상징. 화자는 자신의 모자를 주고 싶어 하지만 아무에게나 주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자를 살뜰히 보살피며 아끼고 사랑하고 잘 갈무리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아무 모자를 쓰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게 꼭 맞는 나만의 모자를 찾아서 저자거리에서 산중에서 꿈속에서 모자를 찾아 헤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에게 어울리는 모자를 쓰고 있나요. 아니면 아직도 찾고 있는 중인가요. 지금까지 못 찾았다면 당신의 모자는 어디에 있을까요.
<모자 시 모음>
http://blog.daum.net/threehornmountain/13746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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