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악보 / 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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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81회 작성일 18-06-12 04:50본문
바다의 악보 / 강인한
- 벤 구센스의 '바다의 아름다운 노래'에 부쳐
바다가 저만치 물러나자
썰물이 밷어놓은 모래밭에 악보가 드러났다
당신의 입술은 동그랗게 모음을 발음하다가
그만 악보 받침대에 갇혀 나를 바라본다
오, 달콤한 붉은 입술은 적포도주를 담은 글라스
아니 두 장의 장미 꽃잎 같다
하지만 오래전 당신은 이 해변을 떠났다
저만치 과거로부터 떠밀려온 트렁크에는
자물쇠가 채워졌고 두근거리며
들키기 싶은 당신의 사랑이 들어 있을 것이다
두려운 비밀을 향해 걸어가는 내 발자국마다
한 장 두 장 물 젖은 악보가 따라오고
입벌린 소라고둥이 트렁크 위에 앉아 소리친다
이제 곧 태풍이 불어온다고 내 마음 속
잠자는 태풍이
검은 수평선을 끌어낼 것이라고
그리운 당신의 기억을
이 해변에 떠도는 세이렌의 노래로 남겨두고서
나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다
돌아갈 곳이 없다
* 벤 구센스 :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 강인한: 1944년 전북 정읍 출생,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입술> <강변북로>외 다수, 카페 <푸른시의 방 > 운영자
# 감상
화자는 벨기에의 초현실주의자 벤 구센스가 찍은 바닷가 사진을 보고 시를 구성한듯,
텍스트 속에서도 현실을 초월한 꿈과 무의식의 세계, 초현실적 상상력이 엿보인다
붉은 입술과 적포도주글라스가 장미꽃잎 같다는 관능적 이미지와 그 입술의 당신이
이 해변을 떠났다는 허망한 이미지에서
과거로 부터 떠밀려온 자물쇠 채워진 트렁크 위에서 입벌린 소라고둥이 소리친다
이제 곧 태풍이 불어온다고 내 마음 속 잠자는 태풍이
썰물이 빠져나간 후, 썰렁하고 을시년스러운 바닷가 풍경의 쓸쓸한 이미지에서
상반신은 여자 하반신은 새 모양인 신화 속 요정 세이렌이 부르는 죽음의 노랫소리에
돌아갈 곳이 없다는 방황하는 이미지에서 초현실주의를 느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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