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체조 / 심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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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43회 작성일 18-08-07 00:48본문
남겨진 체조 / 심지아
초여름과 눈송이로 만든 시소를 탔다
시소에 앉아 놀이터의 입술이 되어 주려고
빛이 우리를 앞질러서 무릎이 가난하다
빛이 우리를 앞질러서 다시 문장이 녹는다
죽음이 숨소리를 나누어 준다
부화하려는 새가 끝을 깨트리고 있다
鵲巢感想文
근래 민음의 시 3권을 샀다. 이 중 가장 괜찮은 시집이라 감상에 붙인다. 어떤 문장을 읽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아직 독해력이 정점에 이르지 못하니 다른 두 권을 바르게 보는 시안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詩人의 詩集 ‘로라와 로라’에서 한 편의 시를 골랐다. 물론 이 시 말고도 시집 전체가 꽤 괜찮다. ‘로라와 로라’라는 시집 제목도 마치 쌍둥이 같은 느낌이지만, 내면과 외면, 안과 밖, 거울을 보며 대치한 자아다.
詩人은 초여름과 눈송이로 시소를 탔다. 말놀이의 시작이다. 때는 초여름이자 눈송이, 그러니까 시의 객체로 볼거리의 모든 것이다. 말하자면, 투쟁이다. 시소를 타고 있으니까! 눈송이라는 시어가 참 좋다. 눈+송이로 볼 수도 있으며 굵고 실한 한 덩이 채 떨어지는 눈송이다.
시소에 앉은 주체는 시를 읽고 있다. 물론 사색과 습작과 여러 활동을 내포한다. 놀이터의 입술은 초여름과 눈송이를 역으로 비쳐오는 문구다. 여기서 이 입술을 19금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두껍지는 않을 거라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매개체가 등장한다. 빛이다. 이 빛은 순간 깨치기도 하지만, 순간 스치는 어떤 암흑과 어둠을 더 명료하게 드러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까 무릎이 가난하다. 이는 어떤 기대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한 처절한 고통을 감내하는 행위적 묘사다. 빛이 또 지나간다. 반복적인 빛과 더 명료한 어둠은 오히려 명확한 사실로 드러난 순간이다.
깨달음(빛)과 문장, 문장은 다시 죽음을 통하여 죽은 나뭇가지처럼 불변이지만, 여러 숨소리를 조장한다. 이러한 혼돈 가운데 진솔한 문장을 구할 수 있으니, 혼돈을 깨뜨리는 자 새처럼 자유를 얻을 수 있겠다. 여기서 문장이 아니라도 좋다.
論語에 君子不器라는 말이 있다. 君子는 기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물처럼 특정한 목적에 쓰임으로 군자는 그 역할을 다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 편의 詩는 군자처럼 언어의 제왕으로 군림한다. 시는 한 가지 뜻으로 그 모든 것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벌우신지라는 詩句도 있듯 어쩌면 시는 읽는 자의 몫이라 마치 버드나무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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