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 / 김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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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58회 작성일 18-10-05 03:46본문
파문 / 김예하
앞마당을 지켜온 호두나무가 베어졌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무는
호두알 속에 물결을 새기고 있었다
해마다 잘익힌 가을을 한 말씩 건네주더니
한 마디 말도 없이 톱날이 다녀가고
덩그러니 남은
밑둥의 표정이 어리둥절하다
뿌리를 거세당한 몸통
마지막 비명마저 호두알에 감춘
나무의 나이테는 결렬한 파문이다
일렁이는 결을 따라
밤새 흔들리는 나뭇잎
스르르 잠들던 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겹겹 물결을 놓아
뿌리부터 차오른 옹이를 헤아리다 보면
어느 그늘이든 가벼운건 없다
무늬로 남은 둥근 결을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의 기록장
왕성한 시절이 잘려나가고
피 흘린 제 몸에 못이 박힐 때
그는 알고 있었을까
누군가의 마지막 안식이 되리라는 것을
* 김예하 : 2018년 상반기 <시현실> 신인상 수상
< 감 상 >
화자는 앞마당에서 정든 호두나무를 베어낸 매몰찬 처사를
온화한 화법으로 이어가는데, 그러면서 생활 속의 사소한
일상을 낯설기 기법로 사건화 하고있다
베어낸 자리의 나이테에서 지칠줄 모르는 호두나무의 왕성한
결기를 보게되고, 그 결기는 파문을 일으키며 화자의 혼 속을
파고든다
즉, 은연중에 호두나무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파문 일듯 왕성한
결기가 화자의 생애와 결기로 비유되고 있다
때로는 매몰차게, 때로는 낭만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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