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爲무위 / 李彦迪이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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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05회 작성일 18-11-18 11:19본문
無爲무위 / 李彦迪이언적
萬物變遷無定態 一身閒適自隨時
年來漸省經營力 長對靑山不賦詩
만물변천무정태 일신한적자수시
년래점성경영력 장대청산불부시
만물은 변하고 바뀌는데 정한 모양은 없네
내 한 몸 한적하여 스스로 시간 따라 간다만,
해는 오고 경영하는 힘은 점차 살피니
푸른 산을 대하고도 줄곧 시를 짓지 않네
이언적은 1491년 성종 22년에 生하여 1553년 명종 8년에 졸하였다.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다. 경주 사람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정립에 선구적인 인물로서 성리학의 방향과 성격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주희(朱熹)의 주리론적主理論的 입장을 정통으로 확립하여 이황(李滉)에게 전해주었다. 1547년(명종 2)윤원형 일당이 조작한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강계로 유배되었다가, 그 곳에서 많은 저술을 남긴 후 세상을 떠났다.
시제 無爲는 人爲와 有爲의 반대다. 무리해서 무엇을 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대로 사는 자연의 순응을 말한다. 한마디로 천리를 거스르지 않는 삶이다.
선비 이언적은 만 62년을 살았다. 이 시를 언제 지었는지는 나는 알 수 없다만, 一身閒適自隨時 시구와 年來漸省經營力 시구를 보면 나이 들어 유유자적하는 마음과 또 무엇을 하려고 해도 선뜻 나설 수 없음을 볼 수 있다. 옛사람이나 지금 사는 사람이나 별 차이 없음을 잠시 느꼈다.
공자께서 하신 말씀이 불혹과 지천명이라 했다.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 어느 것에도 쉽게 현혹되지 않는 나이며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다. 사람을 가려가며 만나야 하며 내 일을 소중히 여기고 검소하게 살아야 제 명을 다할 수 있겠다.
물이 차오르는 거리를 걷는다 저녁은 암청색 방수포를 씌운 트럭처럼 나를 앞지른다 어두컴컴하고 좁은 골목 이 길이 맞나 저지대의 내 방은 만조가 아니어도 미온의 물에 잠겨 버리고 새로이 나는 집을 찾아 헤매곤 한다
외투는 문턱에서 벗을 것 가슴에 금을 그으며 오늘의 수위를 확인한다 사람은 누수한다 동시에 모두가 눈을 깜빡였다면 내 침대는 눈물에 떠내려가지 욕조 안에 넣어둔 책들은 젖지 않았다
물에 뜬 책상 앞에서 물에 뜬 의자에 앉아 나는 장화에 담긴 물을 마시듯이 글자를 적는다 묶어놓은 편지 다발은 눈물로 가득 찬 얼굴 진정하지 않는 너의 고양이가 젖은 책의 젖가슴 위에서 떤다
-젖은 책, 김이듬 詩 全文-
이 詩를 읽으면 마치 이상의 시 오감도가 생각나게 한다. 그냥 내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이상야릇하게 닿는 감은 아주 좋다. 시인은 自我를 젖은 책에 비유했다. 젖은 책과 세계관이다. 세계관은 물이다. 시인은 세계와 자아의 거리를 저녁에 좁혀 본다. 자아의 정신적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마치 암청색 방수포를 씌운 트럭처럼 무겁고 두려우며 드러내기 어려운 작업 일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보고 때로는 다른 문구를 찾듯 사고의 깊이를 정립한다.
외투와 문턱은 현실과 상상의 어느 경계점이다. 차안과 피안의 거리다. 가슴에 북 받혀 오르는 감정 수위를 조절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현실은 또 다시 암담할 뿐이다. 눈물만 난다. 세계는 역시 트럭처럼 무겁기만 하다. 벌써 온몸이 젖듯 부풀어 오르는 책처럼 마음도 가눌 수 없다.
물에 젖은 책과 물에 뜬 책상과 물에 뜬 의자는 극을 이루고 있다. 책이 쉽게 젖을 수 있는 몸이라면 책상과 의자는 굳은 세계다. 변화할 수 없거나 자아의 의지가 미치지 못하는 고정불변의 관념 같은 것이다. 목이 긴 신발처럼(장화) 목이 긴 字로 나의 마음을 위안한다. 그것은 내 고양이가 내 무릎에 앉아 나를 보듯 서로의 위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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