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 / 송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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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60회 작성일 18-11-23 13:21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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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 문을 잠글 때 잠시 머뭇거린다 양치식물을 가두어버린 후회가 있다 신발 속 짓무른 애벌레도 꿈틀거렸다 불을 끄고 지하실에 잠시 서서 메이리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짐작한다 지하실의 지하실을 상상하는 것처럼 예의 고동과 맥박의 감정이 모태이다 원경도 근경도 사라지는 어둠이다 어둠과 지하실은 서로를 빌린다 서로의 활주로가 생기는 것이다 별자리가 깜깜한 세상을 필요로 했다면, 지하실 천장에 푸른곰팡이가 번진 항로 또한 간절했지만 아직 내 지하실의 별은 돋아난 적이 없다 빛이거나 소리의 틈새가 있기 때문이다 경첩 소리가 요란하지만 감정이 새어 나오는 지하실이다 계단까지 따라와서 손가락질하는 어둠이다
-지하실, 송재학 詩 全文-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마음의 지하실을 두었던가? 햇볕도 드나들지 않는 그 지하실에서 또 얼마나 푸른곰팡이처럼 희망을 품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하루의 고동과 맥박을 움켜쥐며 목을 매었던가!
그러나 이러한 희망을 품고 희망의 메시지를 외며 주문하는 일은 분명 어둠의 손가락질을 벗어나야 한다. 우리의 글쓰기는 어쩌면 가시투성이와 같은 정리되지 않은 하나의 똥 막대기다. 이것을 낫으로 곱게 정리하고 다듬어서 제대로 된 지팡이가 될 때 양치식물로 우뚝 설 수 있으며 이것은 만인의 활주로이자 틈을 제공하는 별자리가 되며 끝내 항로를 제시하는 것과 같게 된다.
우리말은 한자가 근 7, 80%에 달한다. 한자에서 분간하는 동음이의어는 꽤 많다. 가령 위 詩 문장에서도 양치식물만 하나 들여다보아도 참 재밌는 글쓰기를 이룰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양치식물은 꽃이 피지 않고 홀씨로 번식하는 식물계다. 한자로 표기하면 羊齒植物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양의 이빨 같은 식물이다. 詩에서는 시제가 지하실과 엮어 양치식물과 어떤 연관성을 맺고 있다. 그 공통점은 어둠이다. 주로 습하고 그늘이 심한 곳에서 군락지를 이루는 양치식물과 마음을 중첩시켰다.
별자리는 하나의 이상이다. 문자가 없던 고대 사람들은 이 별자리만 보고도 이동을 감행했다. 현대에 사는 사람보다도 길눈이 밝았다. 詩 문장에서 별자리는 이미 발표한 별들의 지침일 게다. 이것은 어느 한 세계를 대변하는 바늘이며 시계며 계량기 같은 것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가만, 우리는 아직 지하실에 있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담에는 틈 벽에는 귀가 있다(牆有逢 壁有耳)고 했다. 지하실에 꼭꼭 숨겨둔 미완의 완성작이여 양치식물처럼 다시 한번 곱절 씹어야겠다. 어둠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으려거든,
여기서 좀 아쉬운 것이 있다면 詩 문장에서 ‘어둠과 지하실은 서로를 빌린다’는 표현이다. 나는 이것이 오타가 아닌가 싶다. 빌리다는 표현보다는 발리다로 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어둠과 지하실은 속성屬性은 같지만 성질性質이 좀 다른 것들로 별자리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빌리는 것은 어떤 물체를 취하는 느낌마저 드니까 발리다(바르다)는 것은 바르게 나아가며 서로의 모순에서 어떤 알맹이를 건져내는 일련의 과정을 묘사하는 적절한 詩語라 나는 보았다.
詩人께 송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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