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걱 / 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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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34회 작성일 18-11-27 22:01본문
題冲庵詩卷 제충암시권 / 金麟厚 김인후
來從何處來 去向何處去
去來無定蹤 悠悠白年計
래종하처래 거향하처거
거래무정종 유유백년계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가고 오는 것이 정한 곳이 없거늘
백년 살 계획으로 뭘 그리 걱정하는가
시인 박종만의 시가 스쳐지나간다.
終詩 / 박종만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사라지는 우주宇宙는 사각지대死角地帶도 없으며 후방을 보는 거울도 없다. 그냥 지나간 것이다. 다 부질없는 일이다. 원래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가 인간이었다가 다시 돌아가는 고향 같은 집, 無로 돌아간다. 그러나 인간은 오늘도 그 잘난 명예를 위해 관계를 맺고 뜻을 세우고 나아간다.
한 달이 어찌 가는지도 모르게 한 달 또 지나갔다. 그 더웠던 여름날도 지나갔다. 내 나이를 떠올리면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싶을 정도로 가끔 놀라기도 한다. 이미 산 것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적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 것인가! 물 쓰듯 지나갔으니까! 그래도 순간 뿌듯한 때도 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내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 가장 행복했으며 여건이 좋지 않아도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했다. 남들이 인정하는 詩는 아니지만, 그래도 책이라고 한 권씩 낼 때가 행복했고 이 책도 누구는 또 읽고 과찬의 말씀까지 주시는 先生이 있었으니 여타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 그냥 내가 좋아 했으면 됐다.
詩人 박종만의 終詩처럼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갈 날도 가만 생각하면 몇 년 채 남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그 시기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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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걱은
생을 마친 나무의 혀다
나무라면, 나도
주걱으로 마무리되고 싶다
나를 패서 나로 지은
그 뼈저린 밥솥에 온몸을 묻고
눈물 흘려보는 것, 참회도
필생의 바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뜨건 밥풀에 혀가 데어서
하얗게 살갗이 벗겨진 밥주걱으로
늘씬 얻어맞고 싶은 새벽,
지상 최고의 선자(善者)에다
세 치 혀를 댄다, 참회도
밥처럼 식어 딱딱해지거나
쉬어버리기도 하는 것임을,
순백의 나무 한 그루가
내 혓바닥 위에
잔뿌리를 들이민다
-주걱, 이정록 詩 全文-
이 詩는 윤회사상輪廻思想을 깃들었다. 내가 나무라면 주걱이 되고 싶다. 흰 밥을 오지기 펄 수 있는 주걱 말이다. 어떤 희생을 말한다. 시인들이 밥 같은 시를 온전히 쓸 수 있는 종이가 되고 싶다. 살갗이 벗겨져도 좋다. 오로지 선자의 세 치 혀에 경전 같은 삶의 위안과 안정을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참회도 밥처럼 식으면 딱딱하며 쉬어버리고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한때 유명 시집도 그 시대에 인정과 명예는 누렸을지는 모르나 세월은 눈처럼 쌓여 소복이 덮고 말았다. 그래도 미치도록 쓰고 싶은 이 순백의 나무 한 그루 같은 종이는 오늘도 버젓이 맨몸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내 혓바닥에 잔뿌리를 슬며시 들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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