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얀 / 임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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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34회 작성일 18-12-25 01:37본문
하 얀 / 임솔아
불을 끄니
불을 켜고 있을 때의 내 생각을 누군가
훤히 읽기 시작한다
낮에 만난 이야기들은 햇빛에 닿아
타버렸다
베란다의 토끼는
귀가 커다랬고 털이 하앴고 나날이
뚱뚱해졌다
내가 없는 한낮에
벽지를 뜯고 책상을 갉고 내 운동화를 핥다가 어느날
죽어버렸다
나는 입술을 뜯어 먹다가 내 입술에서 배어나오는 피를
빨아 먹었는데 왜 그랬습니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살인자는
대답한다 나는 다른 죽음을 향해
채널을 바꾼다
불 꺼진 방에
나는 앉아 있다 아픈 사람처럼 누군가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
토끼를 씻겨주던 날 토끼는 죽었다 나는 두 손으로
누군가의 까만 그림자를 씻겨준다
기억나지 않던 것들이 기억나기 시작한다고
살인자가 대답한다
불을 켜니
불을 끄고 있었을 때 누군가 하던 생각을 나는
이어서 하게 되고
우리 건물이
흰 안개에 싸여 있단 걸 나가서야
알게 되었다
* 임솔아 : 1987년 대전 출생, 2013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옆구리를 긁다>
로 시 당선, 제4회 대학소설상 <최선의 삶> 당선
< 감 상 >
詩의 제목(하얀)에서 소설가 한강 님의 小說(흰,The elegy of whiteness)이
떠오른다
흰색이 주는 느낌을 그러모아 엮은 소설로써 특유한 情感을 받았는데 화자의
詩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 듯 하다
- 만일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면,
- 지금 나는 이 삶을 살고 있지 않아야 한다
- 지금 내가 살아 있다면 당신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 어둠과 빛 사이에서만,
- 그 파르스름한 틈에서만 우리는 가까스로 얼굴을 마주본다
- 한강 님의 小說 (흰)에서
- 불을 켜니
- 불을 끄고 있었을 때 누군가가 하던 생각을 나는
- 이어서 하게 되고
- 화자의 詩에서
한 점 티 없는 헤맑음, 시리도록 밝고 투명함, 心象 깊이 깔려있는 서러움등은
흰(하얀)색이 주는 情感으로써 순정과 순박의 源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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