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지성 폭설 / 정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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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48회 작성일 19-01-06 08:35본문
국지성 폭설 / 정다인
휘갈겨 쓴 이 눈발은 누구의 서체입니까 웃자란 불빛과 건물들이 엉켜 치렁거립니다 나는 이미 멀리 와 버렸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보아버린 새의 동공이 사그락사그락 내려 쌓입니다 내 뒤로 늙은 나무의 가지가 툭툭 부러집니다
지지직거리는 실금들이 귓속으로 휘몰아칩니다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나는 누구의 이명입니까
폭설 속으로 걸어가 스스로를 밀렵하는 겨울 산짐승의 허기가 나를 끌고갑니다 비척거리며 주저앉은 절망이 나의
문맹입니다 아무것도 나를 빠져 나갈 수 없는 어둠입니다
쏟아지는 것들의 영혼에 몸을 묻습니다 더운 마음처럼 끓다가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나의 껍질은 쓸쓸해서 구겨버린 폐지입니다 그 위에 하얗게 열린 새의 눈이 쌓이고 또 녹습니다 천천히 흘러내리는
공중입니다 서서히 물이 차는 잠입니다
나는 너무 멀리 와 버렸습니다 나는 또 너무 멀리 와 버렸습니다
* 정다인 : 경남 진주 출생, 2015년 격월간 <시사사>로 등단
< 감 상 >
폭설이 내리면 온 천지가 하얗게만 보입니다
눈은 온 세상 더러운 모든것 덮어주듯 사람의 마음도 하얗게 덮어줍니다
순백의 차가운 눈에서 따뜻한 낭만도 불러 일으켜 마음은 자꾸 헤맵니다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이 자신을 잃고 산짐승처럼 헤맵니다
화자도 폭설이 품고 있는 상징성으로 심상을 많이도 풀어내고 있습니다
옛 시인의 詩 한 편 소개합니다
설 야 / 노자영 (1898년 - 1940년)
어느 그리운 이를 찾아오는 고운 발자국이기에
이다지도 사뿐사뿐 조심스러운고?
長窓을 새어새어 툇돌 위에 불빛이 희미한데
메밀꽃 피는 듯 흰 눈이 말없이 내려
호젓한 가슴 먼 옛날이 그립구나
뜰 앞에 두 활개 느리고 섰노라면
애무하는 듯 내 머리에 송이송이 쌓이는 흰 눈
아, 이 마음 흰 눈 위에 가닥가닥
옛날의 조각을 다시 맞추어
그리운 그날을 고이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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