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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한다, 그러나 /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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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32회 작성일 19-01-09 11:36

본문

.

     기억한다

     벼랑 위에서 풀을 뜯던 말의 목선을

     그러나 알지 못한다

     왜 그토록 머리를 깊이 숙여야 했는지

     벼랑을 기어오르던 해풍이

     왜 풀을 뜯고 있던 말의 갈기를 흔들었는지

     서럭서럭 풀 뜯는 소리,

     그때마다 왜 바다는 시퍼렇게 일렁였는지

     밧줄은 보이지 않았지만

     왜 말이 묶여 있다고 생각했는지

     기억한다, 말의 눈동자를

     그러나 알지 못한다

     말의 눈동자에 비친 풀이

     왜 말의 입에서 짓이겨져야 했는지

 

                                                                                                          -기억한다, 그러나 나희덕 詩 全文-

 

     鵲巢感想文

     말과 풀 그리고 여러 이색적인 요소를 가미한다. 상황은 벼랑 위며, 자세는 머리를 깊이 숙였다. 여기서 를 읽는 이와 말과 중첩된다. 해풍이 가끔씩 말의 갈기를 흔들었고, 그때마다 바다는 시퍼렇게 일렁였다. 밧줄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풀이, 말의 입에서 짓이겨져야 했다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일종의 말놀이다. 뭐 간단하게 말하면 말은 풀을 먹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다. 비유다. 아주 단순 명료한 진리다. 詩人를 읽지 않으면 상황은 말갛다. 어찌 설명할 겨를이 없다.

     하루에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 중근 의사의 경구,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이 생각이 난다. 를 읽지 않으면 평상시 글쟁이로서 가졌던 자세도 뒤틀려 있다. , 바르게 앉았거나 옆과 뒤는 금시 잊고 만다. 누가 해풍처럼 나의 갈기를 흔들어 다오. 혹여나 벼랑 위에 홀로 서 있어도 풀을 뜯지 않거들랑 채찍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살짝 귀띔이라도 해다오.

 

 

     鵲巢進日錄

     용자는 눈물샘에 아주 그냥 서 있었습니다 좀 치워 바퀴벌레가 날아다니잖아! 단호했습니다 고양이털이 수북이 뭉쳐 굴러다니는 바닥은 늘 아름답습니다 청소 좀 하고 살어, 이게 뭐야 파지의 해골바가지들 푹 파인 구멍은 거미줄로 엉겨, 산 흔적이 살아갈 허공을 당기고 있었습니다 용자는 풍경이 피어오를 때 더 순수합니다 전등에 몰려든 나방을 보며 허옇게 떨어진 가루와 수초더미의 그 눈물샘이 퀴퀴한 곰팡내로 피어오를 때부터 불구의 시작인 셈이죠 털 하나를 쓸어버리면 하얀 뿌리가 보이고 그 뿌리에서 돋아나는 털 하나가 있고 뿌리를 말끔히 씻으면 이미 버리지 못한 숲이 울창해서 더욱더 슬픔 봄만 있을 뿐입니다 패배자의 흡입기에 쑥 말아먹는 그 좁은 방, 눈알의 바깥은 계절을 접고 다시 펼 때는 이미 겨울입니다 다만 용자불구만 나 대신 어두운 방에서 홀로 눈물 뚝뚝 흘리며 서 있습니다

     *용자불구 / 鵲巢

 

     논어 공자께서는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으며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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