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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 아이스 / 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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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82회 작성일 19-01-2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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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 아이스

- 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목숨으로서
이렇게 외로울 수 없는 법이다 *


김경주



문득 어머니의 필체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고향과 나의 시간이
위독함을 12월의 창문으로부터 느낀다
낭만은 그런 것이다
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

골목 끝 수퍼마켓 냉장고에 고개를 넣고
냉동식품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만져버린 드라이아이스 한 조각,
결빙의 시간들이 타 붙는다
저렇게 차게 살다가 뜨거운 먼지로 사라지는
삶이라는 것이 끝내 부정해버리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손끝에 닿은 그 짧은 순간에
내 적막한 열망보다도 순도 높은 저 시간이
내 몸에 뿌리내렸던 시간들을 살아버렸기 때문일까
온몸의 열을 다 빼앗긴 것처럼 진저리친다
내안의 야경(夜景)을 다 보여줘버린 듯
수은의 눈빛으로 골목에서 나는 잠시 빛난다
나는 내가 살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순교할 것이다
달 사이로 진흙 같은 바람이 지나가고
천천히 오늘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 공기들이
동상을 입은 채 집집마다 흘러 들어가고 있다
귀신처럼.



【감상】

보들레르가 추(醜)로 저울을 삼았다면 랭보는 광기로 시를 절명 시켰다. 말라르메는 무봉의 세공술로 시의 등뼈와 구조를 만들었다. 이들이, 현대시의 종(種)을 뿌리고 시를 인간에게서 떼어냈다.

김경주는 기미와 기척의 시인이지만, 그 속에는 청년 랭보가 살아 있고 말라르메가 깃들어 있다. 또한 보들레르의 악의 꽃도 피어 있다. 이 양인(洋人)들이 시의 몸통을 비틀어 시의 뼈와 살을 재구성했다면, 김경주는 그들을 나무로 빚은 술로 다 마시고 시의 궤도를 신의 입가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시차를 달리했다. 예전이 사변적인 김수영의 시대였다면, 현재는 김경주의 시대이다. 앞으로 최소 백 년은 그렇다.

김경주는 백석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우리말의 유려함과 깊이를 한껏 확장한다. 그것으로, 자신의 위도(危道)를 세우고 그만의 자장(磁場)으로 지구를 몇 바퀴 감아 낯설고 새로운 궤도를 말들었다. '바다 위의 절'에서 '바람의 불공이 시작되'도록 했다.

김경주의 시에는 늘 죽음과 저녁과 어둠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 '차디참'과 희미한 '열'에서 순도 높은 '수은의 눈빛'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는 기이한 자력(磁力)으로 죽은 것과 산 것 사이에 떠도는 언어를 슬하(膝下)에 앉힌다. 그는 그가 '살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순교할 것이'므로 그는 귀신에 가깝다.

나는 침 많은 말들이 많아 나른하고 피곤해지면 김경주를 읽는다. 그러면 '저렇게 차게 살다가 뜨거운 먼지로 사라지는' 한 조각 결빙의 시간들이 차갑게 화상을 입히고 정수리로 찬물을 흘리는 느낌을 체험하게 된다. 그의 시를 읽는 차가운 화상은 늘 무겁고 또한 눈호강이다.

'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 그 불편 때문에 시차를 달리한 진동과 자장과 아우라에 오래 갇힐 것이다.
그는 시의 열도를 쪼개며 흘러오는 판게아 이동설의 진앙(震央)이다.

- 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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