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으로 총의 방아쇠를 당겨 혀를 쏘았다 쏟아지는 것은 말이 아니라, 피였다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안에서 자라는 말을 베어 물었다 그렇더라도, 생각은 말로 했다
저것은 나무 저것은 슬픔 저것은 장미 저것은 이별 저것은 난초
끝내는 말로부터 달아날 수 없었다 눈을 감아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을 가지고 실컷 떠들고 놀 것을 그랬다
꽃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향을 피울 것을 그랬다
온종일 말 밖으로 한 걸음도 나서지 못했다
아무도 몰래, 불어가는 바람 속에 말을 섞을 것을 그랬다
【감상】
첫울음이 그렇듯 말은 호흡이다. 그것은 몸에서 불이 난 것(발화)이며 생각의 누수이다. 말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말문이 트이고 시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내 그 말문에 갇히고 말의 지옥에서 수형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서 발언은 언제나 무겁다. 말은 총을 겨누는 것이다.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말)이 날아간다. 그러므로 그 말은 귀에 닿는 것이 아니라, 심장에 닿는다. 그래서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 말을 제어하려 하지만, 생각을 박차고 말이 앞설 때가 있다. 혀는 자꾸 굴려지고 총알을 구워낸다. 이빨이 혀를 누르는 자제도 결국은 발설을 이기지 못한다. 혀는 생각을 굴리고 버무려서 생각의 근사치를 총알로 만든다. '저것'이라는 막연한 대상은 언중들의 약속일 뿐이다. 관념이든 실체든 '저것'으로 뭉뚱그려진다. 언어는 외피일 뿐 실체는 아니다. 헛말을 약속이라 믿는 것이 사물에 대한 예의이다. 그렇게 이름을 불러줄 뿐이다. "끝내는 말로부터 달아날 수 없"으므로 차라리 '실컷 떠들고 놀 것"이 당연해진다. 어쩔 수 없는 호모 로쿠엔스(Homo loquens)일 것이므로 언어 사냥터에서 총을 쏘고 공격하고 방어하고 다시 휴전하고 그리하여 유희적 인간, 즉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언어는 지적 유희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묽은 총알이 심장에 닿으면 다시 빠르게 피를 돌리기도 하고 박동을 조절하기도 한다. 시는 말을 수단으로 하지만 말에 갇히고 또 말에서 놓아주고자 한다. 말을 섞으면 자아가 출옥하거나 또 다른 감옥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시인은 언어의 감옥에서 부단히 탈출을 시도하는 빠삐용들이다. 사람이 죽을 때 우선은 말문(호흡)이 닫힌다. 그러나 가장 늦게 죽는 귀는 소리를 기울인다. 말의 최후는 듣는 것, 혹은 읽는 것이다. "아무도 몰래" 하는 혼잣말, 그 중얼거림이 시일지 모른다. 바람이나 엿듣고 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