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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 윤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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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28회 작성일 19-01-2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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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윤제림


  아파트 화단 앞 벤치에 동네 할머니 서넛이 모여앉아 유모차에 실려 나온 갓난아기 하나를 어르고 있습니다. 백일이나 됐을까요, 천둥벌거숭이 하나를 빙 둘러싸고 얼럴럴 까꿍, 도리도리 짝짜꿍 난리가 났습니다. 배냇짓을 하는지 사람을 알아본다며 박수를 치고, 옹알이를 하는지 사람의 소리를 낸다며 아이들처럼 좋아합니다. 조금 전까지 한창이던 동남아 관광 얘기는 쑥 들어갔습니다. 할머니들은 지금 저 어린 나그네가 떠나온 나라에 대해 묻고 싶은 게 많은 모양입니다. 떠나야 할 길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은 모양입니다. 거기도 봄인지, 눈도 녹고 길도 좋은지. 거기까지 늙은이 걸음으로는 얼마나 걸리는지.


【감상】

  "인간들은 인간과 같은 외모의 신을 머릿속에 그리고 인간과 신이 사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믿는다. 우주가 얼마나 광대한지를 감안하면, 그리고 그 안의 인간의 삶이 얼마나 하찮고 우연적인 것인지를 생각해본다면,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은 상당히 믿기 어렵다."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Brief Answers to the Big Questions, 스티븐 호킹)에서.

  어조의 기본 형식이 얽혀 복합적인 맥락을 품은 시편들은 거의 항상 반어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어조의 이중화가 반어, 곧 표면적인 전언과 이면적인 전언의 분리를 낳는다.

  본문의 제목처럼 '봄날에'는 신생이 눈부시다. 싹 틔우고 꽃 피고, 결빙이 풀리는 계절이다. 그런 만상의 태동 중에서도, 인간 중심으로 보자면 '갓난아기'가 가장 각별한 존재일 것이다. '천둥벌거숭이'는 비 오고 천둥 치는 날에도 무서움을 모르는 빨간 고추잠자리를 이른다지만, 여기선 강보에 싸인 '순수'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일 테다.

  '배냇짓'이나 '옹알이'만큼 사람의 짓이나 사람의 소리로, 순결할 게 있을까만은 할머니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이유는, 그들과 대칭적 존재라는 데에 있다. '저 어린 나그네가 떠나온 나라'에 대한 궁금증이고, 삶에 대한 실존적 인식이며, 또한 연민의 시선이다.

  이 시는 생멸이 동시에 모여, '떠나온 나라'와 '떠나야 할 길'을 묻고 있다. 생의 시작과 마감 사이는 눈부신 찰나일 뿐인데, 그러니까 '얼럴럴 까꿍, 도리도리 짝짜꿍 난리'를 치다가 '늙은이 걸음으로' 닿는 봄빛 같은 순간의 일일 것이다.

  스티븐 호킹의 말에 의하면, 우주는 먼지 한 톨에서 시작했고 인간은 한 톨 먼지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러니 누구나 시간의 궤도를 흘러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생멸의 간극은 꽃 피고 지는 순간처럼 황홀하고 짧을지 모른다. 시인은 거대한 우주 담론을 피하고 '화단 앞 벤치'에서 삶과 죽음을 조망한다. 애써 메시지를 강조하지 않아도 '어르다'와 어른으로 살다 '떠나야 할 길'에 선 존재들의 '배냇짓'과 '옹알이'를 봄날 아지랑이처럼 보여준다.

  시인의 눈빛이 이토록 그윽하다. 시의 눈매 또한 서늘하고 깊다. 담담하고 유쾌한 스케치가 우주론같이 느껴진다.

 "빅뱅이 일어난 순간, 시간에도 무엇인가 굉장히 경이로운 일이 일어났다. 시간 그 자체가 그 순간 시작된 것이다."
  "빅뱅 이전에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신이 우주를 만들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_ 스티븐 호킹.


                    - 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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