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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지 않는 나무 / 조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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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6회 작성일 19-02-04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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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지 않는 나무

조용미


손상기는 서른아홉에 죽었다
손상기는 자라지 않는 나무였다

자라지 않는 나무는 가지를 안으로 뻗는다
자라지 않는 나무는
오래 고독하다

눈부신 푸른 잎을 가득 달고 있는
겨울나무들은 자라지 않았다
죽지 않았다
자라지 않는 나무는 얼마나 커다란 것이냐
우뚝한 것이냐

명산의 바위처럼 위용 있게 돌출한 가슴뼈*
5척도 못 미치는 키
그가 그린 자화상의 제목은
위대한 자

그가 걸었던 좁은 골목길과
흰 페인트가 칠해진 높은 담을 끼고 오르는
가파른 길들이 내겐 낯설지 았았다

오래된 그 길들을 꺼내어 말리면
북아현동의 골목길들은
그와 나를 한 길에 세워놓는다
실패를 따라가는 실처럼
나는 그 길을 따라나선다

*는 손상기의 글


【감상】

인간의 비정함, 소외되고 찢긴 삶에 대한 구도와 배치, 인간회복을 갈구하는 피맺힌 절규를 조형한 손상기는 천재화가였고 "가지를 안으로 뻗은" 곱추였고 요절했다.
"민중의 현실과 심리를 잘 투영하면서 자기 삶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인간내면의 복합적 갈등과 심리적 묘사에 탁월하다"는 평은 화가의 몫이 아니었다. 그는 지상에서는 자라지 않는 나무를 천상으로 옮겼다.

"자라지 않는 나무"는 화가의 자화상이고 또 시인에 의한 삶의 복원이다. 화가와 시인의 묘사가 동일 선상에 있으며, 그림과 시는 질료를 통해 비유와 상징이 심상에 맺힌다는 점에서 유사한 미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

1연은 사건이고 은유이지만, 2연의 상징으로 이행한다. 3, 4, 5연에서는 화가의 작품과 화가와 풍경을 배치해서 대상에 대한 연민 혹은 구상 그리고 극화된 생을 요약하고 묘사한다. "눈부신 푸른 잎" "죽지 않는다" "커다란 것" "우뚝한 것"은 역설인 동시에 화가에 대한 감정이입이다.

4연의 재배치는 역설적 상황을 돕는다. 말하자면, "명산의 바위" "외봉낙타" "5척에도 못 미치는" 그러나 "위대한 자". 그러므로 이 언술들은 찬양이나 찬미의 태도가 아니라, 자라지 않는 나무에 대한 상징적 표상을 드러낸 것이고, 전면적 은유나 제유적 상황을 위한 의도라고 봐야 한다.

5연에서는 화자와 화가와의 동일한 등고선이 나타난다. 삶의 현장이고 현재란 뜻이겠다. "좁은 골목길" "높은 담" "가파른 길들이 내겐 낯설지 않았다" 화가의 작품이나 시가 숨가쁜 현실 세계에서 발원했고 또 처절하며, 혼불을 불사르다 사라진 존재. 역설적으로 자라지 않는 나무는, 보이지 않게 허공에 뿌리를 두고 지속적으로 자라는 존재인지 모른다. 그것이 예술가의 운명이다.

6연에서 "골목길" "그와 나를 한길에" 그리고 음성상징으로써의 중의적 의미, "실패", 그 길과 실(인연, 연접)로 시인과 화가는 하나로 묶인 세계, "한 길"에 놓이게 된다. 현실의 처절과 괴리가 화가와 시인의 몫이란 함의가 들었다.

이 시는 대상에 대한 미적 추모나 추앙이 아니라, 소외와 절망, 구원과 꿈, 예술과 예술가 정신, 그리고 화가가 살았던 현장에 대한 스케치다. 만개하기도 전에 꺾인 꽃숭어리에 관한 얘기이다. 불편한 몸을 끌고 이 세상을 누비질하다 정신의 예각으로 세상의 모서리를 깎고 미와 색채를 구현한 나무와 숲에 관한 얘기이다.

                   °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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