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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하구에 와서 / 허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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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21회 작성일 19-02-1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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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하구에 와서

  허영숙
 
 
하류에 당도하였으니 오백 리 물길
굽이굽이 둘러본 날이 어제의 일이 되었습니다
검문도 없이 국경을 넘은 듯
바다로 쉽게 빠져나간 그대는
맹물의 시절을 버리고 간기를 지녔으니
모든 물새의 혓바닥에 비릿하게 휘감기겠지만
명경의 물속을 거슬러 오르는 은어의 몸짓을
다시 담을 수 없습니다
그대가 씻기고 간
강돌의 맨들맨들한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습니다
여기 와서 그대를 놓아주고 이름조차 파랗게 읽어야 하므로
안개처럼 피던 배꽃도
감질나게 닿았던 강섶도
둥글게 몸을 말아
강바닥에 가라앉은 이마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도,
그대가 밀물로도 다시 거슬러 올 수 없는
먼 윗목입니다
 


2006년《시안》으로 등단
2018년 <전북도민일보>소설부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바코드』『뭉클한 구름』등
2016년 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감상>

  지리산둘레길 약 백 리를 혼자 걷다가 평사리에 이르러 멀리 섬진강이 누워있는 게 보였다. 잔설 남은 삼월, 꽃눈 트일 무렵이었다. 그러나 나는 섬세한 눈길이 없었으므로 시를 못 만났다.

  이후 악양에서 구례까지 섬진강을 곁에 두고 다시 걷기도 했다. 그때도 나는 시 한 줄 건져내지 못했다. 눈으로 은빛 모래나 물소리를 담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 한 편으로 섬진강의 인상을 다 복기하는 느낌.

  허영숙 시인의 시적인 태도는 늘 부드럽다. 사람도 그렇다. 늘 일관된 모습, 쉬운 듯하나 깊이 있게 우려내는 시들이 늘 부럽다. 나는 나이를 헛먹었지만 꽉 찬 옥수수처럼 잘 여문 시들을 볼 때마다 존경심이 생긴다. 나의 난폭한 서정이 수그러지기도 한다.

  시 여울이 맑은 한 편, 곧 꽃불 틔울 섬진강 하류 어느 물목을 걷고 싶어진다.

                              °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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