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령 난 피아노 / 송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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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53회 작성일 19-02-26 02:58본문
말령 난 피아노 / 송찬호
망령 난 피아노였다
말 등 위에
지붕 꼭대기에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음계가 맞지 않아
건반을 짚으면
아무소리나 질러댔다
모든 조율을 거부했다
퉁퉁 부은 고딕식 다리에
신경통 약을 먹고
빚에 시달리면서도
구석의 어둠과 먼지를 거느린
모서리 왕으로 거들먹거렸다
< 옛날 어떤 사건이 피아노의
운명을 망친 게 사실이다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의 음계를 밟으며
들꽃을 꺾어든 어린 신이
정말 피아노 옆을 지나갔을까>
바람이 종일 밀을 빻고
국경에 나갔던 해바라기 들도
총을 내려 놓고 쉬는 저녁 무렵
그 망령 난 피아노는 눈을 감았다
말 등 위에
지붕 꼭대기에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음악의 장례가 으례 그렇듯,
창으로 피아노를 찔러 떨어뜨렸다
* 송찬호 :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1987년 < 우리 시대의 문학 >
으로 등단, 시집 <분홍 나막신> 외 다수
< 감 상 >
망령 난 피아노는,
목소리 고웠던 어느 늙은 가수의 망령 난 모습으로도 짐작이 된다
망령이 들었으니 천방지축( 말 등 위에, 지붕 꼭대기에)아무 곳에서
노래 부르며 소리도 지르며 나대므로 보호자의 보호조치가 불가능
한 상태(모든 조율을 거부 했다)인듯도 한데, 그러나
서사가 후반부로 갈수록 시인 만이 경험했던 특별한 신비의 세계가
그려지고 있으므로
독자로서는 캄캄한 어둠 속에 도깨비라도 만난듯 흥미롭게 툭툭 불
거져 나오는 신비한 이미지의 출현에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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