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퍼/ 신정민
페이지 정보
작성자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11회 작성일 19-04-12 16:28본문
지퍼
신정민
그의 턱 밑에 3센티미터 흉터가 있다
행운목 화분 모서리가 만들어준 그것은 항상 닫혀있다
넘어진 적 있다, 는 상징에서
그는 모든 것을 꺼낸다
하루 동안 처리해야 할 서류뭉치
주말에 다녀오기로 한 아이와의 동물원 약속
기린과 코끼리도 그곳에서 나온다
미처 다 꺼내지 못한 아내의 생일선물도
어지러운 책상의 물건들도
어느 날 갑자기 깨끗해진 그의 방은
그가 지저분한 모든 것들을 그곳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옆자리 동료가 자신을 헐뜯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에도
그가 꾹, 참을 수 있었던 것
불같은 마음을 집어넣고 스윽,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밑 짧은 바지였다가
짤랑거리는 동전 지갑이었다가
모처럼 장만한 가죽 쟈켓이 되기도 하는 그를 통해
흉이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흉 없는 사람은 좀 수상했다
프로필
신정민: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꽃들이 딸꾹][뱀이 된 피아노]외
시 감상
세상의 모든 분노를 어디 한 곳에 넣고, 스윽 닫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지저분한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넣고 스윽 닫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함석헌 시인의 시 제목처럼 ‘그대 골방을 가졌는가’에 ‘그렇소!’ 답할 수 있다면,
어쩌면 바로 그곳, 이쪽과 저쪽을 스윽 닫을 수 있거나 닫히거나, 그곳이 어딜까?
그 답을 찾는 4월이 되길 간절하게 소망하며...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