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디자인한다 / 고종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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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62회 작성일 19-04-15 01:56본문
소리를 디자인한다 / 고종목
가위손을 쥐었다 펼 때마다
가위에다 몸의 신경 줄을 건다
새파란 가위날이 깊은 어둠을 연다
어둠 속에서 사륵사륵 눈 내리는 소리 열린다
가위날에서 떨어져 나간 신경 줄 한끝
휘파람새 부리에 닿아
아침 안개 저녁 노을을 불러 온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적시는 빗소리에 닿아
풀벌레 울음을 깨우고 바람 소리에 닿아
모래섬 산호섬 돌섬을 먼 바다에 심는다
소리보다 먼저 수평선에 가닿은 마음 한 가닥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에 실려 돌돌 말아 되돌아온다
동트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갈매기 울음 속에서
바다의 자궁 속에서 듣던 물소리
백악기 아기 공룡이 알에서 깨어나던 울음소리
하늘에 걸린 금줄을 흔들어 일곱 빛깔의 소리를 낸다
가위 손이 잡은 흰말채나무 지휘봉으로
아기 공룡의 발자국을 디자인한다
* 고종목 : 강원도 평창 출생, 1996년 시집 <성마령의 바람 둥지>로
시작 활동, 그 밖의 시집 <곤드레 아라리>등 다수
< 감 상 >
- 사륵사륵 어둠 속에서 눈 내리는 소리 만들고,
- 휘파람새 부리에 닿아 아침 안개 저녁 노을을 불러오고,
- 봄 여름 가을 겨울 적시는 빗소리에 닿아 풀벌레 울음소리 깨우고,
- 바람 소리에 닿아 모래섬 돌섬을 먼 바다에 심고,
-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바다의 자궁, 백악기 공룡 등 등
사각사각 가위날이 가르는 소리 요술주머니 속에서 화자의
온갖 서정(抒情)이 부채처럼 펼쳐져 나오고 있는데,
그야말로 온세상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다 떠올라 온누리를
누비고 있는듯 하다
연금술사 그 가위날 소리는!
이 방안의 고요을 뚫고 별빛 빛나는 창공을 가로질러서
8개의 우주 망원경으로 최근 발견되었다는 우주 밖 저 멀리 몇억광 년
떨어졌다는 물경(勿驚), 불타는 불랙홀까지 아마도 닿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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