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다음날 / 전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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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45회 작성일 19-05-08 06:00본문
동지 다음날 / 전동균
1
누가 다녀갔는지. 이른 아침
눈 위에 찍혀 있는
낯선 발자국
길 잘못 든 날짐승 같기도 하고
바람이 지나간 흔적 같기도 한
그 발자국은
뒷마당을 조심조심 가로질러 와
문 앞에서 한참 서성대다
어디론가 문득
사라졌다
2
어머니 떠나가신 뒤, 몇 해 동안
풋감 하나 열지 않는 감나무 위로
처음 보는 얼굴의 하늘이
지나가고 있다
죽음이
삶을 부르듯 낮고
고요하게
- 어디 아픈 데는 없는가?
- 밥은 굶지 않는가?
- 아이들은 잘 크는가?
* 전동균 : 1962년 경북 경주 출생, 1986년 <소설문학>으로 등단
2014년 제 16회 백석문학상, 2018년 제 3회 윤동주서시문학상 수상
< 감 상 >
동지 다음날 이라는 을씨년한 계절이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운
이미지와 어우러져 애뜻한 분위기가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어머니 돌아가신 뒤, 몇 해 동안 풋감 하나 열리지 못하는 감나무처럼
허전한 화자의 심상은 그리움과 서러움에 흠뻑 젖어있다
정답고도 자상하게 안부를 묻는 어머니 목소리가 저 하늘에서 들려오는 듯....
배추잎 삶아 고추장에 비벼주신
바가지 속 공보리밥
꺼이꺼이 떠먹던 보릿고개 어머니
올망졸망 새끼 감자 품에 안고
고부랑고부랑 넘곤 하셨지
호수 위에 찰랑이는 조각달
그때도 저 달은
어머니 이신 물동이 속에서 찰랑이었지
버들잎 속 고요가 물안개로 번지고
하모니카 소리 서러운 호숫가
덜컹이며 새벽으로 내내닫는 기차 따라서
어머니 물동이 속 조각달
서산 너머 가시네
- 졸작, <조각달>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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