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체위를 아세요 / 이향란
페이지 정보
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40회 작성일 19-07-11 03:42본문
와인의 체위를 아세요 / 이향란
햇빛 아래 싱글싱글 맺히는 과일의 본명은 포도이고요
촛불 앞에서 머뭇머뭇, 그러나
군침 도는 고백의 가명은 와인이에요.
드디어 완성됐나요? 그럼 꺼지지 않게 조심해서
어둠고 서늘한 침대에 뉘여주세요.
껍질 속 바람과 햇빛이 마음껏 뒤척일 수 있도록
약간 기울여서요.
왼쪽으로 석 달 오른쪽으로 석 달
탱글탱글 꿈의 석 달 정신없이 와 닿을 입술의 석 달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먼지 날리며 달리던 소년의
부릉부릉 심장 박동 소리에 비록 짓이겨지고 으깨졌지만
또르륵 동그란 의지와 눈물은 더욱 투명해졌답니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바라보되
향이 새어나오면 윙크해주세요.
해 저물 녘
빙글 돌리고,
빙글 바라보고,
빙글 마시고,
빙글빙글 추는,
물방울들의 춤
너무 크게 움직이지는 않으려고요.
여태 녹지 않은 햇빛을 천천히 녹이는 중이거든요.
새하얀 귀를 붉게 붉게 물들이는 중이거든요.
무덥고 긴 그해 여름을 쪼르르 잔에 따르면
재즈와 치즈의 얼룩이 묻어나는,
스위트하거나 드라이한 와인의 이 오묘한 체위를
혹시 아세요?
* 이향란 : 1962년 강원도 양양 출생, 2002년 시집 <안개 詩>를 통해 작품활동,
시집 <슬픔의 속도>등
< 감 상 >
따사한 햇살 아래 생글생글 익어가는 포도송의 눈부심과 포롱포롱
방울져 샘솟듯 떠 오르는 병속의 와인의 해맑은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 껍질 속 바람과 햇빛이 마음껏 뒤척일 수 있도록...
- 왼쪽으로 석 달 오른쪽으로 석 달
- 탱글탱글 꿈의 석 달 정신없이 와 닿을 입술의 석 달
포도의 일생에서 와인의 일생으로 그리고 인간의 입속으로 번져가는 아름답고
신비한 온갖 사유 (思惟)가 독자의 심상을 마구 휘졌고 다녀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